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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혁주의 선교신학
    서론감사하게도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에서 미국 교회 다음으로 선교사 파송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던 불모지 같은 메마른 땅에서 선교사를 이토록 많이 파송하는 나라라니 그 은혜가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다. 한국교회의 선교적 열정은 역동적인 선교사역으로 기억할 만한 아주 대단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갈 수는 없지만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는 있다’ 라는 말처럼 선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임에 틀림없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대명령을 수행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 받은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사역인 것이다. 그러나 선교에 대한 부족한 인식으로 인하여 많은 교회들이 선교를 그 저 땅 밟기만 하는 이때에 개혁주의가 먼저 선교 신학에 앞장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선교는 절대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하나님의 일이며 우리들의 작은 야망을 성취하는 일이 아닌 아주 귀하고 위대한 일이다. 이제 우리의 선교 사역은 그저 각 교회의 단기 선교로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흐름에 맞는 맞춤 선교를 해야 한다. 어디에 가서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선교 신학이 필요한 것이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성경을 더욱 잘 알아야 한다.2013년 대한민국 부산에서 W.C.C (World Council of Churches) 제 10차 총회가 열렸다. 이 모임은 종교다원주의를 넘어서 종교 혼합주의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겉으로는 종교화합이라는 그럴듯한 슬로건으로 많은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흐리고 있다. 불교와 힌두교, 토속신앙과 수많은 이단들은 앞으로의 한국교회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성경에서도 많은 이방신들과의 혼합됨을 용서치 않으셨다. 또한 어느 때든 다른 형태의 이단들은 존재 했었다. 이러한 때에 더 더욱 우리는 먼저 우리 안에 바른 것을 배우고 그 뒤 그 바른 것을 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들었다. 개신교가 강하게 세력을 구축했던 독일이나 스위스는 육지에 둘러 싸여 있어서 해외 선교를 위한 식민지를 제공해 주지 못하였다. 그리고 개신교는 로마 카톨릭의 수도원이나 수도사 선교회들처럼 해외 선교를 추진할 만한 강력한 선교 단체나 기구도 없었다’고 한다.5) 허버트 케인의 주장개혁가들의 사상 속에 선교가 결여되어 있음을 세 가지로 말한다. 첫째로 신학적 문제로서 그들은 지상명령이 오직 열두 사도에게만 주어졌다고 생각하여 사도들이 당시에 알려진 복음을 세상 끝 날까지 전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완수했다고 가르쳤고, 둘째로 정치적으로나 규모면에서 카톨릭 교회에 비해 약소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계 선교에 대한 비전이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고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모든 선교지가 유럽의 개신교에게는 다가갈 수 없는 곳이라고 밝힌다. 결론적으로 칼빈과 개혁가들이 선교사상을 가졌는가에 대해서 선교단체의 지도자들이나 선교역사가들의 주장에서 본다면 칼빈과 개혁주의 신학에 대해서 많은 오해와 편견이 있음을 알 수 있다.4. 칼빈의 선교론칼빈은 선교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며, 인간은 하나님의 선교의 도구임을 강조하고, 우리 신자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전 세계에 걸쳐 모든 교회들이 주께 나아오기를 위해 열망하여야 하며, 특히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이방인들의 개종을 위해 기도해야한다고 강조하였다.1)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선교칼 크로밍가는 예정론과 선교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칼빈이 가르친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택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상이 결코 많은 사람들이 주께 나아오는데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복음증거에 대한 거부는 하나님의 주권과 그리스도의 권세를 제한하는 일이라 반박한다. 성도가 이웃에게 놀라운 구원의 길을 불신자들에게 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요,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감소시킴으로, 주께서 이 온 땅의 통치자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교신학유럽 가운데 화란과 독일, 영국을 통하여 선교학의 역사적인 발전을 계속하여 왔다. 요하네스 바빙크는 선교학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첫째로 선교이론으로 선교의 성경적 기초와 선교의 관계에 대한 것이며, 둘째로 선교 변증학으로 “비기독교적인 타종교에 탐지, 바른 평가와 파악은 선교의 필수로 제시하였다.” 셋째로 선교역사를 강조함으로, 선교역사의 중심은 선교사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그들을 선교의 수단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있음을 강조하였다.근대 선교학의 주장 차 구스타프 바르렉은 독일 할레 대학에서 선교학을 강의했으며, 그의 ‘복음주의 선교학 강의’ 중에서 기독교는 “완전한 하나님의 최종계시이고 절대적 종교”이기 때문에 선교의 토대를 설정할 수 있다고 하였고, 선교는 교회의 생명이라고 주장하였다.영국의 선교 신학 연구는 윌리암 캐리에서부터 살펴 볼 수 있다. 