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정치
- 최초 등록일
- 2000.09.24
- 최종 저작일
- 20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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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주제 :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Ⅰ.세도정치의 성립과 운영 구조
1. 세도정치의 성립
1) 권세가의 권력 독점
2) 왕권의 약화와 붕당의 퇴조
2. 세도정치의 성격
3. 세도정치의 운영 구조
1) 비변사
2) 중앙 군영
3) 언로와 공론
Ⅱ. 세도정치의 전개
1. 순조代의 세도정치
1) 정순왕후 수렴청정기(순조 즉위년∼3년)
2) 순조 친정 초기(순조 4년∼11년)
3) 순조 친정 중기(순조 12년∼26년)
4) 명세자 대리청정기(순조 27년∼30년 5월)
5) 순조 친정 말기(순조 30년 6월∼34년)
2. 헌종代의 세도정치
1) 순원왕후 수렴청정기(헌종 즉위년∼6년)
2) 헌종 친정기(헌종 7년∼14년)
3. 철종代의 세도정치
본문내용
1. 세도정치의 성립
처음으로 '道'라는 용어가 쓰여진 것은 朴齊炯의 《近世朝鮮政鑑》에서였다. '세도정치'의 '세도'는 '世途'라는 말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勢道'라고 표기하여 趙光祖·鄭仁弘·宋時烈 등의 정치적 역할을 설명하는 데 쓰인 '世道'와 질적인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1) 권세가의 권력 독점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순조·헌종·철종代에 정권을 장악한 외척은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의 가문, 순조 친모의 아버지인 박준원의 가문, 효명세자의 처가인 趙萬永 가문 등의 핵
심 인물들이었다. 순조代 특히 순조 11년의 홍경래의 난 이후로 김조순이 정권을 오로지하고 있었음은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사실이며, 김조순 사후 헌종 6년까지는 金?根이, 헌종
친정기에는 趙寅永 및 趙秉龜가, 헌종 11년에 조병구가 죽은 뒤로는 趙秉鉉이, 철종代에는 金左根이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19C의 권력자는 비변사를 주도함으로서 일반 국정을 장악하되 대신직에 있는 측근 관료로 하여금 주요 정사를 처리하도록 하였으므로 스스로 전면에 나서서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국가에 특별한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공개적으로 정상의 권력을 행사하곤 하였다. 예를 들어 순조 11년에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 그 토벌군 지휘관을 뽑아야 할 때와 같은 경우 김조순은 빠지지 않고 나타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