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대 과학사 기말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19.04.06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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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지동설은 태양중심설이라고도 한다. 150년경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제안되었던 천동설은 중세까지 거의 1400여 년간 태양계의 운동을 설명하는 유일한 이론으로 존속되었다. 그 후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출판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서 태양중심설을 제창하였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으로부터 가까운 순으로 수성·금성·지구·화성·목성·토성 등의 행성들이 배열되어 있으며, 각 행성들은 일정한 속도를 가지고 태양주위를 원운동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이론이 비록 그 때까지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를 뒷받침할 관측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이런 관측 자료는 브라헤에 의해 제공되었는데, 그의 제자인 케플러는 이 자료를 이용하여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에 관하여 세 가지 법칙을 만들었다. 한편, 케플러와 같은 시대에 갈릴레이는 1632년 출간된 그의 저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두 대우주체계에 관한 대화’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행성들의 공전궤도가 타원이라는 케플러의 견해보다는 원이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을 믿었고, 특히 목성은 자신의 둘레를 원운동하는 4개의 위성을 거느리고 태양 주위를 원운동한다고 보았다. 1604년의 《가속도운동에 관해서》에서 발표한 근대적인 관성법칙(慣性法則)의 개념도 이미 그 전에 사르피에게 보낸 서한에 나타나 있다. 1609년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발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수 망원경을 만들어 여러 천체에 대하여 획기적인 관측을 하였다.
1610년에 이러한 관측결과를 《별세계의 보고》로 발표하여 커다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해에 교직생활을 그만두고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서 토스카나대공(大公)인 메디치가(家)의 전속학자가 되었다. 그 후로도 천문관측을 계속하여 1612∼1613년에 태양흑점 발견자의 명예와 그 실체의 구명(究明)을 둘러싸고, 예수회 수도사인 크리스토퍼 샤이너와 논쟁을 벌여, 그 내용을 《태양흑점에 관한 서한》에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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