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았다. 한편 법관양성소 출신 변호사 안병찬(安秉瓚)이 안중근을 위해 무료 변론을 하였다. 안중근은 체포되어 처형되기까지 재판과정에서 재판소내의 어떤 기세에도 굴하지 않고 이토 ... ? 안중근(安重根) - 1879년 9월 2일 ~ 1910년 3월 26일- 본관은 순흥, 고려조 명현 안향의 26대손.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아래에서 현감 안인수의 손자이자 진사 ... 안태훈의 장남으로 태어남.- 안응칠(安膺七)이라는 아명으로도 불림.- 대한제국의 교육가, 독립운동가, 대한의병 참모중장.- 천주교 성당건축에 참여할 정도로 독실한 신앙심을 갖고 있
으로 공격을 받게 되므로 할 수 없이 후퇴하였다.더구나, 도중 합천에서 일본군의 큰 공격을 받아 결국 이 최초의 홍주 의병진은 흩어지고 안병찬(安秉瓚) 등 주동 인물도 체포되고 말 ... 의의를 뚜렷이 밝혀 주고 있다. 전 참판 민종식은 1906년 3월 상순경부터 이용규(李容珪), 이영세(李永世), 채광묵 등과 함께 거의를 기획, 추진하였다. 안병찬, 최익현 등 ... 것이다. 이후 산남 창의진은 경상도 각지를 전전하면서 적과 항쟁을 계속하였다.경상도 방면에서는 산남 의진과 신돌석 의진 외에도 예안(禮安)에서 김도현(金道鉉), 김상종(金象鐘
를 종1품 이유승(李裕承), 법부주사(法部主事) 안병찬(安秉瓚), 원임의정대신(原任議政大臣) 조병세(趙秉世), 시종무관장(侍從武官長) 민영환(閉泳煥), 전참찬(參贊) 최익현(崔益鉉 ... 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일제는 이 운동을 극력 탄압 금지하였으며, 송병준(宋秉畯) 등이 지휘하던 매국단체인 일진회의 공격과 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