玉所 詩歌의 特性
- 최초 등록일
- 1999.02.10
- 최종 저작일
- 199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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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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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I. 서론
名門 출신으로 숙,영조대에 걸쳐 전국을 주유하며 가장 많은 시가작품을 남겼던 이가 바로 玉所
이다. 玉所 權燮은 1671년 (顯宗 12년 辛亥) 3월 1일 亥時에 安東 權氏의 문중에서 출생했다. 그
의 백부 遂菴 權尙夏는 尤菴 宋時烈의 수제자요 숙종의 총애를 받던 사람으로, 우의정, 좌의정의
자리를 다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은 이다. 부친이 일찍 별세한 까닭에 옥소는 수암의 슬하에서 오
랜 시간(23년)을 보냈다. 그러므로 수암과 옥소 사이는 친자와 다름이 없었다. 옥소의 외조부는
좌의정에 이르렀던 李世白이다. 名宰相이었던 외조부로부터 옥소는 30여년간 애호와 훈도를 지극
히 받았다. 모친인 정부인 이씨는 부덕과 학식을 겸비한 현모였다. 특히 옥소는 부친이 일찍 별세
했으므로 모부인에게 받은 영향이 지대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옥소의 외숙인 이선현은 官이
영의정에 이르렀던 사람인데 옥소와는 불과 두 살 차이로 무릎을 맞대고 동문수학한, 누구보다도
다정한 사이였다. 이렇듯 유복하고 선택된 가정환경과 인적 배경은 옥소에게 마음껏 배우고 구김
없는 인격을 형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으며, 또한 마음 내키는 대로 일생을 探勝旅行속
에 보내며 詩心을 펴는데 지대한 저력이 되었다.
옥소가 출생하여 문학활동을 했던 시기(현종12년-영조35년)는 多難한 시기였다. 壬辰,丙子란과 같
은 외침은 직접 겪지는 않은 시기였으나, 전대에 거쳐간 자국과 그 여파는, 조선조 개국이래 250
여년간 尙文好學으로 다져진 士大夫 중심의 주자학 일변도의 사회에 서서히 변화의 움직임을 일
으키기 시작했다. 곧, 언로의 감행은 분파를 이루어 정계는 물론 학계까지도 분쟁으로 말미암아
평안한 날이 없었다. 그리고 실학사상의 대두는 당시 사회 전반에 새로운 의식과 변화를 가져오
기 시작했다. 그 시기의 문단에는 임진, 병자 양란 후의 자각의식, 그리고 실학사상의 새 문학풍
토가 조성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김만중의 예에서 보듯이 국어의 존엄성과 국문학의 우수성이 주
장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분위기는 평민작가의 대두라는 새로운 현상까지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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