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과] 예송논쟁과 나의생각

최초 등록일
2005.05.16
최종 저작일
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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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예송논쟁에 대한 정보와 저에대한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저의 생각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목차

1. 글을 쓰기 전에

2. 예송 논쟁
(1) 예송 논쟁의 의미와 배경
(2) 예송 논쟁의 전개
(3) 나의생각

본문내용

기해예송은 1659년 효종이 죽자 자의대비의 복상기간을 기년(만 1년)으로 할 것인가 3년(만 2년)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으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사가는 〈주자가례〉에 따라 사례(관혼상제)를 행하고 있었고, 왕가는 성종 때에 제정된 〈국조오례의〉(경국대전)를 기준으로 했다. 그런데 〈국조오례의〉에는 효종처럼 차자로서 왕위에 올랐다가 죽었을 경우 어머니가 어떤 상복(喪服)을 입어야 하는지에 관해 규정이 없었으므로 문제가 발생했다. 그리하여 복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진행되면서 소북계의 윤휴는 장자가 죽으면 적처 소생 제2자를 장자로 세운다는 〈의례〉의 말을 인용하여 효종은 비록 둘째아들이나 적자로서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차장자설에 입각하여 3년상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고, 송시열은〈의례〉의 사종지설(왕위를 계승했어도 3년상을 치를 수 없는 이유) 중 체이부정(적자이지만 장자가 아닌 경우)에 입각하여 효종은 인조의 차자 이므로 1년상이 옳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윤휴가 누구든지 왕위를 계승하면 어머니도 신하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3년상을 주장한 것에 대해 송시열은 아들이 되어 어머니를 신하로 삼을 수 없다고 하자, 윤휴는 왕자의 예는 일반 사서와는 다르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의정 정태화 등의 대신들은 시왕지제〈국조오례의〉에 있는 母爲子服朞)에 따라 기년복을 채택했지만, 이듬해 남인인 허목의 상소로 예송은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허목은 윤휴의 차장자설에 입각한 3년상을 찬성하면서 첩의 자식으로 왕위에 오른 경우만 체이부정에 해당된다며,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상복도까지 첨부시켜 송시열과 송준길을 공격했다. 이어 남인 윤선도가 조대비의 복제를 효종의 종통과 연결시켜 송시열 등의 기년복을 따른다면 효종의 종통은 애매하게 되고, 소현세자와 그의 자손들에게 적통을 주는 것이 된다고 비판하면서 심각한 당파성을 띠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역사스폐셜 프로그램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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