그의 ‘이방인을 회심시키기 위하여 수단을 사용해야 할 신자의 의무에 관한 연구’에서 마 28:16-20의 선교 대사명을 사도들에게만 국한시키는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은 오류임을 지적하고, 선교의 의무는 모든 시대, 모든 교회의 사명임을 강조하였다. 선교 역사에서 삼자 원리는 영국의 핸리 밴과 미국의 루프스 앤더슨에 의해 나타난 것으로, 삼자 원리는 선교지교회의 자립, 자치, 자력이다.4. 미국의 선교신학미국의 선교 신학은 풀러 선교대학원을 중심으로 선교학이 학문적으로 발전하여, 트리니티, 에즈베리, 사우스웨스턴, 리폼드를 중심으로 선교학이 활발하게 펼쳐 나간다. 조나단 에드워드가 남긴 저서를 통해 19세기 선교 사역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삼자원리를 주장한 루프스 앤더슨은 미국 교회에 선교 이론을 제공한 최초의 이론가였다.19세기 말 미국 교회 청년 대학생들의 선교 운동은 무디와 피어선등의 지도자들을 통해 일어나 1886년부터 1914년까지 15000명의 학생 선교사들이 선교지로 투입되었다. 학생 선교 모임의 존 모트는 이 모임의 리더로 섬기면서, 20세기 미국교회의 선교 운동과 봉사 활동에 지도자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한 보다 확실한 언약을 아브라함과 세우시고 타락한 인간에게 구원의 놀라운 계획을 진행시켜 나감을 보여준다. 아브라함 언약의 특성은 아브라함 후손들인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대하여 특별한 권리와 함께 더 많은 책임을 지게 되었다는 점이다.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은 (1) 후손의 축복 (2) 명예의 축복 (3) 땅을 소유하는 축복 (4) 만민을 위한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이다. 아브라함의 선택의 참뜻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특권과 함께 봉사와 선교의 책임”에 있다.4) 아브라함언약에 나타난 선교창12:1-3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소명은 구약에 나타난 첫 선교의 명령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보내실 때 자기 나라와 친척을 떠나 위대한 미지의 땅으로 갈 것을 명령하셨고, 그가 복종하면 그를 축복하실 것과 그를 통하여 세계를 축복하실 것을 약속하셨다.5. 출애굽기에 나타난 선교메시지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언약의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은 이제 모세를 통해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이스라엘과 언약을 다시 갱신하면서 새로운 언약을 맺으셨다1) 출애굽의 선교적 의의본격적인 구약의 선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아 제사장 나라로서 사역을 기술하는 출애굽기에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모세 언약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에서 이스라엘의 언약관계에서 이스라엘의 선교적 역할을 볼 수 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언약의 백성으로 부르시고 여호와 앞에서 구별된 삶과 역할을 부여받았다.2) 출 19장에 나타난 모세언약의 선교적인 이해모세 언약의 배경은 그보다 먼저 이스라엘의 족장들과의 언약(출2:24-25)을 기억하시고 계속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언약을 지키라고 하셨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과 족장 사이의 언약이 출애굽기 이해의 기초가 되며, 이러한 시내산 언약은 임 족장과의 언약을 더 깊이 말씀한 것으로 나타난다. 출19:5-6절은 모세 계약의 핵심이며, 아브라함 후손으로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의 특권과였음을 선언하셨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선교의 중요성에 대해서 눅14:15-24과 마22:8절에서 강조하셨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 편에서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으며, 예수님의 고난도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도 성취되었으며, 이제 주님의 오심은 이미 예비 되고 절정에 있지만, 그 이전에 먼저 주님의 종들은 열심히 일하는 기간으로 중간기를 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선교 원리에 대해 허버트 케인은 세 가지 원리를 제시하였다.첫째로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선교하라고 강조하였다.둘째로 예수님의 선교 사역의 주요 3가지 형태는 “복음전도”, “치유”, “가르침” 이었다.셋째로 예수님의 선교 사역은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심이다.- 가르침의 사역은 새롭게 세례 받은 자를 돕기 위해 훈련시키고 지도하였는데, 이처럼 세례가 제자 되는 사건과 그 특성이라면, 가르침은 제자 된 자가 걸어 가야할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르침은 단순한 지식의 전파가 아니라,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게 하는 것이다.제11장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메시지1. 서론제 52차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학술세미나의 총 주제는 “세속주의와 기독교 영성”인데, 신학의 어떤 영역보다 선교신학 부분에서 세속주의 영향력은 컸다고 볼 수 있다. 선교신학은 그 특성상 항상 변화하는 선교현장과 세상에서의 다양한 문화현상들에 대한 적절한 복음 선교적 접근을 그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지난 한 세기 동안 선교신학은 세속주의 선교 신학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9세기 말부터 오늘날까지 현대교회는 신학적 좌경화를 표방하는 급진적인 신학을 통해 결과적으로 신학과 선교개념의 반감을 가져왔다. 사회 구원의 신학이 등장하고 대전도의 개념이 소개되면서 교회는 전통적인 영혼구원과 교회 성장의 선교를 포기하였다. 현대 세속화 시대에서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적 영성은 오늘 현대교회의 선교 사역의 모델이 된다.2있다.
