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내재적 발전론의 연원과 대두
1.1. 식민사학의 등장과 배경
1.2. 식민사학에 대한 비판
1.2.1. 민족주의 역사학
1.2.2. 사회경제사학
1.3. 내재적 발전론의 대두
2. 내재적 발전론의 핵심 내용
2.1. 경제 부문
2.1.1. 농업 - 경영형 부농
2.1.2. 상업 - 상품화폐경제 발달
2.1.3. 수공업 - 사장과 전대제
2.1.4. 광업 - 덕대제 등장
2.2. 사회 부문
2.2.1. 신분제 해체
2.2.2. 민란 - 반봉건 투쟁
2.2.3. 실학과 동학 등 근대 지향적 사상
3.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비판
3.1. '근대'와 '근대성'에 대한 정의
3.2. 식민지 근대화론의 비판
3.2.1. 이론적 측면
3.2.2. 실증적 측면
3.3. 탈근대주의의 비판
4. 내재적 발전론의 의의와 새로운 역사인식
5.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내재적 발전론의 연원과 대두
1.1. 식민사학의 등장과 배경
식민사학은 19세기를 전후하여 일제의 조선 침략 과정과 함께 정립되었다. 식민사학은 일제의 조선 침략 및 합방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출발하였으며, 합방 이후에는 식민지 조선의 동화를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 기능이 확대되었다.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식민사학자들은 다양한 이론을 전개하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것은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이다.
타율성론은 한국사의 전개 과정을 한민족의 주체적 역량에 의한 것이 아니라, 중국·몽골·만주 및 일본 등 외세의 침략과 간섭, 압제에 의해 타율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단군신화를 부정하고, 한국사는 기자·위만조선 및 한4군 등 중국의 식민지배로부터 시작하였으며, 신공황후의 남선 정벌을 전후로 임나일본부가 설치되어 일본이 수 세기 동안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제기하였다.
정체성론은 한국사는 사회경제구조에서 아무런 발전을 이루지 못했으며, 특히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데 필수적인 봉건 사회를 결여했다는 주장을 골자로 한다. 일본의 경제사가인 '후쿠다 도쿠조'는 1904년 논문에서 "한국의 상황은 일본의 봉건제도가 성립되기도 전인 고대사회 말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정체성론은 한국의 사회경제적 낙후성을 지적하는 학문적 목적보다는, 일제의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데 그 목적을 두었다.
이처럼 식민사학은 일제의 침략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민족적 저항 의식을 막기 위해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된 한국사 연구였다. 이를 위해 식민 지배의 대표적인 이론인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을 전개하였다.
1.2. 식민사학에 대한 비판
1.2.1. 민족주의 역사학
민족주의 역사학은 식민주의사학의 타율성론을 비판하며, 우리 역사의 주체성을 무시하고 타율적인 요소만을 강조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이들은 우리 역사의 주체적 발전과 민족의 자주성을 강조하였다.
1910, 20년대에는 박은식과 신채호, 1930, 40년대에는 정인보·안재홍·문일평 등에 의해 전개되었다. 이들은 실학과 개항기 역사학의 전통을 비판·계승하며 주로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며 위세를 떨쳤던 고대사의 영광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크게 민족 '문화'의 역량과 고유성을 강조하는 문화사적 경향과 '민족'적 우월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국수주의적 경향으로 구별된다.
이러한 민족주의 역사학은 당시 식민사학에 대항할 수 있었던 우리 역사학의 가장 큰 조류였다는 의의를 지니지만, '민족'이라는 추상적인 개념만을 강조하여 실증성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가졌다. 또한 식민사학을 비판하며 등장했지만 이념만 달랐을 뿐 방법론적으로는 다를 게 없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전의 역사의 발전적 면모를 분석하기만 했을 뿐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는 제시하는 바가 없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1.2.2. 사회경제사학
사회경제사학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사학과 같다. 이들은 일원론적 역사발전법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사적유물론에 입각하여 한국사의 발전과정이 세계사의 발전과정과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즉 이들은 식민사관의 정체성론을 주로 비판한다.
