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연극
- 최초 등록일
- 2006.12.23
- 최종 저작일
-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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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기록에 의하면 BC 534년에 비극의 창시자로 전해진 테스피스가 합창단을 중심으로 배우 한 사람과의 문답형식의 상연을 시도하였다는 유럽 최고(最古)의 기록이 있다. 그리스 연극은 BC 5세기를 전성기로, BC 3세기경까지 행해진 고대극(古代劇)의 전통이 로마를 거쳐 서(西)유럽 전체에 퍼져 유럽 연극의 원류(源流)가 되었다. 아테네의 최성기인 BC 5세기는 세계 연극 사상의 황금기였다. 당시는 매년 3월에 행하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제사인 춘기대제(春期大祭:大디오니시아祭)에 비극을, 겨울에 행하는 전원제(田園祭:레나이나祭)에 희극을, 각기 3인 또는 5인 작자의 경작형식(競作形式)으로 상연하였다. 이것은 아크로폴리스의 신전에 딸린 디오니소스극장에서 신관(神官)의 주관하에 1만 7000명이 넘는 관중을 모아 행하는 국가적 행사였다. 5인의 심판관이 평가하여 1등을 한 작자는 커다란 명예를 얻었다. 특히, 예선을 통과한 작자에게는 각각 돈 많은 사람이 딸려서 일체의 상연 비용을 부담하고, 합창대의 편성, 의상의 준비 등을 담당하였다. 작자는 합창대의 훈련, 가면을 쓰고 반장화를 신은 배우의 연기지도, 가창부(歌唱部)의 작곡 등 연출 전반을 담당하였다. 극장의 구조는 경사면을 이용한 부채꼴 계단상의 관객석(테아트론) 아래에, 반원형 또는 원형으로 합창대의 무용장(오르케스트라)이 설치되었다. `무대`의 어원(語源) 스케네는 그 배후에 있는 의상실․분장실을 가리킨 말이다. 그 앞(프로스케니언)이 배우가 연기하는 장소로서 약간의 무대장치가 있었다. 배우는 채색된 삼베에 진흙을 발라서 굳힌 가면, 또는 목제 가면을 쓰고 높다란 관객석에서 잘 보이게 하기 위하여 굽 높은 반장화를 착용하였다. 합창대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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