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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의 改元政策과 그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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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15.03.25 최종저작일 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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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의 改元政策과 그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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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동국사학회
    · 수록지 정보 : 동국사학 / 52권
    · 저자명 : 정선용

    목차

    Ⅰ. 머리말
    Ⅱ. 冊封朝貢體制와 연호
    Ⅲ. ‘天授’ 연호의 사용과 그 의미
    Ⅳ. 後唐 연호의 수용과 그 의미
    Ⅴ. 맺음말

    초록

    이 논문은 ‘天授’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다가 후당의 연호를 수용한 태조의 개원정책이 갖는 의미에 대해 분석한 글이다. 태조가 ‘천수’를 독자적인 연호로 채택했던 것은 신라왕실에 반기를 든 반란세력의 의도와 관련이 있었다. 그것은 중국중심의 세계질서에 편입되어 있던 신라와 그 왕실을 정통왕조로 비호하는 중국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것이었다. 태조는 신라와 중국 사이에 유지되고 있던 중국중심의 세계질서로부터 이탈을 시도했지만, 그것이 중국중심의 세계질서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중국으로부터 정통왕조로 인정받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에게 신라는 궁극적으로 극복될 ‘나라’였지만, 중국은 자신의 왕조를 비호해줄 ‘나라’였다. 그가 독자적인 연호로 채택한 ‘천수’도 周의 武則天이 이미 사용했던 연호인데, 그것은 태조가 唐도 망해버리고 後粱의 정통성도 부정되는 상황에서 과거의 무측천으로부터 고려의 추구할 정책방향을 찾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태조는 후당을 구심점으로 한 중국중심의 세계질서에 편입되고자 하였다. 그는 이를 통해 자신이 신라왕실을 대신해서 정통왕조로 인정 받으려고 하였다. 태조가 이처럼 교섭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후당이 당 왕조의 계승을 선언하면서 정통성을 회복한 결과였다. 그렇지만 태조는 천수 16년에 비로소 후당의 책봉을 받고 연호를 수용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거란과 교섭한 결과였다. 거란과 적대관계에 있던 후당은 태조의 양면 외교에 대한 불신으로 견훤을 책봉하였다. 그러나 견훤 역시 후당과 거란을 상대로 양면 외교를 전개하자, 후당은 결국 天成3년(928) 12월에 고려를 신라?발해와 동등하게 대우하였다. 후당은 이를 통해 고려로부터 거란에 대한 견제를 기대했다. 태조가 후당으로부터 책봉을 받으면서 연호를 수용한것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태조가 후당의 연호를 수용한 것은 후당의 강요보다는 오히려 태조의 의지가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어초록

    This article analyzes the reasons and meanings that King Taejo(太祖) of
    Coryeo Dynasty(高麗) changes the Era-Name. It was related to the intention of
    the revolutionary group against Shilla Dynasty(新羅) that Taejo adopted the
    independent era name of Cheonsu(天授). This resulted from the discontentment
    about Shilla which was in compliance with China centered world order, and China
    which was protecting Shilla’s royal family by approving as the legitimate dynasty.
    While Taejo tried to escape the China centered world order which was kept
    between Shilla and China, this was not to deny the China centered world, itself.
    Rather than this, Taejo possessed the ultimate purpose to get the approval of the
    legitimate dynasty from China. In this respect, for Taejo, Shilla meant the ultimate
    target country to be overcome, but China implied the country to protect his
    dynasty, Coryeo. As mentioned, since Taejo had the dual viewpoints of world, it
    could not assert the special importance of “Independence” to adopt the separate
    era name. The era name “Cheonsu” which Taejo selected, had been already used
    by Wu Zetian(武則天) in WuZhou Dynasty(武周). Considering the situation that
    Tang Dynasty had already collapsed, and the legitimacy of Late Liang(後梁) was
    denied, it might as well seek the policy direction of Coryeo from WuZhou
    Dynasty.
    On the other hand, Taejo desired to join in the China centered world order
    around Late Tang Dynasty(後唐). He intended to get the approval of the
    legitimate dynasty instead of Shilla dynasty. The fact that Taejo showed the
    aggressive attitude toward this negotiation resulted from the recovery of the
    legitimacy by Late Tang Dynasty which declared the succession of Tang Dynasty.
    Meanwhile, Taejo was invested from Late Tang Dynasty and accommodated the
    era name in Cheonsu year 16. This was the result of negotiation with Khitai(契
    丹). Late Tang Dynasty, which had the hostile relationship with Khitai, discredited
    the dual diplomacy and invested King GyeonHwon(甄萱) of Late Baekje Dynasty
    (後百濟). However Late Tang Dynasty discontented that GyeonHwon made the
    dual diplomatic relationships with Late Tang Dynasty and Khitai. Therefore, in
    December of Tiancheng(天成) year 3 (928), Late Tang Dynasty finally equally
    treated Coryeo as well as Shilla and Balhae(渤海). Through this, Late Tang
    Dynasty expected that Coryeo would restrain Khitai. Based on this situation, Late
    Tang Dynasty invested Taejo with the accommodation of the era name. In this
    aspect, the adaptation of the era name of Late Tang Dynasty reflected the will
    of Taejo rather than the enforcement by Late Tang Dynasty.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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