    인문/어학| 2020.11.25| 39페이지| 2,000원| 조회(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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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지서 기말 이사야 6장 소명장 주해보고서
    선지서 주해 보고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Ⅰ. 서론‘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8)2012년 어느 날, 경배와 찬양학과에 입학하여 으레 받아야 했던 토요 선교 훈련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사로 부르셨다는 마음을 강하게 주셨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길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눈물로 서원하였다. 그렇게 나는 선교사가 되겠노라 결심하며 살았다. 그러면서 기도할 때 마다 이사야처럼 “하나님 제가 여기있습니다 저를 보내세요, 저를 사용하세요” 이 고백을 참 많이 했었다. 이제 와서 보니 잘 알지도 못하고 이 구절을 그저 인용한 것이 부끄럽기도 한 기억이지만 그때의 나는 충만했고 순수했다. 늘 눈물로 부족하고 죄인 중에 괴수인 나를 사용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너무도 감사해서 나는 궁궐이나 초막이나 어디든지 주를 위해 가겠노라 내가 죽도록 주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노라 하는 마음이 있었다. 열정만을 가지고 떠난 1년의 단기 선교에서 내가 신학적으로 바로 서지 않으면 그저 그들에게 물질적인 도움만 주는 봉사로 끝나겠다 하는 마음이 들어오게 된 신대원에서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고 있다. 특히 3학년이 되고 나서 다시 나의 소명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예전 눈물로 숱하게 고백했던 이사야 6장의 소명장이 떠올랐다. 이제 졸업을 앞둔 필자는 소명에 대해 묵상하며, 내가 고백하였던 이 이사야 6장에 대해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그들의 역사 안에서 모세 이후의 종교적 전승을 재해석하여 당대의 이스라엘에 적용하여 선포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예언직을 수행하였는데, 이 부르심에 대한 체험을 통해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 즉 이 체험은 예언자들의 전생애를 규정짓는 원초적인 경험으로서 예언활동을 하는 가운데 부딪히게 되는 한계성이나나님의 거룩성을 경험하는 순간은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는 순간이 된다.화로다! 이 단어에 대한 번역은 다양하다. ‘멍하다’ (칠십인 역), ‘내가 망했다’ (수리아 역),‘내가 범죄하였다’ (탈굼 역) 등으로 번역한다. 이런 다양한 번역은 거룩한 하나님을 체험하는 인간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의 다양성을 반영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 ?????? ????????????????? ?????????? ????????? ???????????????? ?????? ?????? ?????????????? 6그때에 스랍들 중 하나가 나에게 날아왔다. 그의 손에는 제단에서 불집게로 집은 타는숯이 있었다.?????????는 빵과 같은 음식을 굽기 위해 뜨겁게 한 돌 (왕상19:6) 이나 도로포장용 매끄러운 돌을 의미한다. 칠십인 역이 번역한 ‘타는 숯’은 삼하22:13에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 ????????? ?????????? ??????? ?????? ???? ??????????????? ?????? ????????? ????????????? ??????????? 7그가 나의 입술에 (타는 숯을) 대면서 말하였다. “보라!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므로, 너의 악이 제거되었으며, 너의 죄가 덮어졌느니라.”이사야는 입이라는 단어를 5절과 7절에서 네 번이나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이기에 ‘입’을 강조한 것이며 이사야는 ‘입술을 정결케 하는 의식’이라는 이미지를 크게 활용함으로 예언자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되었음을 알리고 자신의 위상을 야웨가 임명한 왕적인 존재로 격상시키고 있다. 이 정결 의식은 하나님에게 주도권이 있다.??????????? ????????? ???????? ?????? ???????? ????????? ?????? ?????????????? ???????? ???????? ???????????? 8(그 후) 나는 나의 주께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가난한 자들은 의지할 데가 없었다. 바로 예언자가 활동해야 했던 사회는 공평과 의로움이 사라진 유다사회였다. 이러한 가운데 이사야가 하나님으로부터의 부르심을 받았다.학자들은 갑작스레 사상이 전환된 이 구절은 본래 이사야의 선포가 아닌 후대의 편집이기에 제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그러나 비록 이 거룩한 씨에 관한 말씀은 이 소명기사의 제일 마지막에 첨가된 어색한 결미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미래를 들여다보는 창문의 역할을 수행한다.3. 문학적 문맥1) 넓은 문맥 (the Larger Context)이사야서는 보통 시대로 나누어 보면 1-30장, 40-55장 그리고 56-66장으로 삼분되어 1-39까지는 포로기 이전의 배경, 40-55장은 파레스틴으로의 복귀 그리고 56-66장은 성전재건의 내용으로 구분된다. 6장은 소위 이사야의 회고록이라는 것의 주변으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심판신탁들이 모인 1-12장의 중간에 위치한다.이사야의 구조를 좀 더 세분화하여 나누어보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Ⅰ.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1:1-12:6Ⅱ. 모든 피조물에 대한 여호와의 날, 13:1-23:18Ⅲ. 소묵시록, 24:1-27:13Ⅳ. 심판과 구원, 28:1-35:10Ⅴ. 이사야와 히스기야, 36:1-39:8Ⅵ.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왕국, 40:1-48:22Ⅶ. 회복사역, 49:1-55:13Ⅷ. 영광스러운 왕국의 확실성과 그것에 대한 책임, 56;9-58:14그 중 이사야 6장이 포함되어 있는 1:1-12:6절의 문맥을 살펴보려고 한다.이사야는 여호와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제시한다. ‘소명 이상’에서 이사야는 하나님과 그의 영광스러운 왕궁의 거룩성에 대한 이상을 받았다. 이 이상은 그의 사역 전체의 지표로 역할하게 된다. 선지자로서의 소명인 6장은 예레미야나 에스겔에서처럼 책의 첫 머리에 위치하지 않고, 심판과 구원 신탁 사이에 끼여 있다.선지서 주해 보고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심판과소망에 관한신탁들(1-5장)이스라엘의거룩한 자에 대한 시작한다. 이것은 다음에 나오는 진술과 활동에 대한 정황을 제공한다.둘째 단락 (3-4절은)은 3절의 스랍의 노래와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언급한다. 여기서 주어는 1-2절에서의 1인칭 단수 (이사야)에서 스랍에 대한 3인칭 단수 취급으로 바뀐다.