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트, 룰러, 몰트만의 선교신학
- 최초 등록일
- 2012.11.19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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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바르트, 룰러, 몰트만의 선교신학
목차
1. 서론
2. 본론
(1) 바르트의 선교신학
(2) 룰러의 선교신학
(3) 몰트만의 선교신학
3.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선교와 신학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신학은 선교를 방해하며, 그렇기 때문에 선교는 신학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가? 마찬가지로 선교는 신학적 진리추구를 교회의 현실적인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신학은 선교를 문제 삼지 말아야 하는가? 다시 말해서 선교를 수행하는 사람들과 신학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주의 도구나 종으로서 교회를 위하여 협력하여 공동의 선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생각해본다.
신학과 교회, 특별히 선교와 신학이 상당히 양극화된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선교이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선교와 신학은 각자 자기 정체성의 확보와 동시에 자신의 경계선을 넘어서서 상호이해에 도달할 수 없는지 이 같은 선교와 신학의 평화로운 양립 가능성의 문제에 대해 선교신학의 입장에서 마땅히 어느 정도는 해명해야 한다고 본다. 기독교를 선교하는 종교로서 믿고 고백하는 모든 이가 소위 말하는 ‘선교의 위기’에 직면해서 감당해야 할 시대적 연구과제인 것이다.
<중 략>
이와 같이 기독교 신앙은 이 세계 속에 존재하면서도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은 것,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십자가와 부활 속에 계시되었고 약속된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를 희망하기 때문에 그것은 이 세계 속에 이미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미 주어진 것에 대하여 그것은 모순적이고 비판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기존하는 세계의 모든 것을 단순히 받아들이고 이것과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을 비판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 향하여 변화될 것을 요구한다. 즉 “신앙은 이 모순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며 그러므로 죽음의 세계에 대한 하나의 모순이 된다. 그러므로 신앙이 희망으로 전개될 때 신앙은 조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게 되고 참게 되는 것이 아니라 참지 못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희망하는 자는 주어진 세계와 타협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이 세계로 인하여 고난을 받기 시작하며 이 세계와 모순되기 시작한다. 하나님과의 평화는 이 세계와의 불평화를 뜻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