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우하영][천일록]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 집필배경, 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 구성, 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 서술체계, 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 사상, 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을 통해 본 사상적 한계 분석
- 최초 등록일
- 2009.04.21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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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 집필배경, 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 구성, 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 서술체계, 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 사상, 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을 통해 본 사상적 한계 분석
목차
Ⅰ. 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 집필배경
Ⅱ. 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 구성
Ⅲ. 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 서술체계
Ⅳ. 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 사상
Ⅴ. 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을 통해 본 사상적 한계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실학자 우하영의 천일록 집필배경
우하영은 조선후기의 어려운 사회경제적 현실에서 새로운 학문사상인 실학사상이 본격적으로 개화되기 시작하던 때인 영조17년에 태어나서 정조대를 거쳐 순조 12년까지 활동한 실학자이다. 그는 신분상으로는 충청도 단양의 우씨 가문에서 태어난 양반으로 어려서부터 유교교육을 받았다.
그가 지은 짧막한 자서에 의하면 우하영은 나이 7세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10세 때 할아버지가 죽어 글을 배울 수 없었고, 집에 큰 불이 나서 가세가 곤궁하였고, 그나마 있던 책도 전부 불에 타버려서 글공부를 할 수 없었다. 불난 시기가 우하영의 집안으로서는 가세가 극도로 곤궁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때에 큰 아버지댁에 양자로 입양되었다. 입양된 뒤에도 한동안 글공부를 하지 못한 우하영은 그의 나이 15세 때부터 과거공부를 다시 시작하였다. 이듬해인 16세 때(1756)에 사마시 초시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그 후에도 우하영은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회시에서 모두 12번이나 떨어졌다. 한번도 관도에 나아가지 못하고 평생 시골 유생으로만 지낸 학자이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그는 사람들과 거의 사귀지 않았다. 대신 그는 본래부터 즐겨하던 산수유람을 다니기를 좋아했다. 혼자 전국을 유람하였기에 우하영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하영이 전국을 돌아다닌 것은 단순한 산수유람이 목적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산천․풍토․민요․속상을 알지 못한다면 우물 안에서 벽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그가 보고 들고 경험한 우리나라의 풍토를 소상하게 기록하려한 노력때문이었다. 이는 그가 과거에 떨어져 관직에 나아지지 못한 자책감을 떨쳐 버리고, 자신과 같이 고생하는 백성들이 이 땅에는 많음을 확인하고 그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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