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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의 역사와 문화
1.1. 일본의 신석기 시대와 벼농사 전래
일본의 신석기 시대는 약 1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기 일본 사람들은 주로 수렵과 채집을 통해 생활을 영위했다. 그러다 기원전 3세기경부터 벼농사가 일본에 전래되었다. 일본의 벼농사는 한반도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써 일본은 더 이상 단순 수렵과 채집 사회가 아닌 농경 사회로 변모하게 되었다. 벼농사가 이루어지던 시기의 일본을 '야요이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에는 금속 도구를 다룰 수 있게 되면서 농기구의 발달이 있었다. 이처럼 일본의 신석기 시대와 더불어 벼농사의 전래는 일본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1.2. 야요이 시대와 농기구 발달
야요이 시대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시작된 일본의 농경사회 시기로, 이 시기에 일본에서는 농기구가 크게 발달하였다. 기원전 3세기경 벼농사가 시작되었는데, 이 벼농사는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이다. 이와 함께 금속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농기구도 크게 개선되었다.
야요이 시대에는 청동기와 철기가 널리 사용되었으며, 농기구로 쟁기, 호미, 낫, 도끼 등이 사용되었다. 특히 쟁기는 청동기와 철기 제작 기술의 발달로 크기와 성능이 훨씬 향상되었다. 또한 호미와 낫은 벼농사에 필요한 제초와 수확에 활용되었다. 도끼는 산림 개척과 목재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야요이 시대에는 금속 가공 기술의 발달로 농기구가 크게 개선되면서 벼농사 기술이 발달하였다. 이에 따라 농업 생산력이 크게 향상되었고, 이는 일본 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1.3. 고대 일본의 역사
4세기에는 야마토 조정이 지배하는 국가가 성립하였다. 야마토 조정은 일본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로, 왕위가 세습되었다. 이후 백제는 4세기 말에 야마토 조정에 한자와 유교를 전래해 주었다. 야마토 조정이후에는 '나라'에 도읍을 두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시기를 나라 시대라 한다. 나라시대에는 최초의 역사서라고 할 수가 있는 고사기와 일본서기가 만들어졌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백제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역사적 내용도 많이 수록이 되어 있다. 8세가 말에는 수도를 교토로 옮겼는데, 이 시기를 헤이안 시대라고 한다.
1.4. 중세 일본의 역사
1.4.1. 가마쿠라 막부 시대
가마쿠라 막부 시대는 1192년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 의해 설립된 일본 최초의 군사 정권이었다. 그는 쇼군이 되어 천황을 상징적 존재로 만든 채 실질적인 정치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로써 기존의 천황 중심 정치로부터 새로운 무사 정권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가마쿠라 막부는 702년부터 1192년까지 지속되었던 헤이안 시대의 귀족 지배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등장한 무사계급의 통치를 특징으로 한다. 이들은 토지와 농민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고, 군사력에 기반한 정치 체제를 구축하였다.
가마쿠라 막부의 등장 배경에는 헤이안 시대 후기에 지방 호족들의 세력 확대와 천황 중심의 체제 붕괴 등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권력 투쟁 끝에 쇼군이 되어 전국을 통일하고 새로운 지배체제를 수립하였다. 그는 직접 전국을 순회하며 지방 지배체제를 구축하였고, 전국적인 군사 조직을 정비하였다.
가마쿠라 막부 하에서는 무사 계층이 중심이 되어 지배 권력을 행사하였다. 막부는 토지와 농민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또한 막부는 전국의 토지와 농민을 직접 지배하는 체제를 구축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적 지배 체제를 확립하였다.
이처럼 가마쿠라 막부 시대는 일본 역사상 최초의 군사 정권이 등장하여 천황 중심의 지배 체제를 대체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후 무사 계층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정치·사회 체제가 수립되었고, 이는 중세 일본 역사의 주요한 특징이 되었다.
1.4.2. 남북조 시대
가마쿠라 막부 시대 이후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왕을 내세운 남북조의 대립이 이어졌다. 남북조 시대는 1336년 북군의 승리로 끝이 나고 이후 무로마치 막부 시대가 시작되게 된다.
남북조 시대는 1336년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주오(足利尊氏)와 아시카가(足利直義)가 대립하여 일어난 시기이다. 주오는 교토에 남북조(南朝)를 세우고 천황으로 고다이고 천황을 추대하였으며, 아시카가는 도쿠시마에 북조(北朝)를 세우고 고가쿠 천황을 즉위시켰다. 이들은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56년간 대립하였다.
이 시기는 일본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로, 토지소유권이 점차 동요되었고 이에 따라 지방영주인 다이묘의 세력이 강해지게 되었다. 이들 다이묘들은 서로 싸우며 영토를 점령하고자 하였고, 이로 인해 전국적인 혼란상태가 야기되었다. 결국 북조의 승리로 남북조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무로마치 막부로의 이행 과정에서 살펴보면, 무로마치 막부는 주오가 세운 남북조를 통일하고 천황제를 복원하면서 성립되었다. 이를 통해 일본 역사상 최초로 통일 정권이 수립되게 되었다. 무로마치 막부에서는 유교와 불교가 중요한 이념적 기반이 되었고, 막부의 권력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천황제와 결합하여 막부군주와 다이묘들이 공존하는 체제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남북조 시대는 일본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로, 주오와 아시카가의 대립으로 인해 정치적 통일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지방영주들의 세력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무로마치 막부가 성립되면서 일본 역사상 최초의 통일 정권이 수립되게 되었다.
1.4.3. 무로마치 막부 시대
무로마치 막부 시대는 가마쿠라 막부가 쇠퇴하고 나서 무로마치 족이 막부를 수립한 시기이다. 1336년에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쇼군이 되면서 무로마치 막부가 시작되었다.
무로마치 막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