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불교는 왜 쇠퇴하게 됐을까
문서 내 토픽
  • 1. 종교가 아닌 학문이 된 인도불교
    초기불교 교단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각각 대중부불교와 상좌부불교로 나뉘어 발전하게 되었다. 320년경부터 인도의 마가다로부터 일어나 인도 북부를 통일했던 굽타왕조에서 쿠마라굽타는 최전성기의 왕이었다. 그는 최초의 불교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나란다 대학'을 설립하여 많은 스님들을 양성하였다. 나란다 대학은 대학으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탑이나 승원 그리고 예불당 등이 함께하였던 종합적 불교 성지였다. 나란다대학의 역사는 대승불교가 발전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중관학(中觀學)과 유식학(唯識學)은 나란다대학에서 뿌리가 시작되어 커나갔고, 그곳에서 여러 최고의 불교교학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의와 연구를 통하여 이론이 정리되고 보완, 완성되었던 것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토론과 공부를 통하여 불교가 종교를 넘어서 학문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결국 불교가 학문적인 방향이 되 가면서 대중이 원하고자 하는 '종교'로서의 역할을 잃어가고 있었다.
  • 2. 불교의 힌두교화
    불교의 교단조직을 떠난 재가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출가조직의 확장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이것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특징에 있다고 보여진다. 힌두교는 대중 속에 완전히 들어가 움직이는 종교이다. 힌두교가 특정한 교단이 있는 것이 아니고, 마찬가지로 특별한 사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사회생활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당시 무슬림의 침공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가 완전히 힌두교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하기는 어려웠다는 예상이 든다. 오히려 사원이나 조직으로 돌아가던 불교가 쇠퇴함으로서 힌두교의 세력이 더 커져버린 결과를 낳게된 것이다. 또한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의례에 있어서 인도불교는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힌두교식 의례를 차용한 당시 불교의 의례는 궁극적으로 정체성을 잃었고, 힌두교가 표방하는 여러 '다신'의 이미지를 대승불교에서 '보살'의 관념으로 승화시켜 흡수했다는데 기인한다.
  • 3. 자아에 대한 관념과 구원과 신
    근본적으로 '무아'를 주장하는 불교는 일반 대중들에게 접근되기가 쉽지가 않다. '유'와 반대인 '무', 혹은 '나'와 반대인 '너'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로 이 세상은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사고가 만연한 상황에 '무아'라는 것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고 그것마저 넘어선 초월지로서의 '지혜'를 뜻한다. 즉 '존재'로서 표현되지 않는 것이 부처님이 말한 '지혜, 통찰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당장 구원을 요하는 대중들에게 접근이 어렵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반면 '신'을 믿음으로서 자신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개념은 단순하게 생각하더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믿음으로서 미약하고 어리석은 자신을 구원해 준다는 관념은 종교가 가지는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Easy AI와 토픽 톺아보기
  • 1. 주제2: 불교의 힌두교화
    불교와 힌두교는 오랜 역사를 통해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왔다. 특히 인도에서 불교가 힌두교와 융합되는 과정은 주목할 만하다. 불교가 힌두교의 신들과 의례를 받아들이면서 힌두교화되었고, 이는 불교가 인도 문화에 깊이 뿌리내리게 된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불교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신격화되고 의례화되었지만, 동시에 불교 고유의 교리와 실천 방식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는 불교가 인도 문화 속에서 토착화되고 대중화되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불교의 힌두교화는 불교가 인도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에서 불교는 왜 쇠퇴하게 됐을까
본 내용은 원문 자료의 일부 인용된 것입니다.
2023.01.05
연관 리포트도 확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