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춘 개인전-채집된 산수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이 갤러리에 있는 작품 중에 과연 한국화와 관련된 작품이 있을까? 형광색과 요란한 그래피티로 꾸며져 있는 홍대 쌈지스페이스 갤러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정말 이 곳에서 “채집된 산수” 전시가 열리고 있는 것인지, 잘 찾아 온 것인지 조심스러워졌다.

갤러리는 몇 개의 방에 나뉘어서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첫 번째 방에서는 <퇴적된 산수>를 만날 수 있었다. 버스럭거리는 모래바닥, 퀴퀴한 곰팡이 냄새, 어두운 조명의 공간은 처음 입장하는 순간부터 ‘아, 내가 작가의 공간에 들어왔구나!’ 라는 느낌을 또렷이 전해주었다. 액자에 끼워진 산수화가 벽에 전시되어 있는 대신에 시멘트벽에 검정 잉크로 빽빽이 산수화가 그려져 있다. 작업의 영역을 평면으로부터 공간설치에로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사방에 둘러져 있는 산수화와 그 속에 모래를 밟고 거닐어 보니, 직접 산수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마치 실재하는 길 앞에 서서 풍경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길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길 안에 서서 그 풍경 속의 일부로 참여하고 있는 듯한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전통적인 산수화에 나타나는 여백의 개념을 화면을 벗어난 실재의 공간으로까지 확장시키려는 듯하다. 또한, 군데군데 옷이나 장난감 등의 현대적 오브제들이 보일 듯 말 듯 붙어 있어 더욱 실존적이고 삶의 연장선의 작품이라는 느낌을 전해준다.

두 번째로 2층의 조용한 방에서는 <채집된 산수>를 보았다. 이 작품을 본 순간 내가 지금 한국화 전시를 보러온 것이 아니라 현대미술전을 보러 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커다란 한지에 그려진 여러 장의 산수화들이 많은 부피를 차지하면서 작고 어두운 조명의 방을 빽빽이 채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작품들이 회화작품이 아닌 하나의 덩어리로 다가왔다. 이 산수화들은 작가가 자신이 삶을 살아가며 항상 가까이하고 보는 일상적인 물건들과 여행을 하며 자연과 동화되었던 기억, 그리고 그 장소들에서 감흥을 주었던 기억을 재빠르게 그린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사냥하거나 채집된 자신의 삶의 흔적들을 푸줏간에 고기를 걸어 놓듯 갈고리에 매달아 채집해놓았고, 나는 그 사이를 산책하듯 걸어 다니며 작가의 기억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참고자료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