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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정재 류치명의 유배 경위와 智島 생활 (The Details of Jeongjae Ryu Chi-Myeong's Exile and Life on Jido in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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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4.24 최종저작일 2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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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정재 류치명의 유배 경위와 智島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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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수록지 정보 : 민족문화논총 / 80호 / 97 ~ 135페이지
    · 저자명 : 김지은

    초록

    이 논문은 定齋 柳致明(1777~1861)의 유배 경위와 유배지에서의 생활을 살핀 글이다. 류치명은 이황 이후 이상정으로 이어진 퇴계 학맥을 계승한 19 세기 영남 남인을 대표하는 학자이다. 영조 대 이후 영남 남인의 중요한 정치 적 과제는 의리를 밝혀 사도세자의 추숭을 이뤄내는 것이었다. 1855년(철종 6)은 사도세자 탄생 2周甲이 되는 해였다. 영남의 유생들은 사도세자추존만인 소를 계획하였고, 公論을 모아 5월에 상소를 올렸다.
    이에 앞서 류치명이 먼저 사도세자의 추숭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虎派 의 領袖로서 영남 남인의 정치적 숙원을 대변하고, 사도세자의 스승이었던 고 조부 柳觀鉉에 대한 후손의 도리를 다하기 위함이었다. 조정에서는 그의 상소 를 국가의 典禮에 대한 도전이라 받아들이며 크게 반발하였다. 결국 류치명은 79세의 나이로 絶島 유배라는 무거운 형벌을 받게 되었다.
    류치명은 4월 13일 집을 출발하였다. 유배길에는 아들과 제자들이 동행하 여 그를 보필하였다. 5월 2일 전라도 智島에 도착하였고, 그때부터 解配의 관 문이 도착한 11월 27일까지 6개월이 넘는 기간을 이곳에 머물렀다. 류치명은 후원자들의 지원과 문인 및 지인과의 교류 속에서 외롭지 않게 유배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조정의 상황과 영남의 소식은 발 빠르게 전해졌으며, 류치명 또한 편지를 통해 섬에 적응해가는 자신의 근황을 전하였다. 문인들은 꾸준히 지도를 방문하여 스승의 안부를 살폈고, 함께 새로운 경험을 공유하였다.
    학문 활동도 계속되었다. 매일 경전을 읽으며 학문의 깊이를 더하였고, 저 술과 교정 작업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문인과의 교육 활동도 지속적으로 이루 어졌다. 그의 명망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류치명에게 글을 부탁하였으며, 제자가 되기를 청하며 사제의 인연을 맺기도 하였다. 지도에서 의 유배생활은 이후 류치명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고,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 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데 기여한 경험이었다 할 수 있다.

    영어초록

    This paper investigates the details of the exile of Jeongjae Ryu Chi-myeong (1777~1861) and his life in the place of his exile. Yu was a representative scholar of Yeongnam Namins in the 19th century, inheriting the scholarly lineage of Toigye School from Lee Hwang to Lee Sang-jeong. One of the important political tasks given to Yeongnam Namins, who were pushed out of the political arena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 was to bring justice to the case of Crown Prince Sado and worship him. The year of 1855 (the sixth year of King Cheoljong's reign) marked the two Jugap(周甲) anniversary of Crown Prince Sado's birth. In May, Confucian scholars in Yeongnam planned a Maninso to honor Crown Prince Sado and made an appeal to the king by gathering public opinion.
    Before this, Ryu Chi-myeong made an appeal to the king to worship Crown Prince Sado. It was an attempt for him to represent the long-cherished political wish of Yeongnam Namins as the leader of Hopa and fulfill his duties as a descendent of Ryu Gwan-hyeon, who was his great-great-grandfather and the teacher of Crown Prince Sado. The royal court vehemently opposed his appeal and saw it as a challenge to the precedents of the state. In the end, Ryu received a heavy sentence of exile to island at the age of 79.
    Ryu departed for his place of exile on April 13. His son and pupils accompanied him during the journey. He arrived in Jido(智島), Jeolla Province on May 2 and stayed there for over six months until Gwanmun of Haebae arrived on November 27. He managed to lead a life in exile without feeling lonely thanks to the support of his sponsors and his exchanges with literary figures and acquaintances. The situations of the royal court and the news of Yeongnam were consistently conveyed to him by people who informed others of his recent news of adjusting to the island through letters. Literary figures made ongoing visits to Jido to look after their teacher and shared new experiences.
    Ryu continued his academic activities. He read scriptures every day to deepen his studies and kept himself busy with writing and proofreading. He also continued to engage in educational activities with literary figures. More and more people visited him due to his reputation, asking him to write for them or accept them as his pupils. His life of exile on Jido expanded his influence further and contributed to the consolidation of his position as a scholar representing his time.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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