사회경제사학은 백남운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에 따르면 유럽은 그들 자신의 주체적인 역량에 따라 발전할 수 있었으나 아시아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따라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을 하는데, 사회경제사학자들은 이를 비판하며 한국사 역시 세계사적 발전 법칙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백남운은 그의 저서 『조선사회경제사』에서 한국의 원시·고대·중세의 사회경제사를 변증법적 역사 발전 법칙에 맞추어 서술함으로써 이를 증명하고자 했다. 이들은 그간의 단군 위주의 신비주의적 역사인식을 청산하고 과학적인 이론을 제시하였으며 이후 내재적 발전론의 역사인식에 길을 열어주었다는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이론적·실증적으로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마르크스주의 사적유물론의 역사발전 도식을 무비판적으로 적용하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1.3. 내재적 발전론의 대두
본격적으로 내재적 발전론이 전개된 것은 해방 이후였다. 내재적 발전론은 마르크스주의 사학에 근간을 두는데, 분단 이후 마르크스주의 사학자들이 모조리 북으로 넘어가면서 남한보다는 북한에서 내재적 발전론이 먼저 성행하게 된다. 북한 역사학계의 내재적 발전론은 식민지시기 백남운의 사회경제사학을 기반으로 전개된다. 이들의 역사인식은 사회구성체론에서 출발하는데, 이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속에서 각 사회 체제를 이해하는 역사인식이다. 여기에 입각하여 전개된 논쟁으로는 삼국시대 사회구성논쟁과 자본주의 맹아 논쟁 등이 있다. 삼국시대 사회구성논쟁이란 말 그대로 삼국시대를 사적유물론에 입각하여 어느 단계에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쟁으로, 우리 역사에서 고대 노예제를 삼국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고 삼국시대 이후부터는 중세 봉건제로 정의하였다. 또 자본주의 맹아 논쟁은 1950년부터 60년대까지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지배적인 경향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는 우리가 익히 아...
참고 자료
이기백, 1978, <한국사학의 방향> 일조각
조동걸, 1998, <현대한국사학사> 나남출판
정창렬, 1989, .한국에서 민중사학의 성립.전개과정. <한국민중론의 현단계>, 돌베개
이홍락, 1997 <내재적 발전론 비판에 대한 반비판> 《역사비평》 겨울호
계명대학교 철학연구소, 1998 《실학사상과 근대성》 예문서원
최윤호, 2002 <조선후기 사회경제사 연구와 근대> 《역사와 현실》 45
이태진·김재호 외 9인, 2005 《고종황제 역사청문회》, 푸른역사
전국역사교사모임·역사교육자협의회, 2006 《마주 보는 한일사Ⅱ》, 사계절
박찬승, 2007 <한국학 연구 패러다임을 둘러싼 논의> 《한국학 논집》 35,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주진오, 2008 <뉴라이트의 식민사관 부활 프로젝트-근대 초기 서술의 문제점> 《역사비평》
여름호
역사교육연대회의, 2009 《뉴라이트 위험한 교과서, 바로 읽기》, 서해문집
국사편찬위원회, 2010 《고등학교 국사》 교육과학기술부
강진철, 「일제 관학자가 본 한국의 '정체성'과 그 이론」, 『한국사학 7』, 1986
김용섭, 『조선후기농업사연구(1)』, 일조각, 1970
권희영, 「한국사에서의 근대성의 출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이영훈, 「한국사에 있어서 근대로의 이행과 특질」, 『경제사학』, 1996
이정철, 「문제는 자본주의다 - 내재적 발전론 비판의 역사인식」, 『내일을 여는 역사 22』, 2005
이헌창, 「한국사 파악에서 내재적 발전론의 문제점」, 『한국사 시민강좌』, 2007
박찬승, 「한국학 연구 패러다임을 둘러싼 논의」, 『한국학논집』,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