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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族 화가 孟永光에 대한 조선 후기 지식인의 기억들 - 명청교체기 명나라 포로와 조선 지식인의 만남 - (Memory of the Artist Maeng Yeonggwang-Meeting of a Prisoner from the Ming Dynasty and an Intellectual from Joseon during the Transition from the Ming to Qing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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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4.29 최종저작일 20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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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族 화가 孟永光에 대한 조선 후기 지식인의 기억들 - 명청교체기 명나라 포로와 조선 지식인의 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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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 수록지 정보 : 동아시아문화연구 / 60호 / 107 ~ 131페이지
    · 저자명 : 김일환

    초록

    이 논문은 한 외국인 화가의 삶이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다양한 기억으로 남는 과정을 살폈다. 명청교체기 關外에서 활동하던 명나라[漢族] 화가 孟永光은 조선의 마지막 對明使行이 된 金堉을 만나 초상화를 그려준다. 그후 명나라 장수가 청에 항복하면서 孟永光은 포로가 되어 瀋陽으로 끌려간다. 그는 그곳에서 인질로 끌려온 조선의 왕자들과 만나게 되고, 왕자를 보필하기 위해 파견된 관리들, 그리고 청나라에 적대적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끌려온 고위 관료 출신의 지식인들과 교유하게 된다. 청나라가 명나라의 수도를 정복한 이후 조선의 왕자들은 귀국하게 된다. 孟永光은 이들을 따라 한양에 들어와 3년 6개월 동안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치다 청나라로 돌아가고, 이후 順治帝의 사랑을 받는 宮廷畫家가 된다.
    孟永光은 한양 궁중에서 활동할 때 임금을 ‘나라를 망친 임금의 행위’로 이끄는 인물로 매도당했다. 청나라에게 당한 치욕을 씻어낼 일을 도모해야할 때에 임금과 지식인들이 그림이나 즐기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그가 귀국하고 한 세대가 흐른 뒤에 그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단순히 그림만 잘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멸망한 명나라를 잊지 못하는 藝人이면서, 같은 처지에 놓인 조선의 아픔에 공감한 지식인으로 평가받았다. 그가 金尙憲에게 그려준 <淵明採菊圖>는 宋時烈의 해석을 거치면서 ‘정의로움[義氣]’의 상징이 되었다. 국화의 꽃술을 붉게 그림으로써 김상헌의 충성심을 형상화시켰다는 것이다. 한편 봉림대군(뒷날의 효종)이 孟永光의 고향인 會稽를 그려달라고 한 것은 평범한 산수도를 의뢰한 것이 아니라 臥薪嘗膽의 의지를 보인 행위로 해석되기도 했다. 명나라 출신으로 ‘오랑캐’에 항복한 후, 청나라의 국가 운영에 적극적으로 활약한 인물들에 대해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비판은 매서웠다. 이들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孟永光에 대한 후한 평가는 17세기 이후 復讐雪恥의 정신을 강조하던 조선 사회에서 배태된 독특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영어초록

    This paper investigated the process that a foreign artist’s life took in part of history in the late Joseon Period. Maeng Yeonggwang was an artist during the Ming Period who lived near the border in the middle of the battle between the Ming and Qing Dynasties. He met Kim Yuk, an envoy of the Joseon Dynasty, and drew his portrait. As the commander of the Ming Dynasty, Maeng Yeonggwang depended on surrendering to the Qing Dynasty and was taken to Shenyang as a prisoner. He met the princes from Joseon who came there as hostages. And he associated with the officers sent to take care of the princes and the intellectuals in a high-ranking post who were taken due to what they did against the Qing Dynasty.
    After the Qing Dynasty conquered the capital city of the Ming Dynasty, the princes of Joseon returned home. Maeng Yeonggwang went to Hanyang with them, actively producing artwork for three and a half years, and returned to the Qing Dynasty. After that, he became a court painter favored by the Shunzhi Emperor.
    Maeng Yeonggwang was denounced as a person leading the “behaviors of a king who ruined a country” while he was in the royal court in Hanyang. It was a critique that a king and intellectuals enjoyed painting at a time when they had to wipe away the disgrace from the Qing Dynasty. However, one generation after his return to the Qing Dynasty, opinions about him had completely changed. He was not only a great painter, but also the artist who didn’t forget the collapsed Ming Dynasty; an intellectual sympathized with the pain of Joseon in his same situation. His painting “Tao Yuanming Picking Chrysanthemum,” presented to Kim Sangheon, became the symbol of “righteousness” according to the description by Song Siyeol.
    Song Siyeol explained that the red stamen of chrysanthemum symbolized the loyalty of Kim Sangheon. Prince Bongrim (later, King Hyojong) asked him to draw Kuaiji, the hometown of Maeng Yeonggwang. It was not a simple request as a landscape drawing, but described Prince Bongrim’s will of perseverance. The criticisms by intellectuals in the late Joseon Period of those who were actively engaged in the management of the Qing Dynasty, even though they worked for the Ming Dynasty before, were very acidic. Good critiques of Maeng Yeonggwang, who wasn’t different from them, showed one side of Joseon society emphasizing the spirit of revenging and wiping off a disgrace since the 17th century.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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