셋째 단락 (5절) 에서는 다시 1인칭 단수로 화자가 바뀐다. 1-2절에 묘사된 환상을 보고 3-4절에 묘사된 노래를 듣고 나서 이사야는 그의 정결하지 못한 상태에 대해 탄식한다.넷째 단락 (6-7절)은 이사야의 탄식에 대한 스랍의 반응을 기술하는데 여기서 다시 주체는 이사야에서 스랍으로 바뀐다. 스랍은 제단에서 취한 숯불을 가지고 이사야에게 접근해서 이사야의 입술에 대고 이사야의 죄가 사해졌다고 말한다.다섯째 단락 (8절)은 야웨의 질문과 이사야의 대답으로 다시 1인칭으로 화자가 바뀌고 있다. 이것은 두 개의 미완료 와우 연결법 동사로서 질문과 대답이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여섯째 단락 (9-10절)은 주어가 3인칭의 사명을 부여하는 야웨로 바뀐다.선지서 주해 보고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여기서는 우선 예언자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9절)과 그의 사명으로 인한 의도된 효과 (10절)가 묘사된다.일곱째 단락 (11-13절)은 이사야의 질문과 야웨의 대답이라는 형식으로 주체는 다시 이사야로 돌아간다. 12-13절은 11절에서 언급된 파괴를 더 깊이 묘사한다.12-13절은 이것이 원래 이사야의 것이냐 아니면 후대 첨가이기에 따로 분리해야 할 것이냐의 문제를 가진다. 즉 심판환상에서 심판 메시지에 왜 구원의 메시지가 같이 있는가하는 것과 인칭의 상이함 문제(1인칭 보도와 3인칭 보도)이다. 따라서 비평적 학자들은 이 부분을 후대 첨가로 보고 이사야의 본래 메시지가 아니라고 한다.3) 평행법이사야 선지자의 소명을 회고하고 있는 6장은 다음과 같은 평행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1절에 의하면 이사야는 유다에 오랫동안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부흥을 안겨주었던 웃시야 왕이 죽던 해인 주전 739년 경에 선지자 소명을 받았? 10절은 두 쌍의 교차 대구법을 활용하며 여호와께서 선지자의 사역을 통해 직접 백성들이 회개하지 못하게 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을 심판하시려고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꼐서는 항상 사랑과 용서로 환영해주시는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사야의 소명에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회개의 기회도 주시지 않고 일방적으로 심판을 하시겠다고 단언하고 계신다. 그럼에도 1-5장의 처절한 심판의 경고 속에서 여전히 회복과 소망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것은 분명 회개를 유도하려는 목적이 포함되어 있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특히 2장 10-21절은 모든 교만한 사람들과 물건들이 여호와의 심판을 통하여 아주 확실하게 무너져 내릴 것이며,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높임을 받으실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여호와의 심판이 얼마나 무시무시할 것인가를 예측하게 하는 것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피하라’는 권면이다. 이와같이 구체적으로, 또한 자세하게, 다가오는 여호와의 심판을 선언하는 목적이 2장의 마지막 절인 22절에 암시되어 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여호와를 의지하라는 수사학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은 백성들이 그를 의지할 경우에 그들을 용서하실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당연하다.선지서 주해 보고서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6. 신학적 해석1) 완고하게 하라는 명령완고케 하는 명령은 처음부터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리라!’ 는 말씀의 영향을 포함하고 있다. 이 완고케 하는 명령은 적어도 두 개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선포는 최종적인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이다. 재앙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권고나 경고조차도 오직 심판을 초래할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예언자의 메시지에 대한 거부, 즉 불순종과 죄는 하나님의 뜻 없이는 혹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이 명령은 심판의 엄격성에 대한 표현이며
    사회과학| 2019.09.28| 19페이지| 2,500원| 조회(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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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개척 마스터플랜 평가A+최고예요
    필자는 편입하여 들어간 전주대 경배와 찬양학과에서 훈련을 받던 중 하나님께 선교사의 사명 을 주셨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에 1년간의 필리핀 선교를 다녀온 후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을 입학하여 선교에 대해 공부하였고 여전히 부족하고 신학에 대한 갈급함을 느껴 총신 신대원까 지 들어오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같은 비전을 품고 있는 남편을 만나 2학년 초에 결혼을 하였 고 지금은 필자는 신일교회 유치부, 남편은 예수 가족교회 중고등부를 섬기며 함께 평생의 삶 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헌신하고,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타문화권 의 파송 선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다듬어지고 훈련을 받는 중이다. 남편은 태권도로 필자 는 한국어 교원자격증 2급으로 한국어를 통해 전문인 선교사로 나가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선교사의 사역은 바른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양육하는 데에 이르러야 하기에 필자는 신대원 에서 남편은 졸업 후 Th.m. 구약을 공부하며 바른 신학을 정립해나가려 애쓰고 있다. 특별히 이번‘교회 개척과 복음 전도’수업을 통해 교회 개척에 대해 접하게 되었다. 사실 필자는 교회 개척에 대한 뜻은 전무하였다. 이따금씩 남편이 멘토인 형과 교회개척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힐 때마다 나는 사실 두렵기도 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어 그만 이야기 하라고 말을 잘라 먹을 때도 있었다. 대게 사람들이 그렇듯 개척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어둡고 가난 하고 힘들다는 인식이 나에게도 있었다.‘우리는 40살 전에 선교를 나가야지 무슨 개척이냐고 개척시작하면 선교는 어림도 없어’라는 생각도 들었고,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냥 안전하게 편하게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월급 받다가 선교사로 파송받으면 되지 사서 고생하냐 하는 마음 이 들었다. 작년에 남편이 3학년이었을 때 함께 교회 개척 인터뷰에 따라 나선 적이 있었다.
