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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용흥사(지)의 역사와 의의 (History and Significance of Yongheungsa Temple in Changn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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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18 최종저작일 20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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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용흥사(지)의 역사와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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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역사와교육학회
    · 수록지 정보 : 역사와교육 / 39호 / 199 ~ 222페이지
    · 저자명 : 황인규

    초록

    용흥사는 창녕 비슬산 지역의 중요 사찰이었으나 현재는 없어졌다. 관련된 문헌 기록으로는 조선후기 승려 벽암 각성의 문도인 동계 경일과 남유용의 기문 등이 전하고 있다. 이 문헌에는 간략한 창건, 임진왜란 이후, 특히 숙종과 영조와 정조대의 중창 및 폐사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다.
    용흥사는 신라의 고승 관기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그 후 고려시대의 용흥사의 관련 사실은 1177년(명종 7) 승려 효초 등이 발원하여 향로를 주조하였다. 고려말 승려 각료와 신도 곽항이 중창하여 요항사라고 하였던 것 같으나 조선초 억불시책을 거쳐 임진왜란시 폐사된 듯하다.
    1614년(광해군 6)에 승려 지혜가 요항사 터를 보고 개탄하여 20여 년간 중창하여 용흥사와 6암자로 재창건하였다. 1631년(인조 9)부터 1651년(효종 2)까지 승려 사경 등이 대웅전 등을 중수하였다. 숙종대 주지 종혜와 엄공 등이 중창하여 낙동강 서쪽의 총림이 되었다. 발굴된 명문에 의하면 차명룡 부부는 1694년(숙종 20)에 용흥사에 시주하였으며, 그 무렵 용흥사 건물의 재목이 1695년(숙종 21)에 연암서원을 짓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1705년(숙종 31)에 창녕 출신 문인 윤우갑이 죽림재를 짓고 살면서 용흥사에 와서 시를 남겼다.
    이렇듯 용흥사는 『여지도서』나 『가람고』 등에 새롭게 추가 기록되었다. 그리고 18세기 「광여도」, 「해동지도」(1724년), 「지승」, 「동여도」, 「창녕군 읍지」 등에 기록이 보인다. 대구 동화사에서 1728년(영조 4) 「삼장보살도」와 「지장시왕도」 조성시에 용흥사 화사 의균이 불사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에 의균이 창녕 용흥사 「아미타설법도」도 제작하였는데, 이 불화의 “창령 용흥사 조경 극행 비구”라는 기문에서 용흥사 승려 조경과 극행 등이 참여하였다. 한편 용흥사의 표충사 제향 참사록에 의하면 1749년(영조 25) 부터 1813년(순조 13)까지 10여 차례 참사하였다. 창녕 용흥사 승려 선일, 순행, 수한, 설허지연, 보관, 용파도주 등이 밀양 표충사 춘추 제향에 참여하였던 것이다.
    영조 이후 정조 및 순조, 고종대의 지리류에도 용흥사가 찾아진다. 예컨대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 권1에서도 찾아진다. 의례집 『춘관통고』에 의하면 1788년(정조 12)경 이후 성균관에 매년 흰 종이 50권을 바치도록 하였다. 승려 득림은 전답을 시주하였고 득찰과 도반으로 용흥사 불사에도 참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826년(순조 26) 예조의 관문에 의거하여 영조의 서녀인 화령옹주의 방원당으로 삼았다. 즉, 용흥사는 화령옹주의 원찰이었고 부속 암자로는 심적암, 은적암, 극락암, 각료암, 남암, 북암 등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관보에 주지 임명에 관한 기록이 보이다가 폐사되었다.

    영어초록

    Yongheungsa Temple was an important temple in the Biseulsan area of Changnyeong, but is now gone. Related literature records include Donggye Gyeongil, a Buddhist monk's ritual for Byeokam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he writings of Nam Yoo-yong, a civil servant. This document records a brief foundation, especially the reconstruction and death of King Sukjong, King Yeongjo, and King Jeongjo after the Imjin War.
    Yongheungsa Temple was founded by Silla's high priests. After that, the only record of Yongheungsa Temple in the Goryeo Dynasty was that a monk, Hyocho, and others originated in 1177 (the 7th year of King Myeongjong's reign) and cast incense burner. It seems that it was called Yohangsa Temple in the middle of the late Goryeo Dynasty by the monk's cabinet and the believer Kwakhang, but it seems to have died during the Imjin War after the policy of paying back in the early Joseon Dynasty.
    In 1614 (the 6th year of King Gwanghaegun's reign), Buddhist monk Jihye saw the site of Yohangsa Temple and deplored it, and reconstructed it into Yongheungsa Temple and 6 hermitages for 20 years. From 1631 (the 9th year of King Injo's reign) to 1651 (the 2nd year of King Hyojong's reign), Buddhist monks and sagyeong rebuilt Daeungjeon Hall and others. The governor of Sukjongdae, Jonghye and Eomgong, reconstructed and became a general forest on the west side of the Nakdonggang River. According to the excavated inscription, Cha Myung-ryong and his wife gave a testament to Yongheungsa Temple in 1694 (the 20th year of King Sukjong's reign), and at that time, the timber of the Yongheungsa building was used to build Yeonamseowon in 1695 (the 21st year of King Sukjong's reign). In 1705 (the 31st year of King Sukjong's reign), Yun woo-gap, a writer from Changnyeong, built Jukrimjae Pass, came to Yongheungsa Temple, wrote poetry, and left behind.
    As such, Yongheungsa Temple was newly added to "Yejidoseo", a geographical feature of the late Joseon Dynasty. In the Buddhist painting of Donghwasa Temple in Daegu, Yongheungsa Uigyun participated in the Buddhist painting. Meanwhile, according to records on the ritual of Pyochungsa Temple in Miryang, from 1749 (the 25th year of King Yeongjo) to 1813 (the 13th year of King Sunjo), the monk Seonil and the monk Sunhaeng in Yongheungsa Temple in Changnyeong participated more than 10 times.
    According to Yejo's official document in 1826, Yongheungsa Temple was made the main hall of Princess Hwaryeong, the princess of King Yeongjo. Affiliated hermitages included Simjeokam, Eunjeokam, Geungnakam, Jangnaeam, Namam, and Bukam.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records of the appointment of the governor of Changnyeongsa Temple appeared in the official gazette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nd only the site remained and disappeared.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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