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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고대사 인식과 연구경향 (North Korea's recognition of ancient history and a tendency of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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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18 최종저작일 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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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고대사 인식과 연구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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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수록지 정보 : 한국학논총 / 29권 / 167 ~ 224페이지
    · 저자명 : 문창로

    초록

    『조선전사』는 주체사상에 기초한 사회역사의 원리로서 이른바 ‘主體史觀’이 그 기저에 자리하며, 편찬의 궁극적 목적은 북한사회의 ‘主體思想化’에 있다고 하였다. 主體史觀에서는 ‘民族史의 自主性’과 ‘鬪爭의 歷史’를 부각하였으며, 고대사에서 노예제적 예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인민대중의 투쟁과 漢나라의 침략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사에서 奴隸社會의 발생과 발전, 그 분해과정은 사회발전의 법칙에 따른 합법칙적 현상이었다고 규정하였다.
    북한학계의 時代區分은 1990년대 이후 고대의 상한 및 중세의 시점을 크게 소급하였데, 구석기시대의 유적편년을 100만 년 전으로,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6,000년경으로 그 시작을 상향하였다. 고대의 건국시기도 古朝鮮은 기원전 10세기 이전으로, 古代夫餘와 辰國은 각각 기원전 7세기와 기원전 6세기로 올려 잡았다. 또한 高句麗에 선행한 ‘句麗’를 고대국가로 설정하여 기원전 5세기경부터 존재한 것으로 본다.
    북한은 고조선․부여․진국사를 ‘古代’로 설정하고 그 성격을 奴隸制社會로 파악하였다. 이는 1950년대 후반 ‘삼국시기의 사회경제구성에 관한 토론’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면서 삼국성립기부터 19세기 중엽까지를 中世封建制社會로 합의를 보면서 비롯하였다. 1960년대 전반 고조선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고대사 연구도 활성화되었다. 주로 고조선의 사회성격과 위치문제를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졌으며, 이지린의 견해가 유력하게 채택되었다. 고조선의 위치는 ‘遼東中心說’을 기반으로 서쪽 경계와 남쪽 경계, 王儉城의 위치 등에 있어서 약간의 수정이 있었지만, 대체적인 논지는 1990년대 초반 ‘단군릉’ 발견 이전까지 유지되었다. 또한 사회성격은 ‘犯禁八條’의 기록과 ‘殉葬制’에 주목하여 노예소유자사회로 규정하였다.
    唯物史觀의 입장에서 ‘檀君神話’는 고조선의 건국과 직접적으로 연결시켜 해석하지 않았지만, 1990년대에 들어 고조선의 건국사실을 전하는 자료임을 분명히 하였다. 특히 주체사관의 극단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조선민족 제일주의’는 고대사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民族의 起源과 관련하여 이른바 ‘단군 민족주의’로 불리는 平壤 중심의 역사인식으로 전환하였다. 곧 평양은 단군의 출생지이자 고조선을 건국한 도읍지이며, 대동강 유역은 인류의 발상지로서 세계 5대 문명에 비견되는 ‘大同江文化論’으로까지 확대 재생산되었다.
    한편 殉葬은 노예제사회의 절대성을 수반하는 생산구조라고 보기 어려운 점, 고조선이 넓은 영역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회발전 단계에 도달하였는지에 대한 논증이 부족한 점, 그리고 유물분포를 바탕으로 설정한 문화권역이 고조선이라는 하나의 정치세력권으로 상정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점 등이 제기된다. 夫餘 및 辰國史에 대한 서술 역시 노예소유자사회로 설정한 근거가 부족하며, 고조선사의 부수적인 존재로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高句麗史를 중심으로 한 삼국시대사의 서술경향은 신라사 중심의 연구를 진행했던 남한학계와 대비된다. 특히 고구려사는 고조선의 계승자로서 투쟁과 확장, 통일 지향적 성격, 선진문화의 창조와 전파 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가야사는 1980년대 이후에도 백제사와 함께 주로 고대 한․일관계사 측면의 연구가 활발하였다.
    『조선전사』를 비롯한 북한학계의 연구 성과는 전체적인 서술에 있어서 비교적 쉬운 용어를 사용한 점이나 우리 역사에 대한 일관된 논지의 체계화 노력 등은 주목할 만하다. 곧 우리에게 역사연구를 대중과 쉽게 연결시켜 역사교육의 장으로 엮어내는 과제를 해결하는데 눈여겨 볼만하기 때문이다.

    영어초록

    Thus far, I have examined the study conception of the Ancient history and the results of it chiefly by ‘The whole history of Chosun(朝鮮全史)’. In sum, North Korean historical perception emphasized the autonomy and struggle of national history after the acceptance of historical materialism based on the human-centered philosophical theory, the flow of the juche view of history that put stress on the independence of the public. Consequently, Korean Ancient history developed through the normal course according to the historical materialistic principle-confirming steps in social development, and has considered Kochosun, Buyeo, Kokuryu and Jinkuk as the first society in which rules based on private possession of slavery.
    This is derived from the agreement on a controversial issues about the social and economical composition of the period of the Three States in 1950 North Korea that medieval feudal society began the period of the establishment of the Three States (around the birth of Christ). As the period of medieval society was defined, and accordingly the former period was considered as ancient society, the study of Ancient history has become revitalized with the serious debate over Kochosun in early 1960s. In the midst of the heated controversy over the features of the Kochosun society, its capital location issue, and the problem of setting up domain related to it, Lee Ji Rim's view was finally selected; based on this argument, this view was reflected in "The whole history of Chosun(朝鮮全史)" after some revising work. The reason why North Korean academic world sees Kochosun as a slavery society relies on SunJang system, burial of the living with the dead, and eight prohibition laws which were both found during excavations. Yet, Sunjang could not be a sufficient support as it leaves some questions unsolved; it is not an ultimate production system that is concomitant of the absolute feature of a slavery society; there is a lack of proof that Kochosun really conquered such vast area and developed the social system enough to rule the territory; and it could be an error to limit the wide cultural sphere bounded by the range of relics into one political power, Kochosun. In addition, the base is weak to claim Buyeo and Jinkuk were also slavery societies, and there has been a strong consideration that they were a subsidiaries of Kochosun.
    Although there are some problems in contents in the study results of North Korean academic world, there are illuminative aspects in them including the use of relatively easy words and the effort of the consistent point in terms of our history. It could be a very useful tool to link history study with the public easily and create a promising field of history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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