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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TT가입을 위한 한국 정부 노력의 시대적 조명- 단기 4285년2월 “GATT會議에 관한 復命書”를 중심으로 - (The Historical Examination of the Korean Government's Efforts to Join the GATT -Based on a Report of February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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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17 최종저작일 20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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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TT가입을 위한 한국 정부 노력의 시대적 조명- 단기 4285년2월 “GATT會議에 관한 復命書”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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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안암법학회
    · 수록지 정보 : 안암법학 / 53호 / 461 ~ 493페이지
    · 저자명 : 박노형, 정명현

    초록

    2017년 4월 14일은 한국이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GATT)에 가입한지 50주년을 맞는 날이다. 한국은 1967년 4월 14일 세계무역기구(WTO)의 기반인 GATT에 가입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경제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당시 경제적으로 후진국이던 한국은 GATT의 다자무역체제에서 다른 나라의 개방된 시장을 이용함으로써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의 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GATT의 시장경제질서에 바탕을 둔 자유무역체제를 수용해 시장중심의 경제철학을 실행할 수 있었다. 한국은 GATT 가입 후 무역규모 세계 10위권의 통상국가로 발전하였고, 이 점에서 한국의 GATT 가입은 광복 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이 1967년 GATT에 가입하기 전인 1950년대 초 GATT에 가입할 수 있었던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6·25전쟁 중인 1950년 9월 당시 주영공사가 한국대표로 GATT의 제3차 다자무역협상인 토키(Torquay)라운드에 참석하였다. 토키라운드에서 한국의 GATT 가입에 대하여 당시 34개 GATT체약국들 중에서 25개 GATT체약국들이 동의를 하여서 가입요건인 전체 GATT체약국들 3분의2 이상의 동의를 획득하였다. 당시 한국의 GATT 가입 조건은 지극히 간략하였는데, 전쟁 중인 한국에 대한 GATT체약국들의 동정이 집중되었고,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대표를 파견한데 대하여 GATT체약국들의 많은 호평이 있었기 때문이다. 토키의정서의 서명일은 1951년 10월 21일이었는데 서명기한이 여러 번 연장되었지만, 전쟁의 어지러운 상황에서 한국은 1953년 8월까지 동 의정서를 서명하지 못했고 결국 GATT 가입이 무산되었다.
    1948년 GATT의 발효 직후 한국이 GATT에 가입할 기회를 가졌던 것은 미국이 서독과 일본과 함께 한국의 GATT 가입을 적극 지원하였고, 한국 정부도 일본보다는 먼저 GATT에 가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이 토키라운드에서 GATT에 가입할 수 있었던 사정은 1951년 9월부터 10월까지 제네바에서 개최된 GATT체약국단 제6차 회기에 참석한 당시 전규홍 주불공사가 1952년 2월 제출한 'GATT 회의에 관한 복명서'에서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당시 6.25 전쟁이라는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한국 정부가 GATT 및 한국의 GATT 가입 필요성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만약에 한국이 토키의정서에 서명하여 1950년대 초반 GATT에 가입하였다면, 한국은 GATT의 시장경제질서를 보다 일찍 수용하고, 한국을 원조하는 입장에 있던 대부분 GATT체약국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보다 빠르게 전후 복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GATT 가입 5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은 국내외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특히 WTO체제에서 한국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공유한 중국과는 사드 문제로, 우방인 미국의 새 행정부와는 미국 우선의 통상질서 재편과 관련하여 위기를 맞고 있다. 국민총소득 대비 수출입 비중이 80%를 차지하는 한국에게 국가경제의 생존에 직결되는 통상관계의 위기는 기필코 극복해내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위기 극복의 DNA가 있다. 이는 6·25 전쟁 중에도 GATT에 가입하려 하였던 노력에서도 확인된다. 예컨대, 통상의 원천은 국가간 경쟁력의 차이인 점에서, 한국은 정부와 산업은 물론 학계도 큰 그림에서 국제경쟁력을 꾸준히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앞으로 50년 후에 GATT 가입 100주년을 기념할 후세대가 그전 50년 동안 무엇을 기억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지 지금의 우리는 고민하고 슬기롭게 행동하여야 한다.

    영어초록

    In celebrating the 50th anniversary of the GATT membership in 2017, the historical fact that Korea could have joined the GATT during the Torquay Round in the early 1950s should be noted. It seems that the US did strongly urge Korea with Western Germany and Japan to accede to the GATT. The US wanted Korea, a newly liberalized country, to join the GATT which is market economy based international economic system. Korea probably had to follow this US initiation just after becoming a new nation-State. It is interesting to find that Korea at that time strongly wanted to accede to the GATT earlier than Japan did. It could be understood considering that Korea was just liberated from the Japanese colonial rule.
    Although Korean accession during the Torquay Round failed, It should be noted that Korea, in the middle of the Korean War, made an effort to join the GATT. The Korean Minister to the UK attended the Torquay Round in 1950, and the Korean Minister to France attended the 6th session of the Contracting Parties in 1951. During the Korean War, it was probably very hard for the officials of the headquarters to come over to Torquay in the UK or Geneva in Switzerland. The time period of the Korean War almost exactly coincided with that of the process of Korean accession to the GATT. Nevertheless, it is a pity that Korea did not make it at the first try to accede to the GATT in the early 1950s. If Korea had joined the GATT almost 16 years earlier than the actual accession in 1967, Korea could be exposed to the market economy system from the very beginning of the Korean republics, and Korea could be assisted by most contracting parties which were actual donor countries so that the rebuilding of a postwar Korea could be more easily and more earlier accomplished.
    While we celebrate the 50th anniversary of the Korean membership in the GATT, Korea is facing disturbingly confusing times in trade relations with China and the US in particular. As the ratio of trade in the gross national income is around 80% in Korea, these hardship must be overcome in a smart way. Those who will celebrate the centennial of the GATT membership in 50 years will see what we are now doing with trade matters. The government and the industry as well as the academy in trade matters need to work harder to remain internationally competitive in the world. In particular the rules of the WTO should be properly understood and eagerly applied by Korea. There is no present without past, and no future without present.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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