    인문/어학| 2019.09.28| 23페이지| 2,000원| 조회(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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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빈, 라틴어직역 기독교강요 요약
    Ⅰ. 헌사; 프란시스1세에게 드리는 글Ⅰ. 저술의 목적과 배경처음 이 작품에 손을 댔을 때, 영명하신 황제여, 저에게는 폐하에게 바쳐질 어떤 작품을 쓰겠다는 일념 외에는 없었습니다. 이 작품을 쓴 유일한 목적은 종교에 대해서 여하한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참 경건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어떤 근본적인 사항들을 전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태껏 폐하의 왕국에는 폐하에게 패역한 사람들의 분노가 넘쳐서 어느 곳에서도 건전한 교리를 찾을 수 없었으므로 같은 일로써 제가 맡아서 가르쳤던 사람들에게 교훈을 줄 뿐만 아니라 폐하 앞에서 저의 고백을 공표한다면 보람이 있으리라 여겨졌습니다.Ⅱ. 반대자들의 억측과 박해저는 그리스도라는 명분 자체를 품고 있습니다. 실로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은 비록 그리스도의 진리가 추방되고 흩어졌으나 소멸되지는 않았으며 단지 파묻혀서 비천하게 숨겨져 있음이 확실하다고 유력하게 주장합니다. 무식한 사람들의 오류와 미련함을 분별함에는 무관심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들은 그토록 복음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연약함을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그들 가운데서 최고의 수치가 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리는 세상의 모든 영광보다도 더 높고 세상의 모든 권세와는 필적할 수 없는 자리에 서야합니다.Ⅲ. 참 교리에 대한 반론들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새롭다는 이유로 모략당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참다운 능력이 아니라 교식하는 능력으로 미련한 사람들과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는 일종의 기적들을 사탄도 행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반대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구실로 삼는 것들은 단지 사탄의 환상에 불과합니다.Ⅵ. 참 교회의 표지들교회는 어떤 명확한 형식에 의해서 세워질 수 없으며 외형적인 광휘로 교회의 형식을 숭배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히려 전혀 다른 표지가 있으니 이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와 합법적인 성례의 거행입니다. 우리가 의심 없이 믿어야 할 바는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땅을 다스리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Ⅷ. 우리의 정신과 온 마음과 모든 열심히 나타내며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제 이 계명.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며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이 계명은 모든 예배와 숭배는 한 분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분께서는 불가해하시고, 형체가 없으시고, 비가시적이시고, 그리하여 모든 것을 포함하시는 분이시므로 어떤 장소에도 갇힐 수 없으시다. 그 분께서는 또한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자비와 선하심을 영원히 나타내신다.제 삼 계명.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이 계명은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도 그 분의 신성한 이름을 오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분의 거룩함을 위하여 모든 것 위에 그 분을 높이고, 영광을 돌리고, 그 분에게 감사하며 마음을 다하여 그 분의 손으로부터 우리에게로 나오는 모든 것을 간구하라는 것이다. 종국적으로 참 맹세도 하나님의 영광과 형제들의 필요를 위하여 필연적으로 요구될 때가 아니면 성급하게 하지말라. 이러한 예외적인 명분을 제외하고는 어떤 종류의 맹세하기도 금지된다.제 사 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안식일 준수 또한 경건과 하나님 예배와 관계되어 첫째 돌 판에 포함되어 있으며 날을 거룩하게 함이라고 불린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보다 더 엄하게 명령하신 계명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해야 함으로 그 분 안에서 우리의 안식을 누림이 마땅하다. 이 날은 성경에서 완전을 의미하는 수인 제칠 일로 지정되었다. 제칠 일은 완전하고 영원하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이것을 보여주셨으니 제육 일에 다 이루셨고 제 칠일에는 모든 일로부터 안식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본으로 삼아 우리의 일을 그만두고 그 분 안에서 우리의 쉼을 찾도록 하셨으며 안식일을 쉼 없이 갈망하도록 하셨다.제 오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제 육 계명. “살인하지 말라”이 계명을 준수함이 하나님을 얼마나 뿐만 아니라 그 분 자신을 우리의 하나님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서 참되게 인식하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겨냥해야 할 믿음의 대상이며 목표이다. 우리의 구원에 관계된 하나님의 비밀은 그 자체로 혹은 그것의 본성상 식별되지 않기 때문에 오직 그 분의 말씀에 의해서만 헤아려질 수 있다. 말씀의 진리에 대해서 감화되어서 우리는 그 분께서 말씀하시는 무엇이든지 행해지고 이루어진 것으로서 간주한다.Ⅱ. 한 분 하나님께서 세 위격으로 계심을 믿음그들은 셋으로 불리고, 셋으로 기술되며, 셋으로 구별된다. 그러므로 한 분이시며 셋이시다. 그 분께서는 한 하나님, 한 본질이시다. 세 하나님이 아니시고 세 본질이 아니시다. 