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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윤선도(1587~1671)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으로, 한글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연의 시인"이라 불릴 정도로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다수 남겼는데, 특히 《산중신곡》과 《어부사시사》는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또한 그의 생애가 다사다난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데, 정치적 좌절과 유배생활을 겪으면서도 자연에 귀의하여 풍류생활을 누리는 등 극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산 윤선도는 조선 문단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 인물이지만, 그의 생애와 사상, 문학 세계 등 다양한 면모에 대해서는 여전히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지금까지 축적된 윤선도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최근의 연구 동향을 반영하여 윤선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2. 고산 윤선도의 생애
2.1. 가계와 유년기
고산 윤선도의 가계와 유년기는 다음과 같다.
고산 윤선도는 1587년(선조 20년) 6월 종로 연지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윤유심이며, 어머니는 순흥 안씨였다. 윤선도는 해남 윤씨 가문의 세 아들 중 둘째였다. 해남 윤씨는 대대로 내려오는 명문가로, 윤선도 가문은 특히 중흥기에 접어들었다. 그의 조부 윤의중은 조선 후기 호남 사림파의 거물로 알려져 있으며, 아버지 윤유심 또한 문신으로 활동했다.
8세 때 어린 윤선도는 작은아버지 윤기의 양자로 들어갔다. 이는 해남 윤씨 집안을 대를 잇기 위해서였다. 양자로 들어가면서 윤선도는 서울을 떠나 해남으로 갔다. 그의 유년기는 종종 거처지를 달리하며 외로운 시절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성장 배경이 후에 그의 고독하고 고지식한 기질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11세 때 산사에서 독서를 하던 윤선도는 수륙대회로 인해 소란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는 어릴 때부터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윤선도는 명문가 출신으로 자라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년시절부터 생활터전을 옮겨 다니며 외로움을 달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2.2. 청년기와 출사
고산 윤선도는 14세 때 지었다는 작품 세편이 남아 있다. 아버지가 안변도호보사 부임 시 수행하러 가다가 돌아오는 길에 지었다는 〈임단 가는 길에〉, 〈안변으로 가는 도중 우연히 읊다〉가 그것이다. 이를 통해 고산의 성장기는 자주 거처를 달리한 탓으로 오래 사귈 친구도 없이 외로움을 달래며, 일정한 스승이 없이 수학하던 소년 시절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어릴 적부터 고산은 외롭고 고독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이러한 환경이 후에 고산이 고고하게 사색을 즐겨하는 기질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서른 살 약관의 나이에 고산은 의연히 올린 〈병진상소〉로 시작된 권력층과의 투쟁은 그 자신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꼿꼿한 선비로 자리매김한 계기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평생을 벼슬길과 멀어지게 한 출발점이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대신에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쪽을 택하였던 것이다. 이는 맑고 깨끗한 성품으로 인해 세상과 타협할 수 없었던 고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고산이 세상을 멀리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개인적인 아픔도 있었다. 그는 20대에서 30대 사이에 양모와 생모를 잇따라 여의게 되어 큰 슬픔을 겪었다. 이러한 개인적 슬픔은 당시 광해군의 혼정 속에 펼쳐진 권력층의 불의와 함께 고산에게 벼슬길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격동적인 환경과 개인적 충격을 겪으며 자란 고산은 서른을 전후하여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권력층과 대결한 끝에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이는 곧 평생을 유배와 은거를 반복하며 살아가게 되는 고산의 운명이 시작되는 출발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2.3. 정치적 좌절과 은거
고산 윤선도의 정치적 좌절과 은거는 그의 생애 중 중요한 시기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서른 살 약관의 나이에 의연히 올린 로 시작된 권력층과의 투쟁은 그 자신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꼿꼿한 선비로 자리매김한 계기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평생을 벼슬길과 멀어지게 한 출발점이기도 하였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대신에 그는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쪽을 택하였던 것이다.
그가 세상을 멀리하게 된 또 다른 사유는 개인적인 아픔을 들수 있다. 양모와 생모를 연달아 잃고, 그 몇해 뒤 생부마저 여의게 된 것이었다. 그가 한창 혈기왕성한 20대에서 30대 사이에 겪은 이같은 개인적 슬픔은 당시 광해군의 혼정 속에 펼처진 권력층의 불의와 함께 그에게 벼슬길에 대한 회의를 불어 넣기에 충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창 젊은 시절에 겪은 긴 유배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