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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路朝天錄과 통신사행록의 바다 체험 비교 (Comparison of Sea Experiences in Surojocheonrok and Tongsinsahaeng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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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3.29 최종저작일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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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路朝天錄과 통신사행록의 바다 체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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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한문학회
    · 수록지 정보 : 한국한문학연구 / 43호 / 49 ~ 79페이지
    · 저자명 : 허경진

    초록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국이지만, 사대부 창작 위주의 한문학에서는 바다 체험을 표현할 기회가 적었다. 쇄국정책을 유지했던 조선시대에 큰 바다 밖으로 나가는 방법은 사행(使行)에 참여하는 길 밖에 없었다. 바다를 건너가면 중국이나 일본 같은 외국에 도착하는데, 동아시아의 공통문자가 한자였으므로 모든 체험을 한자(漢字)로 기록하게 되었다.
    제1-2차 통신사는 포로를 쇄환(刷還)하러 갔기 때문에 당연히 임진왜란이 기억에 생생하였고, 그 상처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김세렴(金世濂)은 왜란이 끝난 지 40년 뒤에 다녀왔는데, 아직도 곳곳에서 포로들을 만났다. 그는 왜군의 전선(戰船) 배치를 보면서, 우리도 대응책을 바꿔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하였다. 조정에서 통신사를 보낼 때에는 염탐의 임무도 당연히 부여했으니, 임진왜란의 발발가능성을 염탐케 했던 1590년의 통신사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통신사(通信使)가 거쳐 가는 어촌에는 500여 명이 머물 만한 숙소가 없었으므로 사행원들은 대부분 배에서 먹고 잤는데, 이 방들은 숙소이자 문학 창작의 공간이었다. 이 정도로 크고 화려한 배가 준비된 데다 일본 뱃길에 익숙한 사공들이 준비되었으므로, 일본 뱃길은 중국 뱃길에 비해 안전하였으며, 시를 짓거나 일기를 기록할 수 있었다.
    명(明)나라가 망해 수로조천(水路朝天)이 끝난 뒤에도 통신사행은 여전히 바다를 건너야 했는데, 횟수를 거듭할수록 시와 산문을 함께 남긴 문인이 늘어났으며, 단순한 바다 체험의 기록이 아니라 이언진(李彦瑱)같이 온갖 상상력과 세계관을 결합하여 작품을 남긴 시인까지 등장하였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바다 체험은 중국과 일본 사행인데, 『가해조천록(駕海朝天錄)』은 장거리 항해의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의 체험이고, 『해사록(海槎錄)』은 준비가 된 상황에서의 체험이기에 큰 차이가 있다. 둘 다 후금(後金)의 침략을 겪는 시기였는데, 일본에서는 극진한 안내 속에 항해했지만 중국에서는 해적들의 습격을 받으며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일본 바다의 체험을 통해 신선을 생각하던 김세렴의 인식은 이언진에 와서 넓은 세계 속의 조선과 일본을 생각하게 된 것으로 바뀌었는데, 130년이라는 세월의 변화, 그리고 그 동안 들어온 서양 지식 때문에 세계관이 바뀐 것이다.

    영어초록

    Korea is a maritime country surrounded by the sea on three sides, but there were not many opportunities to express sea experiences in Chinese literature created mainly by literati. During the Chosun Dynasty, which maintained the closed‐door policy, the only way to go out to the open sea was participating in a diplomatic delegation. Crossing the sea, the delegation arrived in a foreign country like China or Japan, and because Chinese characters were commonly used in East Asia, all experiences were recorded in Chinese characters.
    Because the 1st and 2nd delegations were for the repatriation of captives, they naturally remembered the Japanese invasion in 1592 vividly and could not escape from the wounds left by the war. Kim Se‐ryeom visited Japan 40 years after the end of the war with Japan but still he met captives in many places. Based on the deployment of war vessels he had seen in Japan, he proposed that Korea should prepare countermeasures. When the government sent a delegation, it gave the mission of spying as a matter of course, and a representative case was the delegation in 1590, which spied the likeliness of Japanese invasion to Korea, which actually happened in 1592.
    Because fishing villages on the route of the delegation could not accommodate the large group with around 500 members, the delegates ate and slept on board, and the cabins on the ship were their lodgings and spaces for writing. As such a large and luxurious ship was prepared and sailed by seamen familiar with the sea route to Japan, the route to Japan was safer than that to China, and for this reason, delegates to Japan could write poems or keep diaries.
    Even after the Ming Dynasty of China fell and Surojocheon was abolished, delegations to China had to cross the sea, and as the voyages were repeated, the number of literati writing poems and essays increased. They not only recorded sea experiences but also, like Lee Eon‐jin, created literary works by combining all kinds of imaginations and world views.
    The biggest sea experiences were recorded by delegations to China and Japan. Gahaejocheonrok was an experience in a situation that a long‐distance voyage had not been prepared for, and in contrast, Haesarok was one in a prepared situation. Both were written during the period of Houjin’s invasion. The delegation to Japan sailed under the hospitable escort of Japanese guides, but that to China was assaulted by pirates and barely escaped alive. The perception of Kim Se‐ryeom, who had thought of an immortal through his experience in the Japanese sea, was changed in Lee Eon‐jin who thought of Chosun and Japan in the vast world. This shows the transformation of world view due to the lapse of 130 years and Western knowledge imported during the period.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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