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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성부 東村의 인문경관 연구 (A Study on the Human Landscapes of Dongchon(東村), Hanseongbu(漢城府))

5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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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13 최종저작일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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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성부 東村의 인문경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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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 수록지 정보 : 한국한문학연구 / 76호 / 437 ~ 486페이지
    · 저자명 : 안순태

    초록

    본고는 조선시대 한성부 동촌의 인문경관을 개관하고, 동촌의 명승지를 중심으로 한 조선시대 문사들의 문학 활동을 살핀 것이다. 동촌은 낙산 아래 마을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곳은 번화가와 가까우면서도 도성 안에서 특히 한적한 곳이었다. 고려 때부터 명가들의 집이 많았으며 조선 전기까지 인가가 즐비했다 할 정도로 번성한 곳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주민들이 모두 떠나 황폐해진다. 조선 후기에, 특히 정조는 동촌을 부흥시키려 다방면으로 노력을 하였지만 큰 성과를 보이지는 못하였고, 근대의 물결도 신식 학교와 선교 기지가 들어서면서 뒤늦게 찾아들었다.
    동촌의 주요 명승지로 興德洞과 잣골(栢洞), 申臺와 梨花亭, 夕陽樓와 朝陽樓 등을 들 수 있다. 흥덕동에는 조선 초 흥덕사가 있었으며 그곳의 연꽃이 특히 유명하였다. 인근에 송시열의 집이 들어서자 조선 후기에 이곳은 宋洞으로 더 알려졌으며 봄꽃으로도 유명하여 많은 유상객들을 불러들였다. 한편 오늘날의 가톨릭대 신학대학이 위치해 있는 곳은 조선 초부터 잣나무가 많았는데, 조선 초 공신 박은이 이곳에 栢林亭을 짓고 기거하면서 세상에 ‘백자동(백동)’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조선 중기에는 이곳에 松亭이 들어서고 李廷龜 등 당대 여러 문인들이 이곳에서 노닐었다.
    동촌에서 풍광이 가장 빼어난 곳으로 손꼽히는 곳은 申光漢의 집이 있던 申臺였다. 그동안 신대와 이화정, 석양루의 위치가 혼동되어 왔는데, 본고에서 각각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비정하여 이 세 곳이 서로 다른 곳임을 밝혔다. 신광한의 집 瀑泉精舍는 경관이 빼어나 수많은 묵객들이 찾았으며 특히 19세기 전반, 李晩秀 등은 신대를 중심으로 詩社 ‘紅泉社’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본고에서 그들의 시사 활동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폈다. 신대에서 멀지 않은 곳, 지금의 이화장 자리에는 이화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이화정’이라는 이름은 성종이 崔恒의 집을 사서 김일손에게 주는 과정에서 강희안에 의해 붙여진 것이다. 조선후기에는 효명세자가 특히 이곳을 좋아하여 수차례 이곳을 찾아 시를 남겼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에는 배꽃이 볼 만하였는데 근대로 오면서 정자는 사라지고 활터만 남아 있다가 이승만의 별장과 기념관으로 활용되었다.
    이화정 인근에는 수 세기 동안 한양에서 가장 화려하기로 이름이 났던 夕陽樓가 있었다. 석양루는 효종의 아우 인평대군의 사저인 ‘大宮’의 대표적인 건물이었다. 인평대군은 객을 좋아하여 석양루에 객들을 불러 잔치를 일삼았는데, 그 규모나 건물의 화려함에 걸맞게 당시 잔치 풍경은 몹시 사치스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사정을 南公轍의 「夕陽樓記」 등을 통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석양루가 있던 대궁은 인평대군 사후 퇴락해 가다가 19세기 후반 그곳에 왕실의 관곽을 제작, 관리하던 관서인 長生殿이 들어서게 된다. 장생전은 한국전쟁 이후까지 어느 정도 예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으나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인평대군은 그 형 효종과 우애가 깊기로 유명하였는데, 효종이 등극하기 전 살던 집이 석양루 인근에 있었다. 그곳을 ‘本宮’ 또는 ‘於義宮’이라 하며 於義洞이라는 지명도 어의궁에서 유래했다. 어의궁을 대표하는 건물은 朝陽樓였다. 조양루는 석양루와 마찬가지로 중층 누각이었으며 1900년대에 훼철되고 그 자리에 ‘孝宗潛邸舊基’ 비각과 효종이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1960년대까지 남아 있었다.
    본고는 조선시대 동촌의 주요 명승지 위치를 구체적으로 비정하고 명승지의 특징적인 사항들, 그리고 명승지를 중심으로 한 주요 문학 활동에 대해 살핀 것이다. 그동안 동촌에 대한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동촌 전체를 개관하여 그 지정학적 특징이나 명승들의 구체적 위치를 밝힌 연구는 부족했다. 