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의 설탕무역과 다인종문화의 배경
- 최초 등록일
- 2017.05.26
- 최종 저작일
- 20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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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콜럼버스에 의해 카리브해의 섬들이 사탕수수 재배에 적합하다는 사실이 스페인에 알려짐.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사탕수수 혁명)은 1640년 경 바베이도스에서 본격화되어 곧 다른 소앤틸러스 섬들로 확산.
<삼각무역>
영상/영어자막
http://study.com/academy/lesson/triangular-trade-route-system-role-in-slavery.html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영국사회의 커피와 홍차 소비의 증가에 따라 카리브해 지역에는 대규모의 플랜테이션들이 세워졌다. 설탕 재배는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과정으로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프리카로 눈을 돌렸고 이로부터 노예무역이 본격화 되었는데 노예사냥꾼들에게 붙잡힌 아프리카인들은 노예무역선에 실려 ‘대서양 중간 항로’를 건너는 몇 달간의 항해 끝에 카리브해 지역의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에게 팔렸다.
대서양 노예무역은 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를 잇는 삼각무역 체제의 핵심적인 고리였다.
사전적 정의 : 두 나라 사이의 무역 수지가 균형을 잃을 때, 제삼국을 개입시켜 삼국 간에서 불균형을 상쇄(相殺)시킴으로써 무역 수지를 균형에 가깝도록 하는 무역. 18세기에 영국의 면포, 서아프리카의 노예, 서인도 제도의 목화 사이의 무역이 유명함.
당시 영국은 설탕·담배·면화·염료·모피 등의 원료를 수입하는 데 막대한 금을 지출하고 있었다.
식민지는 이런 원료들을 아주 싼 값에 공급하고 영국에서 생산된 완제품들을 소비하는 시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영국은 이를 위해 1650년 일련의 항해법을 만들어 공포했다. 내용은 식민지는 본국과만 무역을 할 수 있고 그것도 오직 본국 배만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삼각무역은 당시 식민지들이 본국의 항해법을 어기고 한 일종의 밀수무역이었다.
우선 식민지, 특히 북부에서 많이 생산되는 곡물을 서인도제도로 싣고 가 그곳 주산물인 당밀·설탕과 교환한다.
이를 싣고 다시 식민지로 가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등지의 주정공장에서 술(럼주)로 만든다. 이를 배에 싣고 대서양을 건너 아프리카 노예해안으로 간다.
거기서는 노예상인들이 노예를 주고 술을 가져간다.
참고 자료
미국사 100장면 (유종선 著·가람기획 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