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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의 독립운동과 선학원 - 재산환수승소판결문을 중심으로 - (Independence Movement Activities by Ven. Manhae and Seonhakwon - Focusing on the Record of a Court Judgment in Favor of Property Restitution -)

3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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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5.03 최종저작일 20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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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의 독립운동과 선학원 - 재산환수승소판결문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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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 수록지 정보 : 禪文化硏究 / 26호 / 7 ~ 44페이지
    · 저자명 : 최종진

    초록

    만해 용운선사(이하 만해)는 선학원을 중심으로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항일운동과 함께 불교계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그는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으며 또한 자비를 실천하고 다른 이의 깨달음을 위해 노력하였다. 한국불교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만해의 행적과 희생적인 노력은 민족불교의 중요한 초석이었으며 왜색불교를 타파하기 위한 임제종 운동, 그리고 선학원과 항일 운동이라는 새로운 연구의 지평을 열 수 있는 것이다. 선학원은 임제종을 시원(始原)으로 삼아 시작되었다. 선학원 설립의 시초부터, 만해는 견고한 이념적 토대를 실질적으로 제시하게 된다. 만해의 독립운동은 선학원 설립의 정신적 이념이 되었으며 선학원은 설립 이후, 만해를 중심으로 한 불교계 항일운동의 근거지로 기여하였다.
    일찍이 그는 조선불교청년회 창설, 그리고 조선불교임제종 창립 즉 보종운동(保宗運動)과 같은 다양한 불교계의 항일운동 내지 그 흐름을 주도하였다. 만해는 임제종의 관장[대표]을 맡았던 일이 있었고, 임제종의 전통을 전승한 선학원을 활동거점의 중심지로 삼았다. 그래서 오늘날 만해는 선학원을 설립한 여러 선사들과 더불어 선학원 조사 가운데 한 분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만해는 3·1만세운동의 배후자로 일제에 의해 검거되어 영어의 몸이 되었다가 선학원 창설 직후인 1921년 12월, 출옥하면서 선학원으로 운신하였다. 여러 자료를 토대로 검토해보면, 만해는 선학원의 정기 총회에 꾸준히 참여했고, 이 곳에서 1931년까지 약 10여 년 동안 그는 한국불교의 정체성 회복과 독립운동으로 동분서주하였다.
    선학원의 만해는 좌익과 우익의 연합체인 ‘신간회’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신간회의 경성지회 대표를 맡아 활동하였다. 또한 한국불교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한문 불적을 유려한 국한문 혼용체로 번역하였고, 끊임없는 대중 강연으로 교육활동을 병행하였다.
    일본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망령의 상징이라 할 일본경찰에 의해 만해는 6·10 만세운동의 주요 배후 인물로 지목 받아 선학원의 입구에서 긴급 체포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의 독립, 그리고 한국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지원하며 찬동 연설을 강행했으며, 조선학생을 위한 대학인 민립대학을 설립하고자 시도하였다.
    본 연구의 목적은 만해가 선학원에 머물며 활동했던 상기의 제반활동을 시기적으로 재검토하는 한편, 만해의 독립운동과 선학원의 관계를 조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재산환수소송 판결문을 통해 선학원 설립의 시대적 상황과 설립에 끼친 만해의 영향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련의 사실을 통해 선학원의 만해가 전개한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 불교 보종운동인 임제종 운동 및 항일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선학원 설립에 대해 만해가 끼친 영향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본 연구는 선학원이 덕성학원과 재산환수의 건으로 소송을 진행했던 판결문을 객관적인 자료로서, 그리고 중요 1차 사료로 채택하였다.
    3·1 만세운동으로 감옥에 갇혀 있던 만해 용운 선사는 감옥에서 나온 직후, 선학원을 활동 중심지로 삼고 일본제국주의에 효율적으로 대항하는 한편 식민주의에 대항하여 한국역사에 깊이 스며든 불교전통의 보존을 위한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만해의 행적은 근현대불교의 정체성과 개혁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본질적 성격을 지닌 사례라 할 수 있다. 불교계의 독립운동이나 불교전통에 대한 보존과 전승을 보종운동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선학원의 설립 역시 만해의 행적과 그 궤를 같이한다. 선학원 설립의 지남(指南)이 되었던 불교계의 보종운동과 항일운동 깊숙이 만해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영어초록

    Seonhakwon was established upon the foundation of the Yimje Order. When Seonhakwon was first founded, Manhae Yongun Seonsa(Ven.) provided practical suggestions regarding the establishment of a robust ideological foundation.
    Due to this contribution, he i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many founders of Seonhakwon, along with many monks who were involved with the sect from the beginning.
    This is because Ven. Manhae had served as the executive chief of the Joseon Buddhist Yimje Order, and considered Seonhakwon - the historical successor of the Yimje Order - as the hub of his spiritual activities.
    In addition to dedicating his life to the independence of Korea, Manhae Yongun Seonsa(Ven.) led a life of service for the Korean people. He practiced mercy while making an effort for other people to reach this enlightenment.
    Such an effort by Ven. Manhae derived from traditional teachings of Buddhism.
    His efforts were self - sacrificial and noble, and opened the way for the future of Korean Buddhism.
    Manhae Yongun Seonsa(Ven.) of Seonhakwon took active participation in the Singanhoe, an alliance created from the balance between the political left and right. He served as the chairman of the Seoul branch of the organization.
    Also, in an attempt to propagate the traditional teachings of Korean Buddhism, he made the Korean translation of the Buddhist books originally translated from Sanskrit to Chinese. Ven. Manhae also consistently gave lectures for the enlightenment of the Korean people.
    In the process, the Japanese Police - the symbol of Japanese imperialism and colonialism - began suspecting him as the leader of the June 10 Independence Movement, so Ven. Manhae was arrested at the entrance to Seonhakwon.
    Manhae Yongun Seonsa(Ven.) made a constant effort for Korean independence, as well as peace and prosperity for the Korean people.
    He supported the Gwangju Student Independence Movement, and attempted to establish a university funded and founded by the Korean people.
    The objective of the current study is to review the history and identity of Seonhakwon, to elucidat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independence movement by Manhae Yongun Seonsa(Ven.) and Seonhakwon.
    Once, Seonhakwon stood in the court as a plaintiff in a civil lawsuit regarding a property issue. The judgment from the trial in that lawsuit reveals the impact of Ven. Manhae on the foundation of Seonhakwon.
    The current study adopted the written judgment from the lawsuit as a crucial and objective material that can clarify the impact of Ven. Manhae on the foundation of Seonhakwon.
    In addition, facts disclosed in various data indicate that Manhae Yongun Seonsa(Ven.) regularly attended the ordinary general meetings of Seonhakwon.
    When he was released after serving a prison time due to his involvement in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Ven. Manhae relocated his center of activity to Seonhakwon to engage in a dynamic anti - Japanese movement. In addition, to efficiently resisting the Japanese imperialism from Seonhakwon, he also fought against the Japanese colonialism. Furthermore, he did not spare his effort to preserve the Buddhist traditions deeply penetrating the history of Korea.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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