본고가 향후 동촌 관련 문학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영어초록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human landscapes of ‘Dongchon’東村 in Hanseongbu漢城府, and to examine the literary activities of the writers in there in Joseon period. ‘Dongchon’ refers to the village of the foot of Nak-San駱山, the east mountain of Hanyang漢陽. It was close to downtown but still secluded. Since Goryeo, there were many houses of famous families, and it was a thriving place that was full of famous people until the former Joseon period. However, during the Imjin War壬辰倭亂(Japanese Invasion of Joseon in 1592), all the villagers left, and the village was devastated. In the latter Joseon period, in particular, Jeongjo正祖 tried to revive Dongchon in many ways, but it did not show much success, and modern wave came late as modern schools and mission base entered here.
    The main scenic spots in Dongchon were Heungdeokdong興德洞, Jatgol (Baekdong栢洞), Shindae申臺, Ewhajeong梨花亭, Seokyangru夕陽樓 and Joyangru朝陽樓. In Heungdeokdong, there was Heungdeoksa興德寺 Temple in the early Joseon period. It was called Songdong宋洞 since Song Si-yeol宋時烈 built his house and lived there. Meanwhile, the first foot of Naksan was called ‘Jatgol’ because there were so many pine trees. In the middle of Joseon, Songjeong松亭 was built there, and several literary writers, including Lee Jung-gui, enjoyed there.
    One of the best places in Dongchon was Shindae申臺(129 Dongsungdong) where Shin Gwang-han's house was located. Shindae had a lot of visitors because of its beautiful scenery. Not far from Sindae, there was a pavilion called Ewhajeong(2 Ewhadong). Ewhajeong was named by Kang Hee-an姜希顏 when Sungjong成宗 bought Choi's house and gave it to Kim Il-son. In the late Joseon, Hyomyeongseja孝明世子 especially liked here, so he visited this place several times and wrote poems. As the name implies, the pear blossoms were worth seeing here, but as the modern age came, the pavilion disappeared and Lee Seung-man’s villa was built here.
    Near Ewhajeong, there was the Seokyangru夕陽樓(27 Ewhadong), which had been known as the most gorgeous house in Hanyang for centuries. Seokyangru was a representative pavilion of the Daegung大宮 of Inpyeong daegun麟坪大君, Hyojong's brother. He liked people and party, so the tremendous parties were often held here. We can see the situation through Nam Gong-cheol南公轍's “Seokyangrugi 夕陽樓記”. However, Daegung大宮, where the Seokyangru was located, fell down after the death of Inpyeong daegun. Since then, Daegung was replaced by Jangsaengjeon長生殿.
    Inpyeongdaegun was famous for his brotherhood with his brother Hyojong. Hyojong’s house was called 'Eoigung'於義宮 and the name 'Eoidong' came from 'Eoigung'. Hyojong and Inpyeongdaegun communicated with each other between Choyangru and Seokyangru. If the representative building of Inpyeongdaegun's house, Daegung, was Seokyangru, the representative building of Hyojong’s 'Eoigung' was Choyangru. In this paper, I explained why Seokyangru and Choyangru got such a name in consideration of the topography and the origin of the name. Choyangru, like Seokyangru, was a middle-level pavilion, and it had been preserved until modern times. But they disappeared without any trace in the 1960s and 1950s.
    This paper specifically defines the locations of major scenic spots in Dongchon, and points out the characteristics of the scenic spots and major literary activities centered on the scenic spots. Although there were some studies on Dongchon, there was a lack of research that revealed the geopolitical features and the specific locations of scenic spots of Dongchon. I hope this paper could serve as the basis for studying literature related to Dongchon.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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