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사론 - 알프레드 코반의 수정주의를 중심으로 -
- 최초 등록일
- 2019.12.30
- 최종 저작일
-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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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프랑스 혁명사론 - 알프레드 코반의 수정주의를 중심으로 -"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프랑스 혁명의 신화
Ⅱ. 프랑스 혁명의 사회적 해석
Ⅲ. 프랑스 혁명 : 3부회의 소집으로부터 열월 9일까지/프랑스와 퓌레, 드니 리쉐
1. 구체제의 사회와 절대군주제
2. 신분들의 반란
3. 1789년 여름의 세 혁명
4. 행복한 한 해
5. 혁명의 일탈
6. 혁명적 낭만주의
7. 곤궁의 시절
8. 결론
IV. 참고 문헌
본문내용
프랑스 혁명에서는 봉건적 질서가 사라지고 부르주아지의 지배가 그것을 대체했다고 대개 말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것이 금세기 동안 프랑스 혁명의 역사연구를 지배해온 신화입니다. 이것은 종종 역사적 사실들로부터 도출된 과학적 법칙의 예증으로 취급됩니다. 내가 그것을 신화라고 부르지만 이것은 결코 폄하하거나 헐뜯으려는 의미가 아니라, 물론 더 나쁠 수도 있겠지만, 플라톤 식의 표현방법에 따른 것입니다.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음이 내가 그것을 재검토하는 이유입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단순화하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동화인데, 옛날에 봉건제라 불리는 사회질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식인괴물이었으며, 성안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수세기 동안 부르주아인 거인 잡는 잭이 경제적 진보하는 콩 줄기를 타고 올라가 마침내 프랑스 혁명에서 구질서를 타파하고는 부르주 아 사회 혹은 자본제라 불리는 그 무엇으로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와 유일하게 어긋나는 점은 그가 그 후에 행복하게 살지 못했다는 것뿐입니다. 나는 이것을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프랑스 혁명의 신화 혹은 이론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나오는 두 가지 요인은 물론 그 자체가 이론입니다. 이제 그것들을 차례로 논의하고자합니다.
첫 번째 것은 봉건제입니다. 이것은 중세를 풍미했던 사회조직을 기술하기 위해 고안된 용어입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무렵 토지소유에 기초한 통치체계로서의 봉건제는 프랑스에서는 오래 전에 종말을 고했습니다. 봉건귀족은 국가의 통치뿐만 아니라 토지의 광대한 부분을 소유하는 일조차 그만두었던 것입니다. 개략적인 평가에 따르면 토지의 1/3이 농민층 수중으로 들어갔으며 나머지 가운데 상당한 비율은 삼림이나 황무지였습니다. 이른바 18세기의 봉건제는 구봉건영주의 후손들이나 그들의 영지를 매입한 사람들이 요구하는 케케묵은 부과조 및 부역의 의무에나 존재했습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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