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이광수의 '자치론'은 친일인가 민족적 행위인가 - '민족개조론'과 '민족적 경륜'을 중심으로"에 대한 내용입니다. 일제가 문화통치로 전환하며, 민족지가 재건하는 문화 통치 상황에서 친일문학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과 ‘민족적 경륜’이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분석하고 서술했습니다. (A+)
목차
Ⅰ 서론
1. 1920년대 역사적 배경
2. 탐구활동의 의의
Ⅱ 본론
1. 민족개조론
2. 발표 당시 사회의 반응
3. 오늘 날 민족개조론에 대한 평가와 한계
4. 민족적 경륜
5. 민족적 경륜이 일으킨 반향과 오늘 날의 평가
Ⅲ 결론
1. 민족개조론 요약
2. 본인의 생각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한국사에서 여러 감정이 교차하며 공부하게 되는 부분이 바로 구한말부터 일제의 강점시기였다. 우리 조상들은 일제의 강제 통치로 인해 씻을 수 없는 고통을 겪었고, 이는 그대로 역사에 남아 후손들에게도 전이 되는 아픈 한민족의 사실이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일제가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하며 대중들은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었고, 1920년대에 이르러 분열되어 있던 독립운동계를 통합하려는 민족 유일당 결성의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독립운동계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되어 있었으나, 민족주의를 가장하면서도 일본과 타협해야 한다는 타협론을 주장하며 친일로 돌아선 이들 또한 많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춘원 이광수이다. 당시 민족주의계였던 이광수는 동아일보에 “민족적 경륜”을 기고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의 논설로 인해 민족주의는 타협주의와 비타협주의로 또다시 분열된다. 애초에 좌우익의 이념이 일종의 대립의식으로 형성되기 시작할 때에도 이광수가 개벽에 기고한 ‘민족개조론’은 각각의 사상이 정립되는 데에 쐐기의 역할을 했었다. 일제가 언론 자유의 탄압을 이전보다 느슨케 풀어 민족지가 재건하는 문화 통치 상황에서 ‘민족개조론’과 ‘민족적 경륜’이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 탐구 활동을 통해 당시 이념간의 갈등이 격화되던 시대상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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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 “민족적경륜”,https://blog.naver.com/7biann/30182291404, 2018.05.01.
NAVER,“이광수 민족적 경륜, 동아일보”,http://b-613.tistory.com/452, 2018.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