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망매가
- 최초 등록일
- 2001.05.16
- 최종 저작일
- 2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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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망매가(祭亡妹歌)
월명사(月明師)
<원문과 해석>
<작자 소개>
월명사(月明師 : ? ) - 신라 경덕왕 때 경주 사천왕사(四天王寺)에 소속되어 있던 승려, 달 밝은 밤에는 피리를 불며 문 앞길을 다녔는데, 달이 그를 위해 길을 밝혔다 하여 그 마을을 월명리라 했고 그의 이름도 월명(月明)이라 했다고 한다.
향가를 잘 지어 '도솔가' '제망매가'가 정한다.
<배경 설화>
경덕왕 19년 경자 4월 초하룻날에 해가 둘이 떠서 10여 일간 없어지지 않았다. 일관은 "인연 있는 스님을 청하여 산화공덕을 지으면 예방이 되리라."하였다. 이에 조원전에 단을 깨끗이 모시고 청양루에 행차하여 인연 있는 스님을 기다렸다. 그때 마침 월명사가 천백사의 남쪽 길로 지나가므로 왕이 사람을 시켜 불러들여 단을 열고 계청을 지으라 명했다. 월명사는 "저는 다만 국선의 무리에 속하여 오직 향가만 알고 범패 소리에는 익숙하지 못합니다."하였다. 왕은 "이미 인연 있는 스님으로 정하였으니 향가를 지어도 좋다."고 하였다. 월명이 이에 도솔가를 지어 불렀다. 지금 세속에선 이것을 산화가라 하나 잘못된 것이고 도솔가라 함이 마땅하다. 산화가는 따로 있으나 문장이 길어 싣지 못한다. 곧 두 해의 괴변이 사라져 왕이 가상히 여기고 차 달이는 기구 한 벌과 수정 염주 백 여덟 개를 주었다. 홀연 모습이 정결한 동자가 있어 무릎 꿇고 차와 구슬을 바치면서 서쪽의 작은 문에서 나왔다. 월명사는 궁중 안의 심부름하는 아이라 하고 왕은 대사의 시중을 드는 아이라 하였으나 서로 증거를 대보니 모두가 아니었다. 왕이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추적하게 하였는데, 동자는 내원의 탑 속에 숨어 버리고 차와 구슬은 남쪽에 그려 놓은 미륵보살의 성상 앞에 놓여 있었다. 월명대사의 지극한 덕과 정성이 이 지성(至聖)에게 밝게 가탁된 것이 이와 같음을 알 수 있다. 온 나라에서 알지 못하는 이가 없었고 왕은 더욱 공경하여 다시 비단 백 필을 주어 큰 정성을 표창했다. 월명은 또 일찍이 죽은 누님을 위하여 재를 올리고 향가를 지어 추모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지전을 서쪽으로 날려보내 사라지게 했다. ('도솔가' 참조)
월명이 항상 사천왕사에 있으면서 피리를 잘 불었다. 일찍이 달밤에 문 앞 큰 길에서 피리를 불며 지나가자 달님이 그 소리에 수레를 멈추었다. 그 때문에 그 길을 월명리라 했고 월명사도 이로 인해서 이름이 났다. 월명사는 능준대사의 문하인이다. 신라에서 향가를 숭상하는 이가 많았는데 대개 시나 송과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끔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킨 것이 한둘이 아니다.
[삼국유사 권5 감통. 월명사 도솔가]
신라 경덕왕 때의 국선(國仙)인 월명사가 죽은 누이의 재(齋)를 올리며 명복을 빈 추모의 노래로 10구체 향가이다.
현존 향가중 걸작이며 불교적 내용의 대표적 서정 시가이다.
제망매가는 삼국유사에 월명사가 죽은 누이를 위해 이 노래를 지어 제사를 지냈더니 광<font color=aaaaff>..</font>
본문내용
신라 경덕왕 때의 국선(國仙)인 월명사가 죽은 누이의 재(齋)를 올리며 명복을 빈 추모의 노래로 10구체 향가이다.
현존 향가중 걸작이며 불교적 내용의 대표적 서정 시가이다.
제망매가는 삼국유사에 월명사가 죽은 누이를 위해 이 노래를 지어 제사를 지냈더니 광풍(狂風)이 불어 지전(紙錢)을 서쪽으로 날려 없어지게 했다는 배경설화에 함께 전해진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