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 10월2일 서울문리대 반유신 시위에 이어 2개월 간에 걸친 반독재 학생시위는
문제제기로서 끝나 버렸다. 당시 학생들으이 주장은 관범위한 민주제도의 혁명적
개선 없이는 수렴될 수 없었던 것으로 더욱이 박정권으로서는 그들이 처한 국내외
적인 입장 때문에 정권을 내어놓지 않는 한 학생운동을 탄압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73년 겨울방학동안 74년도를 `민권쟁취`, `민주승리의 해`로 정하고, 학생
운동을 보다 더 질적으로 심화시켜서 분단민족의 행상을 제시하고, 양적으로 확대
시켜서 많은 민주 일군이 민주주의 건설에 몸바쳐서 일할 수 있는 조직적인 운동을
모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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