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삼국사기 편찬 의천의 교종불교와 선종불교의 통합 유교와 불교가 공존한 고려역사와문화의 특징"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비교
1.1. 삼국사기
1.1.1. 당대의 역사인식
1.1.2. 편찬목적
1.1.3. 김부식의 생애와 역사의식
1.1.4. 삼국사기의 사학사적 위치
1.2. 삼국유사
1.2.1. 당시의 역사의식
1.2.2. 편찬목적
1.2.3. 일연의 생애와 역사의식
1.2.4. 삼국유사의 사학사적 위치
1.3.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비교
1.3.1. 체재의 성격
1.3.2. 서술방법의 차이
1.3.3. 사학사적 의의
2.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비교
1.1. 삼국사기
1.1.1. 당대의 역사인식
10세기 초 왕건 일파에 의한 고려의 건국은 신라말기의 사회적 모순을 지양하여 좀 더 도덕적인 사회를 재건하고 후삼국으로 분열된 주민들을 재통합하여 민족통일을 한 단계 진전시켰다는 점에서 중대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고려 건국의 핵심적 주역은 예성강 일대의 고구려 후예들이었으며, 고구려의 옛 영토를 수복하고 발해의 유민들을 포용하여 민족의 대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국가적 이상으로 표방되었다. 이러한 역사의식은 거란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국토를 확장하는 정신적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거란과의 전쟁 이후 송과의 문화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고려도 좀 더 유려하고 세련된 유교정치를 열어가게 되었다. 인종대에 이르러 거란이 쇠퇴하고 여진족의 금이 새로이 등장하면서 국내정치에 새로운 파동이 일어났다. 이때 묘청을 대표로 하는 서경파 지식인들의 바람이 고개를 들었으나, 유학파의 진압에 밀려 고려는 다시금 유교정치의 고삐를 다그치게 되었다. 이에 유교정치의 재확립을 목표로 관찬 역사서인 「삼국사기」가 편찬되었다.
1.1.2. 편찬목적
「삼국사기」는 인종 23년(1145)에 편찬된 고려 귀족문화를 정리하고 강렬한 국가의식을 표출하는 역사서이다. 「삼국사기」는 중국 역사관을 수용하면서도 독자성과 융통성을 강조하여 현실긍정과 합리성이 두드러진다.
「삼국사기」의 편찬 목적은 당시의 사회 모순을 수습하고 고려 왕조의 권위를 고양하는 데 있었다. 무신란 이후의 혼란한 사회를 수습하고 여진족의 위협에 직면한 고려 왕조의 입장에서 볼 때, 「삼국사기」의 편찬은 왕권을 옹호하고 국가를 지키는 정신적 구실을 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외세의 압력에 따른 내부 갈등을 극복하고자 유교적 정치이념을 토대로 한 현실 정책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 「삼국사기」 편찬의 또 다른 목적이었다.
1.1.3. 김부식의 생애와 역사의식
김부식의 생애와 역사의식은 다음과 같다.
김부식은 문종 29년(1075)에 태어나 순종·예종·인종·의종 등 8왕을 거치면서 의종 5년(1151)에 77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생애 전반기는 고려 문벌귀족사회의 절정기에 해당하였고, 후반기는 안으로 문벌귀족간의 갈등이 첨예화되었으며 밖으로는 여진의 군사적 압력이 가중되는 시련기였다. 이러한 대내외적인 환경은 그가 「삼국사기」를 저술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의 편찬을 통해 이전 신라의 문화를 정리하는 동시에 묘청란 이후 약화된 왕권을 강화시킬 바탕을 마련하고자 했다. 또한 당시 사회모순에 대한 간접적인 현실비판을 꾀하였다. 그가 정계에서 크게 활약한 시기는 60대 이후였는데, 61세 때 묘청란을 진압한 직후 문하시중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묘청란 수습을 분열주의에 대한 국민적 통일주의의 승리라고 간주하며, 갈등과 분열을 국가멸망 원인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당시 사회모순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자 했다. 결국 김부식 생애의 전·중반기는 문벌귀족들의 횡포와 비리에 대한 현실비판의식과 금의 압력에 대한 국가의식이 강조되는 때였다. 그리고 후반기는 묘청의 난 진압 이후 왕권의 강화와 고려왕조의 통치권 확립을 위한 노력이 요청되는 시기였다. 여기에 「삼국사기」편찬의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김부식은 전통적인 기층문화와 체질이 다른 유교주의 사관과 중국중심의 사대적 사고방식에 의해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그는 「구...
참고 자료
이우성, 『한국의 역사인식』, 창작과 비평사, 1974.
김태영, 「삼국유사에 보이는 일연의 역사인식에 대하여」,경희사학 5권6, 1974
이기백, 『삼국유사의 사학사적 의의』, 창작과 비평사, 1976.
이재운,「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비교」, 충남대학원, 1983.
조동걸, 한영우, 박찬승 공저,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上, 창작과 비평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