고대 정통 교부들이 말했듯이 양자는 한 본질 세 위격, 즉 한 실체, 한 실체 가운데 세 위격적 존재이다.Ⅲ. 사도신경 해석1성부 하나님그 분 께서는 피조물 들을 아들이신 말씀과 자신의 영원한 지혜와, 성령이신 자신의 능력으로 지으셨다.그리고 한번 지으신 대로 이제 자신의 인자하심과 능력으로 유지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작용하시고, 지키신다. 참으로 우리가 그 분을 전능하시며 모든 것들을 창조주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들 가운데서 모든 것을 행하실 만한 전능하심과 모든 것들을 다스리실 만한 섭리를 스스로 가지셨다고 사유함이 합당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 모든 것들이 그 분에 의해서 우리에게 된 것은 우리의 가치나 이 은혜에 합당한 공로나, 그 분의 베푸심에 상응한 우리 편의 값으로서 헤아려질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이렇듯이 역사하시는 오직 그 분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부성적인 선하심과 관용으로 인한 것이다.그러므로 마지막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우리가 관대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과 이에 못지않게 그 분으로 말미암은 구원이 대망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의심하거나 불신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각자가 가진 것으로서 사도신경의 첫째 부분에서 우리가 배우는 진정한 믿음이라는 것로 멸망되거나 할 수 없다.첫째, 교회는 하나님의 선택과 함께 서 있으므로 영원한 지혜가 아니라면 변화될 수도 끝날 수도 없다.둘째, 주님께서는 선택하신 자들을 그리스도에게 넘기셔서 도움과 보호 가운데 두심으로 모두 살리신다.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신뢰심에 의지하여 우리가 또한 교회로부터 나왔으며 우리가 함께 부름을 받고 이미 부분적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하나님의 선택된 자들과 함께 있다고 확실히 여긴다.우리는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 공교회에서 참 믿음으로 동시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선택받은 모든 사람들이게는 모든 선한 것들에 대한 교통과 참여가 있다. 우리는 육체의 부활을 믿는다. 미래에 사람들의 모든 몸들이 썩지 않고 동시에 일으켜질 것이다. 우리는 영생을 믿는다. 즉 미래에 주님께서 몸과 영혼 가운데 영화롭게 된 자들을 모든 변화와 썩음의 운명을 넘어서서 끝없이 계속되는 복락으로 받으신다.Ⅶ. 믿음 소망, 사랑믿음은 하나님을 참되시다고 믿으며 소망이 기대고 있는 기초이다. 그 분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믿는다. 소망은 그 분께서 시의 적절한 사건으로 자신의 진리를 보이시기를 기대한다. 소망은 언젠가 그것이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소망은 믿음을 자라게 하고 보존한다. 사랑에 대한 증거는 조금도 덜 명확하지 않다. 믿음, 소망, 사랑은 모두 성령의 은사들이며, 하나님의 자비가 없다면 이것들 중에 어떤 것도 시작될 수도 계속 유지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구하여야 한다.제3장 기도: 주기도문 해설Ⅰ. 기도의 법기도의 첫 번째 법: 우리의 영광에 대한 모든 신념을 버리는 것, 우리의 공훈에 대한 모든 억측을 벗겨내는 것, 우리의 비천함과 겸손 가운데 영광을 우리의 주님께 드리며 우리의 모든 신뢰를 포기하는 것.기도의 두 번째 법: 진실로 우리 자신의 빈곤을 의식하자.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 진지하게 생각하자.하나님에 의해서 우리에게 약속된 바, 우리가 확실한 믿음으로 기대하기만 하면 의심 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간청한 것들을 얻게하며 실로 믿는 사람들은 그 분에 의해 계속지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분 자신께서는 홀로 모든 것들을 대신 하여 우리를 위하고 계시다. 왜냐하면 모든 선한 것들이 그 분 자신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제4장 성례들Ⅰ. 성례의 본질과 의의성례는 진리 자체를 확정하기 보다는 진리 자체 안에서 우리를 확정하기 위해서 있다. 왜냐하면 진리는 그 자체로 충분히 확고하고, 확실하여 그 자체가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는 더 좋은 확정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성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더욱 확실하게 하도록 시행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 분 자신의 선한 뜻이 증거 하는 한에 있어서, 성례들 자체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비와 그 분 자신의 선한 뜻의 은혜를 그 분 자신의 거룩한 말씀과 성례들 모두 가운데 부여하심이 확실하다. 어거스틴은 성례에서 말씀의 효과는 그것이 말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믿어지기 때문에 생긴다 라고 말한다. 따라서 성례들은 우리의 믿음을 섬기기 위해서, 즉 믿음 자체를 자라게 하고, 훈련하며, 더하기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확정한다.성례라는 이름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진리로써 자신의 약속들에 관해서 더욱 확실하게 하고 분명하게 하시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여태껏 표시하셨던 모든 표징들을 포함한다. 참으로 그 분께서는 때때로 자연적인 것들 가운데 그것들을 드러나 보이게 하시기를 원하셨고, 때때로 기적들 가운데 보이셨다. 그러나 현재의 목적은 주님께서 자신의 교회에서 자신의 백성을 하나의 믿음으로 그리고 하나의 믿음에 대한 고백으로 양육하시기 위해서 일반적인 것들이 되기를 원하셨던 성례들에 대해 특별히 논의하는데 있다. 그것들은 표징들 가운데 뿐 만 아니라 의식들 가운데 놓여진다. 세례들과 정결례들은 그들에게 그들이 자신들의 본성 가운데 더럽혀진 불결함, 음란, 오염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든 더러움이 훔쳐지고 씻겨 지는 또 다른 씻음을 약속했다. 이 씻음이 그리스도셨다. 다.
