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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년 高句麗-隋 전쟁의 전개 양상 (The Development of the War Between Goguryeo and Sui War in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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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3.28 최종저작일 2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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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년 高句麗-隋 전쟁의 전개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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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한국고대사탐구학회
    · 수록지 정보 : 한국고대사탐구 / 34호 / 87 ~ 132페이지
    · 저자명 : 정동민

    초록

    본고에서는 인물 개인의 행적이 담겨 있는 列傳이나 墓誌銘, 고고학적 자료를 주로 검토하면서 군사사적 관점에서 612년 高句麗-隋 전쟁의 전개 양상 일면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수는 고구려 원정을 위한 제반 준비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고구려와의 접경공간이었던 遼西 동부에서 고구려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하였다. 이로써 요서 동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유리한 국면을 조성한 수는 612년에 113만 3800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고구려 원정에 나섰다. 육군 40개 군과 水軍 1개 군으로 편성된 수군은 1월에 涿郡을 출발하여 臨楡關을 지나 瀘河鎭 혹은 懷遠鎭에서 군수 물자를 보급 받고 3월에 遼水에 이르렀는데, 고구려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면서 4월에 이르러서야 요수를 건널 수 있었다.
    4월에 수군이 요수를 건넌 후부터는 성곽전이 전개되었다. 당시 수군 지휘부는 전투에 대한 모든 상황을 隋 煬帝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따라야만 했는데, 4월부터 6월까지 수 양제는 臨海頓에 머물고 있었다. 이와 같은 공간적 거리의 형성으로 야기된 전투 지휘부와 수 양제 간 보고・지시의 신속성 결여, 수 양제가 受降使者를 통해 전투 지휘부의 보고를 받음에 따른 정확한 전황 파악의 실패, 그리고 쇠뇌 등 우수한 원사무기를 활용한 고구려의 뛰어난 성곽 방어술 등으로 인해 수군은 遼東城을 포함한 성곽전에서 고전하게 된다.
    이에 수 양제는 별동대를 편성하여 점령하지 못한 고구려 성들을 후방에 남겨둔 채 직접 平壤城으로 진군하고자 하였다. 노하진이나 회원진에서 출발하여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 고구려로 진군하는 도중 갑작스럽게 별동대 임무를 부여 받은 12개 군은 鴨綠水 서쪽에서 만나 함께 평양성으로 진군하였다. 식량이 부족한 악조건 속에서 무리하게 평양성으로 진군하였던 수 별동대에 대해 고구려군은 압록강-평양 사이의 성 방어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야 전술, 후퇴유도 전술, 매복 전술 등을 구사하며 薩水에서 대파하였다. 그리고 평양성으로 진입한 수 水軍에 대해서도 매복 전술을 펴며 격파함으로써, 고구려는 결국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영어초록

    This study mainly examined the aspects of the war between Goguryeo(高句麗) and Sui(隋) in 612 from the viewpoint of military history by examining the Liezhuan(列傳), a memorial inscription, and archaeological data that contain the traces of individual figures.
    After influencing the eastern part of Liaoxi(遼西) and creating an advantageous phase, Sui made its expedition to Goguryeo with the troop of 1,133,800 people, by winning an intermittent battle with Goguryeo in eastern Liaoxi, which was a contact zones with between Sui and Goguryeo, while making parious preparations for the Goguryeo expedition.
    The troops of Sui composed of 40 army troops and 1 navy troop arrived at the Liao River(遼河) in March after leaving Zhuojun(涿郡) in January through Linchuangguan(臨楡關), Luhezhen(瀘河鎭) or Huaiyuanzhen(懐遠鎭) to be supplied with military supplies. They faced strong resistance from the Goguryeo army and they could cross the river only in April.
    Since the Sui crossed the river in April, a siege broke out between Goguryeo and Sui. At that time, the command of Sui troops had to report the situation to their Emperor Yang of Sui(隋 煬帝), who stayed in Linhaidun(臨海頓) from March till June. The Sui troops had a hard time because of lack of promptness in reporting and instructions between the commanding division and the Emperor himself, failure of the Emperor to understand the exact situation of the war because he was informed through an Shouxiangshizhe(受降使者), and because of the excellent castle defense capabilities of Goguryeo utilizing excellent distant shooting armors such as crossbow.
    Accordingly, Emperor Yang of Sui tried to advance directly to Pyongyang Castle(平壤城), leaving the castles of Goguryeo that they could not defeat by organizing a detached force. The twelve army troops, that advanced to Goguryeo using different paths departing from Luhezhen or Huaiyuanzhen, suddenly received the assignment as a detached force tried to meet in the west of Amnoksu(鴨綠水) and advance to Pyongyang Castle together. However, as the soldiers who couldn't handle the weight of the war supplies abandoned the food for military, the detached force suffered from food shortage. The detached force that tried to advance to Pyongyang Castle regardless of such difficulties, Goguryeo forces managed to defend against them in Salsu(薩水) commanding scorched earth policy, retreat induction tactics and ambush tactics while they were maintaining castle defense system between Amnok River(鴨綠江) and Pyongyang. Goguryeo troops could win the war by defeating Sui troops in Pyongyang Castle through ambush tactics.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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