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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濟海와 濟州백성의 ‘謀變’(1813) 다시보기 (Review of Yangjehae and Jeju People Mobyeon (謀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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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4.18 최종저작일 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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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濟海와 濟州백성의 ‘謀變’(1813)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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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 수록지 정보 : 탐라문화 / 34호 / 161 ~ 217페이지
    · 저자명 : 김정기

    초록

    이 소품은 국가권력의 이중 폭력에 대한 고발이다. 하나는 사건 현장의 주민
    에게 가한 고문 폭력이고 또 하나는 이 고문의 결과로 날조된 허위 자백만을
    사료로 잔존시키는, 역사 진실에 가하는 조작 폭력이다. 거의 2백 년 전 억울하
    게 희생된 제주의 의협인, 양제해 ―글 모르는 데도 백성들이 따랐던, 사건 당시 풍헌이면서 평민 지도자였던 양제해― 의 복원과 해원에 주된 목적을 두었
    다. 곁들여, 상찬계와 목사 주도의 추핵[심문]과정에서 장살(杖殺) 된 6명과 거
    의 반병신이 되어버린 42명의 ‘반란죄인’에게도 그 역사적인 복원과 함께 구천
    을 떠도는 혼령의 해원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사료에 접근하였다.
    이 글은 1813년 초겨울 제주 아라 마을에서 백성과 양제해(1770~1813)가
    모여 의론한 것이 등소(等訴)였지 변란(變亂)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당
    시 황금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던 서리들의 이권조직, 상찬계(相贊契)의 착취와
    횡포를 연명으로 시정하려는 등소모의였다. 그것도 등소하기로 약속만 하고 헤
    어진 뒤 고자질로 좌절된 등소미수사건 이었다. 상찬계는 즉각 꼭두각시 목사
    를 앞세워 취회(聚會)하여 모의했던 그날, 저녁 즉각 장두 양제해를 체포하여
    고문으로 죽여 버렸다. 이튿날 새벽의 일이었다. 목사는 모의 성격을 변란(謀
    變) 그러니까 반란으로 둔갑시켜 보고하였다. 일년하고 반년 전 ‘홍경래난’의
    그 악몽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던 조정도 주저 없이 그 ‘모변’을 인정하고 말았
    다. 상찬계와 목사는 이 군사반란의 모의를 입증하기 위해 <차례>에서 보이는
    여러 사실을 왜곡 날조하여 조정을 현혹시켰다. 모병한 9백 명을 육지에서 구
    입한 포․조총․화약으로 무장하여 제주․정의․대정 세 읍을 동시 공격 점령
    하고 그곳 관장을 살해한 다음, 양제해가 도주(島主)가 되어 제주 별국(別國)
    을 선포한다는 각본이었다. 고문의 피로 엮은 각본이었다. 이 모두가 거짓임이
    드러났다. 이 비운의 양제해는 후에 제주 민중의 영웅으로 부활하였다.
    지은이는 이 복원과 해원에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한 김익강(1753~ ? )과 이
    강회(1789~ ? )에게 경의를 표한다. 「相贊契始末」은 두 분의 합작품으로, ‘모
    변’의 주모자로 몰렸던 金의 정직하고 정확한 구술을 받아, 다산의 제자 李가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현장 분위기를 적확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영어초록

    This is an accusation against the dual violence of state power. One
    is the violence which was forced upon people at the scene and the other
    is the distorted violence which left only false confessions as a result of
    torture. Therefore, I have been trying to recover the honor of Yang Jae
    Hae who, though illiterate, was followed by many people and finally
    sacrificed his life for righteous affairs, two hundred years ago. In
    addition, I have been trying to console souls and recover historic honor
    for those six victims who were also flogged to death and the 60 left
    half-paralyzed, and marked as rebellious criminals.
    It has been revealed that what really happened in 1813, in Ara
    village, Jeju, was not a rebellion but a simple gathering. It was only a
    meeting to rectify the exploitation and oppression by deputies who
    glorified their golden age with all manner of deception. Moreover, the
    appointed meeting failed to take place as word of it got out. However,
    the leader Yang Je Hae was immediately arrested and killed by torture
    by jeju governor on the very night he planned the gathering. The
    governor reported this simple gathering as an attempted rebellion. The
    government, which already went through the nightmare from Hong
    Kyung Rae's rebellion in 1812, declared it to be a rebellion with out
    hesitation. Sang Chan Gye and the Jeju governor distorted various truths like
    the ones above as wells as reporting the following to the central
    government in a plot to prove amilitary rebellion. According to their
    plot, rebels had nine hundred recruits armed with rifles, guns, and gun
    powder brought from the mainland. They then attacked and took over
    Jeju, Jeong Eue, and Dae Jeong at the same time. Afterwards, they
    killed the superintendents of these areas; Yang Je Hae declared himself
    Jeju governor and Jeju as separate state from the nation. It was vicious
    plot supported by evidence contrived from bloody torture. However, all
    of these turned out to be false. The tragic Yang Je Hae was revived
    as a Jeju hero among its people.
    I owe a great deal of respect to Kim Ik Kang and Lee Kang Hwe for
    restoring and consoling Yang Je Hae's soul with their collaboration on,
    「The beginning and the end of Sang Chan Gye」. In view of the fact
    that, Kim was suspected as the head planner of the rebellion, allowed
    provision of honest and detailed descriptions of the incident by Kim.
    Lee, a student of the well-known scholar, Da-San, drew out lively
    pictures based on Kim's story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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