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소설 『12월 12일』 분석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현대문학이론학회
· 수록지 정보 : 현대문학이론연구 / 28호 / 251 ~ 268페이지
· 저자명 : 정봉희

초록

넓은 의미에서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집이다. 이상의 말대로라면 그것은 어떤 사건에 부여된 ‘영혼’이다. 그것은 의미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하나의 완전한 세계로 집처럼 막힌 정체성을 구성하고 국가나 이익집단은 그 정체성 의해 질서가 부여되고, 또한 그 질서에 의해 작동되는 기계처럼 굴러간다. 이데올로기가 고유하고 있는 헤게모니적, 집단적, 보편적, 합리적 특징들은 숙명적으로 더욱 큰 집을 지향하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는 서사하고자 한다. 무질의 말을 빌리면 “대상이 주어진 곳에선 욕망이 생기기 마련이듯이, 이데올로기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곳에서는 즉각 욕구가 생겨난다.” 페터 V 지마, 앞의 책, 263쪽 재인용.
이상이 희구하는 대칭점은 바로 그러한 집과 대등하게 마주설 수 있는 자신만의 집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노장이 지향했던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자그마한 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상은 그 집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무덤의 집을 선택하는 외에 다른 선택을 상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좌절감이 자살충동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대칭점은 분명히 상실되었어도 신에 대한 ‘복수’는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복수의 대상은 물론 이데올로기라는 그 거대한 집이다. 자기의 집을 구성할 수 없는 불구자의 복수이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파괴의 의미를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파괴된 그 집의 빈 공간에 아무것도 채울 수 없는 허무는 그의 복수가 해체로 끝나고 만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사는 여기서 멈추어진다. 이제 그의 ‘펜’―‘최후의 칼’은 해체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ꡔ12월 12일ꡕ은 막다른 골목에 이른 서사를 넘어 해체를 지향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