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사류(士類)도 함께 화를 입었다. 이어 을사사화에는 이언적(李彦迪), 노수신(盧守愼) 등의 거유(巨儒)가 유적(流謫)되었으며 거듭되는 사화로 유학자들은 차차 벼슬을 단념하고 산림 ... )가 대두하였다. 그 대표적 인물로는 유형원(柳馨遠), 이익(李瀷), 박지원(朴趾源) 등이 있다.그러나 이 학파는 때마침 동점(東漸)한 서학(西學)에 물들었다는 혐의로 조정의 탄압을 받
국왕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이해 문종이 왕세자를 위하여 처음으로 서연을 열고 사(師)·빈(賓)들과 상견례를 행할 때, 좌빈객 이개(李塏)와 우사경 유성원(柳誠源)에게 왕세자의 지도 ... 속 하였으나 대북파의 계략에 빠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611년(광해군 3) 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반대한 정인홍이 성균관유생들에 의하여 청금록
척준경은 ‘궁성에 활을 쏘고 불을 지른 죄’를 자기 혼자만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는 이자겸의 아들인 지언(之彦)의 노비가 척준경의 노비와 다투면서 척준경의 행동 ... (의식을 느낀 묘청 일파는 서경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켰다.묘청은 1135년 정월 서경의 분사시랑(分司侍郎) 조광(趙匡), 동 병부상서(兵部尙書) 유참(柳?) 등과 함께 반기를 들 ... 은 형세가 불리해지자, 묘청·유담·유호(柳浩?: 유담의 아들)의 목을 베어 분사대부경(分司大府卿) 윤첨(尹瞻) 등에게 주어 개경으로 보냈으나, 정부는 윤첨 등을 옥에 가두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