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
- 최초 등록일
- 2009.01.31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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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토마스 아퀴나스
목차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와 사상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1. 토론
2. 진리론
3. 교사론
4. 페트루스의 108개 명제
5. 대 이교도 대전
6. 신학대전
7. 아베로에스파와의 논쟁
8. 아우구스티노파와의 논쟁
9. 토마스의 설교
10. 저작의 중단
참고
본문내용
토마스 아퀴나스는 1225년 초 나폴리 근처의 로카세카 섬에서 아퀴노 대가문의 란돌포 경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났다. 마침 그해는 잉글랜드의 존왕이 러니미드에서 대헌장에 서명하고 스페인 사람 "도미니크 드 구츠만"이 사진의 이름을 딴 수도회를 설립하기 위하여 로마로 간지 꼭 10년 되던 해였다.
토마스가 다섯살이 되던 해 그의 아버지는 몬테카지노에 있는 베네틱토 대 수도원에 보냈다.
그 수도원은 나폴리의 메데리코 왕가와 교황령 사이에 있는 요새이기도 했다. 그는 베네딕토 예비학교에 있는 현대학생보다 수사가 될 가능성이 훨씬 컸지만 결코 어린 수사가 아닌 "봉헌된 자"로서 받아들여졌다. 9년간 초등교육을 받은 뒤 잠시학업을 중단하였다가 1239년 나폴리 대학교에서 그의 교육을 마무리 짓기위하여 다녔다.
나폴리 대학교에서 그는 일곱가지 자유학예, 즉 문법, 논리학, 수사학, 대수학, 기하학, 음악과 천문학 과정을 공부했다. 이과정에서 그는 논리학 천문학이라는 학예를 공부하며 철학을 접하게 된다.
1244년 토마스는 도미니크수도회의 수사가 되었다.
하지만 아들이 베네딕토 수도회의 성직자나 수도원장이 되길 간절히 바랬던 그의 가족들은 분개했다.
-13세기 당시 귀족은 안정되 높은 지위에서 전통적 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성직자와 도시빈민과 섞여구걸하는 탁발수사로 구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아예 그를 납치해서 몬테 산 조반니에 있는 가문의 섬으로 끌고가 1년후 허락을 받을때까지 로카세카의 집에 붙들어놓았다. 그의 어머니는 눈물로 호소하였고 형들도한 협박을 해보았지만 그의 가운과 검은 외투를 벗게하지 못하였다.
토마스는 그의 순결을 굉장히 중시하였다. 형들이 간계를 써서 밤중에 접대부를 동원해 토마스의 방으로 들여보내었는데 그는 부지깽이를 움켜쥐고 그녀를 쫗아내 버렸다.
그날 그는 잡을 자며 꿈속에서 영원한 순결을 상징하듯, 천사가 자신의 허리를 감싸는 꿈을 꾸게 된다. "그날"이후로 그는 사람이 뱀을 피하듯 불가피하거나 필요한 때를 제외하곤 늘 습관적으로 여자와의 교제를 피했다고 한다.
참고 자료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글 김상현 기획 한국 철학사상연구회 삼성출판사
"아퀴나스" 원저 앤터니 케니 옮긴이 서병창 시공사
네이버 블로그 "Dominus vobiscum" 토토로 http://blog.naver.com/paxnobis
네이버 블로그 "청산 위에 청천" 청천 http://blog.naver.com/neu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