    인문/어학| 2019.09.28| 19페이지| 1,000원| 조회(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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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의 성, 잠금해제 요약
    교회의 성(性), 잠금 해제?성이란 무엇인가: 성경적 · 신학적 · 윤리적 · 생리학적 관점에서 (이상원)서론최근 정재영이 20-30대 미혼 기독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성의식 조사 결과 보고서에서 응답자의 35.3퍼센트가 성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가졌다고 응답했고 27.5퍼센트는 성적 호기심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민한다고 응답했다. 이 조사에서 성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죄책감은 연관되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성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다’는 평가 안에는 이미 윤리적으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는 뜻이 함의되었기 때문이다. 이 조사 결과는 기독 청년들이 성에 대해 균형 잡힌 인식을 가지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청년들에게 인간은 태초에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성은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인 동시에 성적 즐거움은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성에 대해 생각하고 기대하고 동경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다. 청년들의 죄책감은 혼전 성교에 관한 인식과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기독교 성윤리에서 성교는 결혼이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 틀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관계는 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전 성관계는 기독 청년들 사이에서도 이미 일반화 되어 있다. 성교가 결혼 관계 안에서만 합당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관점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적용되어야 할 보편적인 하나님의 질서이기 때문에 이 관점을 벗어난 기독교 성윤리는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문제는 성교가 결혼관계 안에서만 타당한 행위라는 점을 어떻게 성경적, 신학적, 윤리적 생리학적 관점에서 설득력있게 제시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Ⅰ. 남자와 여자1. 남자와 여자플라톤은 인류가 과거 남녀양성자로 존재한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말함으로써 플라톤과는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피조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 인간은 다른 성과의 관계 안에서 존재한다. 인간은 언제나 남자 혹은 의지에 봉사하는 성적 기관을 통해 자녀를 낳았을 것이다. 씨를 뿌리면 수확을 얻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출산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색욕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색욕에 대항한 싸움이 필요하다. 리비도는 악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능한 한 이 악을 피하고, 대항하여 싸우고 막아야 한다. 성교를 갖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결혼도 선한 것이다. 결혼 안에서의 성교도 자녀 출산이라는 목적에 제한해 행해져야 한다. 자녀를 출산하면 리비도라는 악한 수단도 어느 정도 선한 것을 가져오는 셈이다. 그러나 자녀를 출산하고자 하지 않을 경우 성교는 중단되어야 한다. 이 같은 성욕관은 중세시대 전체를 지배했다. 종교 개혁기에 들어와서 루터와 칼뱅은 영적 상태를 위해 독신제도가 필요하다는 견해와 결별했다. 루터의 경우 성욕은 결혼관계에서도 여전히 악한 것으로 판단한 흔적이 남아 있다.2.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색에 대한 비판첫째, 성욕은 그 자체가 악하기 때문에 은밀히 즐겨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성행위는 죄책이 뒤따르는 행위가 아니라 극히 인격적인 친밀한 행위이기 때문에 집단의 관음증이나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의 관전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둘째, 성행위 시 인간의 영혼과 의지는 정말로 육체의 욕망에 대해 무력해지는가? 오르가즘에 도달할 때 명료하게 깨어 있는 생각이 욕망 안에 함몰되어 버리는 것은 사실이다. 성교시에 영혼과 의지가 혼미함 속에 빠질 만큼 감성이 고조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 순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순간은 아니다.셋째,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욕에 지배당해 거룩한 일들을 생각하지 않는 순간을 견딜 수 없었다. 그 시간에는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도서의 말씀은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죄는 의지의 관할 밖에서 일어나는 이와 같은 자동적인 신체적 작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이성과 감성을 모두 가진 전인에 있는 것이다. 성적인 욕구만을 따로 떼 네 죄의 영역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풍성하게 하고, 안정시키고, 수정한다.첫째, 아가페는 사랑받는 사람이 성애의 에로스가 요구하는 바를 성취하지 못할 때도 상대방을 사랑하게 함으로써 성애를 풍성하게 한다.둘째, 아가페는 성애를 안정시킨다. 사랑받는 사람을 원하는 것을 자기 자신 안에서 발견한다.셋째, 아가페는 성애가 왜곡될 때 성애를 수정한다. 성애는 인격적 존재와의 연합으로부터 쉽게 분리되어 리비도 곧 욕정으로 전락한다.7) 아가페는 남성의 일부다처제적 성향을 강하게 통제한다.남자는 자기 시간의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치열한 싸움을 요구하는 적대적인 외부 세계에서 보낸다. 생리적 구조를 규범화하면 남성에게는 혼전 순결을 엄격하게 지킬 것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여성에게는 철저하게 지킬 것을 요구하는 ‘이중적 도덕기준’이 등장할 수 있다. 