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1.1. 민족 또는 새로운 초월자의 출현
1.1.1. 민족에 대한 원초적 질문
1.1.2. 민족, 그 신성한 기호의 출현
1.1.3. 한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인가?
1.2. 여성은 어떻게 국민이 되었나
1.3. 병리학과 기독교- 근대적 신체의 탄생
2. 한일 회담 시기 청구권 문제의 분석과 한일 관계에 대한 재고
2.1. 청구권 문제의 기원
2.2. 식민지 시기 역사 인식에 대한 차이
3.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1.1. 민족 또는 새로운 초월자의 출현
1.1.1. 민족에 대한 원초적 질문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민족주의가 뿌리깊은 무의식의 지층에 도달했다며, 이념적 선택의 문제가 아닌 원초적본능에의 지점까지 도달했다고 말한다. 어릴 적 열렬한 축구광이었던 저자는, 축구 자체가 아니라 실은 축구로 표상되는 제3 공화국의 애국주의에 열광했던 것이라고 고백한다. 따라서 저자는 민족주의가 이제 정치적 노선이나 이념적 선택의 문제가 아닌 원초적 본능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진단한다.
또한 저자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미지는 한번 굳어지면 좀체로 바꾸기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거창한 기호일수록 속이 텅빈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들일수록 대중의 무의식을 틀어쥐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예로 민비와 이토히로부미, 이완용을 들고 있다. 민비는 실상과 다르게 일본과 맞서 조선을 위해 싸우다 희생되었다는 통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이토히로부미도 어느 순간 민족의 원흉으로 각인되었으며, 이완용은 합방조약에 도장을 찍은 대표적인물이 되어 매국노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민족주의의 원초적 본능화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미지 고착화가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도 민족적이 되고 기독교 역시 민족의 이름과 겹치게 된 기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민족이라는 거대 기호가 어떻게 실체화되고 신성화되었는지를 추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1.1.2. 민족, 그 신성한 기호의 출현
조선에서 근대화의 기류가 본격적으로 무르익은 청일전쟁 이후를 살펴보면, 국제적 힘의 변화는 당연히 내부의 변동을 불러왔다. 애초의 구호는 '충군애국'이었다. 이것과 더불어 국가를 둘러싼 다양한 상징기제들이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경축연, 대한국기, 개화, 개천, 제국, 애국가 등의 국가적 표상들이 그것이다. 분명 이것들은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중국의 예속을 벗어나 어엿한 독립국이 되었다는 정신적 고양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500년 조선왕조의 통치기간 중 흡인력이 미미했던 것은 더 이상 군주에 대한 미련이 없이 이것을 대체할 이름, '민족'이라는 표상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전에 이런저런 기호 속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민족의 개념이 흡인하게 되며 무엇보다도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이것은 시대의 절대적 명제로, 지고지순한 가치로 떠오른다. 충군이라는 기호가 사라지자 이제 민족이라는 표상이 모든 개념을 빨아들여 천...
참고 자료
박태균, "한일 회담 시기 청구권 문제의 기원과 미국의 역할", 한국사연구회, 한국사연구(131), pp. 35-59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