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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의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인식 (The Recognition of Fuse Tatsuji(布施辰治) in Korean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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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7.03 최종저작일 2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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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의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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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 수록지 정보 : 시민인문학 / 40호 / 9 ~ 45페이지
    · 저자명 : 이규수

    초록

    이 논문에서는 조선에서 발행된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조선인은 후세 다쓰지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살펴보았다. 그의 조선 방문을 전후로 보도된 기사를 중심으로 후세와 조선과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당시 그에 대한 사회운동 진영의 인식과 평가에 주목했다.
    후세 다쓰지는 일본의 인권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이다. 변호사 개업 후 인도주의에 의거하여 사회는 평등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일본 내에서는 농민과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투신했고, 국외에서는 조선, 타이완 등 식민지에서의 민족 및 민중의 권리 보호를 위한 각종 사건에 관여했다. 특히 후세는 다양한 형태로 조선과 관계를 맺었다. 후세는 1923년 북성회(北星會)와 동아일보사가 기획한‘하기순회강연단’을 계기로 조선을 처음으로 방문했고, 의열단 사건의 변호를 비롯해 조선공산당 등 치안유지법 관련 변호단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또 관동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조선인 학살사건에 대한 조사와 항의 활동에 나섰고, 각 언론사에 ‘학살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서한을 발송하는 등 양심적 법조인으로서 활동했다.
    후세는 일생동안 자유⋅평등⋅민권이라는 이념을 실천한 변호사였다. 그의묘비명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하여”라는 좌우명을 실천한 후세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민중의 마음을 움직였다. 조선인 운동가들은 후세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일본인으로 평가하고 존경했다.
    일본 국내에서는 후세와 조선인들과의 관계는 한일 연대투쟁의 본보기로 간주되며, 양국에서 후세는 식민지 민중의 ‘벗’이자 ‘동지’로서 기억되고 있다. 인도주의에 바탕을 둔 실천적인 변호활동과 식민지 민중에 대한 높은 관심을 고려하면 후세에 대한 이런 평가는 당연하다. 조선인들의 평가대로 후세는 ‘일본무산운동의 맹장’이었다. 후세와 조선인의 관계는 한일연대투쟁의 거울같았다. 후세는식민지 민중의 ‘벗’으로서, 때로는 ‘동지’로서 영원히 각인되었다. 후세는 식민지민중을 발견했고, 조선인들은 후세를 발견했다.

    영어초록

    In this paper, I investigated how Korea viewed Fuse Tatsuji centering on newspaper articles published in Korea. Mainly focusing on articles reported before and after his visit to Korea, I referred to the relationship between Fuse Tatsuji and Korea and paid attention to the recognition and evaluation of the social movement camps at that time.
    Fuse Tatsuji is a Japanese human rights lawyer and social activist. After practicing as a lawyer, with the belief of humanitarianism and social equality he tried to protect the rights of farmers and workers in Japan and he involved in various incidents to protect people and their rights in colonies such as Korea and Taiwan. In particular, he related with Korea in various forms.
    He visited Korea for the first time in 1923 with the help of the ‘Summer Circuit Lecture’ organized by the North Star(北星會) and The Dong-A Ilbo(東 亞日報), and acted as a defense lawyer for the Korea Communist Party. When the Kanto Great Earthquake occurred, he went to investigate and protest against the massacre of the Korean people, and sent letters to each media company saying that he had a huge responsibility for that massacre as a conscientious lawyer.
    As a lawyer, he practiced the ideology of freedom, equality, and civil rights throughout his life. As recorded in his tombstone, “While you live, with the people and if you have to die, for the people”, Huse acted not only for the Japanese but also for the people of East Asia. The Korean activists respected and valued him as the most trustworthy Japanese.
    In Japan, the relationship between Fuse Tatsuji and Koreans is regarded as an example of the solidarity struggle between Korea and Japan, and Fuse Tatsuji is remembered as ‘friends’ and ‘comrades’ of the colonial people.
    Given the humanitarian advocacy and the high interest in colonial people, it is natural that Fuse Tatsuji should be evaluated like this. According to the evaluations of the Koreans, He was the ‘Champion of the Japanese Proletariat Movement.’ The relationship between Fuse Tatsuji and Korea is the mirror of Korea and Japan’s bonding struggle. He would be eternally imprinted as ‘friends and comrades’ for colonial people. He found colonized Korean people, and Korean people found Huse.
    Key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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