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4월에 귀양에서 풀려나 정의대부(正議大夫) 판비서성사 보문각학사 경성부우첨사 지제고(判?書省事寶文閣學士慶成府右詹事知制誥)에 제수되었다. 9월에 유수중군 지병마사(留守中軍知兵 ... 兵馬鈐轄)이 되어 5월에 계양으로 부임하였다. 공의 나이 54세 이후에는 계속해서 관직을 유지하였다. 63세 11월 위도(?島)로 귀양 갔다. 65세 지난 기축년(1229, 고종 ... 馬事)가 되었다. 66세 6월에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추밀원부사 좌산기상시 한림학사 승지(樞密院副使左散騎常侍翰林學士承旨)에 제수되었다. 8월에 추밀원(樞密院)에서 숙직하며 시
내시부사(判內侍府事).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의 판도평의사사사(判都評議使司事). 도병마사(都兵馬使)의 판병마사(判兵馬事). 밀직사(密直司)의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중추원(中樞院 ... 를 “점주(點奏))”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벼슬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모두 위로는 판사(判事)) 자리로부터 아래로 영사(令史))자리에 이르기까지 뇌물로 백은(白銀)을 바치는데 이것 ... 에는 판사(判事)는 1명을 두되 재신이 겸임하게 하였으며, 상서(尙書)는 1명, 정 3품으로 하고 지부사(知部事)는 1명인데 다른 관직에 있는 관원이 겸임하였다. 시랑은 1명 정 4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