인격성의 핵심인 아가페는 명백히 일부일처를 지향한다.4. 성욕과 혼전관계성교는 결혼관계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을 규정한 규범적 선언이다. 이 말은 인격적 연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교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이와 같은 전체적인 인격적 연합의 표현수단이어야 한다. 이 연합은 현실적으로 결혼 이외의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삶 전체의 연합이라는 의도를 가지고 행해지지 않는 성교는 비윤리적이다. 삶 전체의 연합은 공간적으로는 삶의 영역 전체가, 시간적으로는 죽는 날까지의 모든 기간이 포함된다.첫째, 성적 사랑의 표현은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정신적인 사랑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둘째, 두 사람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성을 의식해야 한다.셋째, 서로 대한 책임성을 의식해야 한다.Ⅲ. 왜곡된 성과 순결1. 타락 이후 전반적으로 왜곡된 성관계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성은 아름답고 선한 것이다. 타인의 몸과 친밀하게 접촉함으로써 느끼는 신체적인 즐거움과 예민한 흥분은 하나님이 주신 즐거움이다. 그러나 신체적인 성적 즐거움의 추구가 인격적인 연합과 사랑의 교제로부터 분리되면 성적인 즐거움은 왜곡된다. 인격적 연합과 사랑의 교제로부터 분리된 쾌락은1. 인격적인인격적인 연합과 사랑을 방해하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다. 배우자를 학대함으로써 전도된 쾌락을 누리고자 시도하는 것은 심리적 가학증의 사례이다.8. 복장도착/동성애/성전환복장도착은 반대의 성을 가진 사람의 옷을 입거나 그의 생활방식을 흉내 내기 좋아하는 관행이다. 일종의 성적기행을 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심리적인 문제일 경우가 많으므로 심리치료를 필요로 한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결혼관계 안에서 배우자에게 혼란을 주거나 성관계를 방해하기 때문이다.동성애자는 자신이 잘못된 육체 안에 거하고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동성애자나 성전환자는 수미일관하게 이성애를 바른 성 질서로 보고 있는 성경의 관점과 배치되는 동시에 이성과의 인격적 연합 안에 통합되어 있어야 할 성관계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다.정신을 육체에 적응시키기보다는 육체를 정신에 적응시키는 편을 선택하고자 하는 성전환자들의 시도는 성전환 수술로 나타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첫째, 교정 시술을 통해 반대편의 성 구조로 완전하게 전환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실제로는 성적인 장애자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둘째, 육체의 변경을 통한 성전환은 정신상의 성 의식 전환은 인간의 결단 여하에 따라 가능한 길이다.셋째, 성정체성은 신체의 성적 구조가 주가 되고 호르몬 작용이나 주관적 성 의식이 신체의 성적 구조를 보조하는 형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전환 수술은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의 질서를 거스른다는 점에서 허용될 수 없다.결 론인간이 남자와 여자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은 창조 시부터 부활 이후 영원히 지속될 하나님나라에까지 유지되는 영구적인 질서로서 인간의 본질적 구조에 속한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동등한 입장에서 문화명령을 받았으며, 주어진 고유한 기능을 발휘함으로써 이 명령을 수향한다. 서로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서 서로를 돕고 협력해 인격적인 교제가 풍부하게 이루어지는 보다 완전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사회를 형성해 간다. 어느 시대를 되는 부위를 서로 어루만지는 행위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첫째, 스킨십은 남녀 사이에 자신들의 애정을 성적으로 표현하는 활동이다.둘째, 스킨십은 주로 혼전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지칭한다.셋째, 스킨십에는 다양한 형태의 행위가 포함되지만 성교는 제외된다.Ⅱ. 스킨십의 발전과 편만1. 성의식의 변화최근 30년 사이 한국인들의 성 의식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과거 한국인들의 성 의식과 성적 형태는 첫째, 아직 성적 해방이나 자유를 구가하던 때가 아니어서 대체로 보수적인 분위기가 풍미했다.둘째, 교회도 방어적인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이 또한 성적 개방이나 활성화를 막는 견제 요인으로 작용했다.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무엇보다 성적 욕구에 대한 용어나 표현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둘째, 인간을 성적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끝으로 옷차림과 관련한 성적 자기표현의 시도가 도드라졌다. 이러한 사태 발전이 그리스도인의 이성교제와 스킨십 문제에도 변화를 초래한 것이다.2. 개인주의와 쾌락주의의 결합개인주의적 경향에 의해 성적 쾌락의 추구가 크게 활성화되었다. 전통적으로 한국 문화와 사회는 공동주의적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서구화의 물결에 의해 큰 변화를 겪는다. 서양의 개인주의 정신이 침투해 들어오면서 실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개인이 모든 생각, 활동, 결정에 있어서 중심인 것이다. 이런 개인주의적 안목이나 방침이 모두 다 그릇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워낙 죄의 성향이 깊은지라 개인주의는 곧잘 자기중심주의나 이기주의로 변질되곤 한다.그 구체적인 예가 쾌락주의와의 접합이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쾌락주의 ?쾌락의 추구와 향유를 모든 가치보다 높이고 그 목적만을 위해 생의 동력을 소비하는 것-이다. 특히 ‘성 쾌락주의’는 개인주의, 이기주의, 신체주의, 쾌락주의가 함께 만나 형성된 기묘한 형태의 자아주의다. 이것은 비그리스도인 만의 메뉴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때로 그릇된 세상 정신에 미혹되어 빠질 수 있다.3
    인문/어학| 2019.09.28| 19페이지| 1,000원| 조회(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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