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학파의 실학사상 요약

연재찌잉
최초 등록일
2017.12.17
최종 저작일
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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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들어가면서

남명은 외가에서 태어나 1505년 아버지께서 문과에 급제 하여 벼슬을 하셨으므로 서울로 이사하여 살았다. 일곱 살에 부친으로 부터 글을 배웠고 곧바로 외우고 잊지 않았으며 모르는 것은 끝까지 질 문하여 알려고 하였다. 동네 서당에 나가 배우기도 했는데 돌려하지 않아도 부지런하였고 배우기에 힘썼다. 행동거지가 어른스러워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아니하였다. 앉을 때 정해진 자리에 앉고 가 볍게 몸을 부리지 아니하였다. 특별히 이름난 스승의 문하에서 배운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9살에 모진병 에 걸려서 부모가 걱정하자 하늘이 사람을 낼 때 다 뜻이 있어 난 것인데 부모님께서 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위로했다고 한다.
1515년 15세에 아버지가 단천군수로 부임하시자 그곳에 가서 자랐다. 늘 공부에 힘썼으며 당시 과거의 과목인 유교경전만 공부하지 아니하고 천문 지리 의학 수학 병서 노장서적 불교서적들을 폭넓게 다방면의 독서를 하였으며 관아에서 아버지가 하는 지방 행정에 대하여도 저절로 알게 되었다. 이때 자기 수양과 공부의 정진을 위하여 물을 담은 그릇을 받쳐들고 밤새 공부를 한다든지 허리에 방울을 차고 다니며 자신의 정신을 맑게 하고 스스로 깨우쳐 바르지 않은 길로 가는 것을 경계하였다.
남명학의 특징에 대하여 경과 의를 중심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다. 다음과 같은 학자들의 견해가 이를 지지하고 있다. 금충렬<金忠烈(1982,1988)>은 남명이 성리학 특징은 이론지학(理論之學)이 아니라 실천지학(實踐之學)이라고 보았으며 남명학의 요체를 ‘경의(敬義)’로 본 것은 후학들이 선생의 학문을 논평해서 나온 말이 아니고, 남명 스스로가 60이후 자기 학문을 정리하고, 일생 동안 수득한 것을 집약한 것이며, 이는 제자들을 통해서 꼭 후세에 길이 전해져서 사람들이 신행해야 한다고 믿은 자기 나름의 교리였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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