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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전남 제주 지역의 콜레라 발병세와 지역적 질병 문화권 (The 1946 Cholera Epidemic of Chŏnnam and Cheju Areas and the Cultural Area of Dis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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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07 최종저작일 2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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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전남 제주 지역의 콜레라 발병세와 지역적 질병 문화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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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
    · 수록지 정보 : 역사학연구 / 81호 / 121 ~ 180페이지
    · 저자명 : 임종명

    초록

    5월 말부터 콜레라가 발병했던 전남에서는 목포 지역이 주요 발병 지역이었다. 즉 5월 말 콜레라가 발병했던 목포에서는 환자와 사망자가 계속해서 발생하면서 그 지역은 6월 중순 환자와 사망자 규모에서 경남 부산, 전북 부안 지역과 함께 남한 지역에서 3대 콜레라 발병지가 되었다. 그렇지만 6월 초순 콜레라가 발병했던 여수 지역과 그달 중순 환자가 발생했던 순천 지역의 발병세는 8월 상반기에 ‘안정적’이었던 목포 지역 발병세를 추월하였다. 이는 발병 초기와는 달리 전남의 발병 중심지가 8월 중순경 전남 서남권 또는 목포 권역에서 전남 동부권, 또는 순천 권역으로 옮겨 갔음을 의미한다. 반면에 6월 중순에 콜레라가 발병했던 광주 등 전남 북부 내륙의 광주 권역에서의 콜레라 발병세는 강하지 않았다. 이들 추세를 배경으로 하여, 전남은 콜레라 발생 초기였던 6월 중순까지 전북과 함께 두 번째나 세 번째로 큰 발병·사망자 규모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6월 말 홍수가 집중되었던 경북과 전북 지역에서 콜레라 발병이 폭증하면서, 6월 하반기부터 발병세가 완화되기 시작했던 전남 지역의 상대적 발병 규모는 앞의 지역들에 의해 추월되었다.
    1946년 콜레라가 남한 지역에서 확산하던 초기 행정적으로 전남에 소속되어 있던 제주 지역에서는 6월 10일 처음으로 콜레라 환자가 발생했다. 그 이후 계속 해서 콜레라가 발병했던 제주도는 6월 중순 콜레라 발생 규모에서 ‘선도적’이었던 부산, 목포, 또 전북 정읍 등과 함께 콜레라 발병의 선도적 지역 중 하나였다. 더군다나 6월 하순의 장마를 겪으면서, 제주도는 제주도의 발병 규모가 목포의 그것을 능가하면서 그 지역은 6월 말 대구, 부산, 목포와 함께 최대 규모 콜레라 발생 지역으로 비정되었다. 그런데 인구 규모 대비 제주도의 발병 규모는 경북 등 타 지역의 그것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것이었다. 또한, 도서 지역이었던 제주도의 대규모 콜레라 발병은 해방 직후 높은 인구 이동과 밀항, 밀무역 등 종전 직후 동아시아 정치·경제 상황과 제주 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연관된 것이기도 했다. 이것은 1946년 전남과 제주 지역의 콜레라 발병과 만연이 단지 세균학적이거나, 자연적 성격만을 가진 것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그것은 종전/해방 직후 전라·제주의 지역적, 남한의 정치·경제·사회적 맥락을, 나아가 근대 동아시아권역의 역사적 맥락을 가진 사태였다.

    영어초록

    Mokp’o in which cholera epidemic had broke out since late May 1946 worked as the center of the epidemic in South Chŏlla province. In the mid June, the harbor city became one of the top three major centers of the cholera epidemic in South Korea. In the early August, however, the number of confirmed case and death of the city where the cholera outbreaks came to be stable were to be outnumbered by those of Yŏsu and Sunch’ŏn where the epidemic broke out in the early June and the mid of the same month respectively. This shows that the center of the epidemic in the province was shifted from the southwest area of the province, or Mop’o and its vicinities from the east area of the province, or Sunch’ŏn and its vicinities. Compared with these two major areas of the province, Kwangju, the provincial capital, and its vicinities located in the north inland area of the province continued to be comparatively minor in their cholera outbreaks. Based upon the overall development of the outbreaks, South Chŏlla province continued to be ranked the second or the third in South Korea in terms of the numbers of cholera case and death until the mid June characterized as the time of the initial development of the epidemic, and also until late of the month. From that time on, the case and death in South Chŏlla provinces were outnumbered by those in North Chŏlla province and North Kyŏngsang one because the situation with the epidemic began to abate in the former province while the pandemic situation got worse than ever in the latter two provinces severely damaged by contemporary great flood.
    Next, there broke out cholera epidemic in Cheju area in the early June when the area was contemporarilly under South Chŏlla province in the South Korean local administration system. From the mid June on, the area became one of the major centers of the epidemic in South Korea. Especially after the disastrous flood around the country, the area, continuing one of the major centers, surpassed Mokp’o in terms of the number of case and death of the area. At the same time, the cholera outbreak in the area reached the largest percentage of population in South Korea even though the case and death of North Kyŏng province and other province outnumbered those of Cheju. The worst situation with the pandemic in relation to population was due to not a few causes; post-colonial large-scale population movement, and highly activated illegal trade and passage to and from Japan Given this, we can conclude that the 1948 cholera epidemic in South Chŏlla and Cheju area was not only a natural, or bacteriological, occurrence, but also a post-War/post-colonial East-Asian and South Korean socio-historical incidence.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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