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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한인사회를 통해본 천도교와 민족운동 (A Study on Cheondogyo and National Movement Through the Korean-Cuban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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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13 최종저작일 20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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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한인사회를 통해본 천도교와 민족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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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민족운동사학회
    · 수록지 정보 : 한국민족운동사연구 / 95호 / 81 ~ 118페이지
    · 저자명 : 성주현

    초록

    쿠바한인사회는 192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05년 인천 제물포에서 멕시코로 이주하였던 한인 중 일부가 쿠바로 재이주하면서 한인사회가 형성되었다. 초기 멕시코로의 이주는 영국인이며 멕시코 국적을 가진 구제 이민 브로커 마이어스(Meyers)에 의해 불법적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노동계약으로 4년을 보냈지만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멕시코 전역으로 흩어졌다. 이중 3백여 명이 1921년 쿠바로 재이주하였고, 초기 한인사회를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쿠바로 재이주한 한인 역시 멕시코보다 나은 생활은 아니었지만 서로 의지하고 삶을 영위하였다. 당시 한인사회의 중심적 역할을 한 임천택은 처음에는 기독교를 신앙하였지만, 천도교의 인내천과 민족의시에 공감하고 천도교에 입교한 후 쿠바에 당시 천도교 조직인 종리원을 설립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나갔다. 뿐만 아니라 비록 해외에서 일제 식민통치를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다.
    쿠바의 천도교인들은 천도교인이 되기 이전부터 대한인국민회 지방조직에 참여하였으며, 천도교 입교 이후에도 꾸준히 참여하였다. 이들은 쿠바의 천도교인 마탄사스와 칼데나스 지방회에 주요 임원으로 있으면서, 의무금과 인구세, 그리고 독립의연금 등을 납부하는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들이 제공한 의무금 등 의연금은 대한인국민회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민족운동 단체의 활동자금으로 활용되었다. 이외에도 마탄사스와 칼데나스에 민성학교, 진성학교 등 국어학교와 청년학원 등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전개하였으며, 3ㆍ1절, 국치일 등 기념일과 윤봉길과 이봉창의사의 추모식을 통해 민족의식과 독립의 열기를 고취시켰다. 뿐만 아니라 이들 기념식과 추모식에는 쿠바 천도교인들은 3ㆍ1운동의 약사와 독립선언서 낭독, 각종 강연 등에 참여하였다. 한인동포를 위한 구제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특히 쿠바 천도교종리원을 설립하면서 상호부조의 결의를 한 것은 천도교의 유무상자 정신을 잘 실천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쿠바한인사회의 중심에는 쿠바 천도교종리원장으로 활동하였던 김세원, 이세창, 임천택 등이 있었다. 이들은 천도교뿐만 아니라 쿠바한인사회의 중심적 리더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쿠바의 천도교는 1928년 4월 1일 처음으로 발을 내닫고, 1930년 3월 23일 설립되어 10여 년간 활동하였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쿠바한인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한국과 정반대의 이국인 쿠바에 천도교가 활발하게 활동하였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영어초록

    The Korean community in Cuba began to form from the 1920s. The community was formed when some of the Koreans who moved to Mexico from Jemulpo, Incheon in 1905 returned to Cuba. The initial migration to Mexico was illegal by a British emigration broker, Meyers, who had Mexican nationality. The Koreans spent four years on labor contracts, and were unable to return home and scattered throughout Mexico. About 300 people among them reinstated to Cuba in 1921 and helped to form the early Korean community. Koreans in Cuba were not better off than Mexico, but they depended on each other to live their lives. Lim cheon-taek, who played a central role in the Korean community at that time, initially believed in Christianity, but entered the Cheondogyo because he sympathized with the main religious values of it, and established Jongriwon, a Cheondogyo organization, in Cuba and had been arousing national consciousness. Furthermore, although he did not directly experience Japanese colonial rule because he was abroad, he fought for his country’s independence.
    Cheondogyo believers in Cuba had been participating in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s local organization even before they became believers, and continued to participate after entering a faith. They have been chief officers at Cuba’s Cheondogyo Branch in the Matansas and the Kaldenas provinces, and have not been negligent in paying for donations, tax, and independence funds. The donations provided by them were used as funds for the activities of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and the provisional government. In addition, they established Korean language schools and academies for the young such as Minsung School and Jinsung School in the Matansas and the Kaldenas to promote national education. In addition, celebrations, such as March 1st and National Humiliation Day, and memorials of Yoon Bong-gil and Lee Bong-chang were also staged by them to promote national consciousness and wish for independence. The Cheondogyo believers in Cuba also participated in digest explanation of the March 1st Movement, reading of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and other lectures. They also actively involved in relief activities for Korean immigrants. In particular, the resolution of mutual assistance during the establishment of the Cuba Cheondogyo Jongriwon is a good example of the spirit of Cheondogyo.
    At the center of the Korean community in Cuba were Kim Se-won, Lee Se-chang, and Lim Cheon-taek, former heads of the Cuba Cheondogyo Jongriwon. They were faithful to not only the religions but also their role as central leaders of the Korean community in Cuba. Cuba’s Cheondogyo, sat a foot for the first time on April 1st, 1928 and was established on March 23th, have a limit of short activity for 10 years, however it is evaluated as important that the Cheondogyo affected to Korean community and had been active in Cuba.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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