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여가와 취미활동의 역사
1.1. 고대 문명의 여가활동
고대 문명의 여가활동은 종교적 신념과 생존에 대한 도전과 직결되어 있었다. 선사시대에는 음식을 구하기 위한 사냥, 자신과 타인을 지배하기 위한 권력 획득, 자신들의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신체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 주된 여가활동이었다. 이러한 의례적 경기는 자신들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의식으로 행해졌지만, 이는 종교적 숭배의 형태로 수행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산업사회에서 정의되는 스포츠와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게임이 신화와 종교적 믿음에 기인하여 기도, 희생, 종교적 제례와 함께 음악, 춤, 의식적 향연이 가미된 축제의 일부로 행해졌다. 이때 경기 참가자는 그리스의 부유하고 존경받는 계층이었는데, 이는 그들이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코치를 고용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 내용은 전사 스포츠 중심이었으며, 폭력과 심각한 부상, 심지어 사망까지 빈번하게 발생했다. 여성, 어린이, 노인의 참여는 제한적이었다.
로마 시대에는 지도자들이 군인을 훈련시키거나 대중에게 스펙터클한 오락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신체 경기와 게임을 활용했다. 고대 그리스의 경기를 받아들였지만, 이는 복종적 순사 훈련에 초점을 맞추었다. 여성은 경기장에서 남자선수를 관람하며 응원하는 것이 허용되었을 뿐, 운동 기능 훈련의 기회는 거의 없었다. 로마인에게 여가의 중요성은 그리스인보다 그다지 높지 않았는데, 이는 로마인들이 여가를 노동을 위한 적응의 의미로 파악하여 심미적이기보다는 실용적 색채를 가졌기 때문이다.
1.2. 중세시대의 여가문화
중세시대에는 가톨릭교회가 여가활동을 대부분 통제하였으며, 절도 있는 생활 속에서 가톨릭의 종교적 질서에 관한 여가는 종교의식 및 주일과 공존하였다. 중세 유럽의 상위계층들은 농민들의 여가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들의 여가를 방해하지도 않았는데, 이는 농민들의 게임이나 축제를 대중의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는 안전장치로 여겼기 때문이다. 상류층의 스포츠 활동은 전문화된 장비나 시설의 지원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초기형태의 테니스, 당구, 핸드볼, 하이알라이와 같은 스포츠 활동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승마와 같은 여러 형태의 말과 관련된 경기를 발전시켜 즐겼고, 말을 타고 사냥이나 매사냥을 하였다. 중세유럽의 스포츠 활동으로는 농민들에 의해 행해진 민속게임, 기사와 귀족을 위한 이벤트로서의 토너먼트, 궁술시합, 그리고 동물을 잔인하게 다루는 이벤트 등을 들 수 있다."
1.3. 근대 이후 취미활동의 변화
근대 이후 취미활동의 변화는 다음과 같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노동시간이 감소하고 임금이 상승하면서 여가사회가 발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노동 이데올로기에서 탈피하게 되었고,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로 인해 취미활동이 보편화되었다. 특히 19세기 말 이후부터 일부 귀족 남성들의 제한된 취미활동을 넘어 광범위한 계층의 취미활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취미활동이 개인화되는 요인으로는 첫째, 1970년대 서구 사회에서 비만인구 증가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운동을 통한 건강 증진이 주요 취미활동으로 등장했다. 둘째, 1970-80년대 냉전체제가 완화되면서 데탕트 분위기가 성숙되어 가면서 개인의 자아표현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셋째, 스포츠를 통해 개인의 지위와 명예를 과시하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후 1990년대에는 운동을 즐기는 삶을 행복한 삶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게 되면서 운동 참여 권리가 행복 추구권의 일부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근대 이후 취미활동은 노동시간 감소, 임금 상승, 여가사회 발전 등의 사회경제적 변화로 인해 보편화되었고, 개인의 자아표현 욕구와 건강 증진 등의 요인으로 취미활동이 개인화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1.4. 한국의 여가발전사
한국의 여가발전사는 크게 여가의 개념 미형성기, 여가의 과도기, 여가의 발아기, 여가의 도약기, 여가의 성장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광복 이전의 한국에서는 여가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문헌자료가 거의 없어 그 실상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다만 고대 부족사회에서는 제의로서의 굿과 축제가 여가활동의 일환으로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에는 계급에 따라 여가활동의 양상이 달랐는데, 상류층은 사교적인 여가를, 서민계급은 불교행사와 민속놀이를 즐겼다. 고려시대에도 여전히 불교행사와 연회 등이 주된 여가활동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사대부계급의 독서와 낭만적 여행, 서민계급의 민속놀이가 성행했다. 근대 이후로는 일본 문화의 강요와 서구문화의 유입으로 여가문화가 혼합된 형태를 보이며, 역사상 가장 빈약한 여가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는 여가의 과도기로, 관광행정 체계가 마련되고 근로기준법이 제정되는 등 여가활동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6.25 전쟁과 경제개발계획에 주력하면서 정작 여가는 국가정책에서 소외되었다.
1962년부터 1971년까지는 여가의 발아기로, 5.16 쿠데타 이후 경제개발계획과 더불어 국민생활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 시기에는 전통적인 민속놀이가 공인되어 보급되었고, 도시민들의 정신적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여가활동도 증가했다. 그러나 여가현상은 자연발생적 수준에 머물렀고 여가패턴도 주로 기분전환 위주였다.
1972년부터 1981년까지는 여가의 도약기로, 경제개발 성공에 따라 삶의 질 향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이 시기에는 가족단위 행락과 야영 등 새로운 여가형태가 등장했고, 대규모 관광 휴양지 개발 등 국가 차원의 여가자원 개발이 이루어졌다.
1982년 이후 현재까지는 여가의 성장기로, 경제 성장과 더불어 여가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욕구가 지속적으로 증대되었다. 특히 1980년대 후반 경제 양극화에 따라 소득수준, 정신적 여유, 세대 등에 따른 여가활동의 분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또한 여가 관련 산업이 확대되면서 여가활동의 다양화와 고도화가 이루어졌다.
2. 현대인의 취미활동
2.1. 취미의 개념과 특징
취미는 "생업과 무관한 활동 중 어느 정도의 몰입과 즐거움을 주며, 일정 수준의 전문성과 품위를 가지고 수행되는 활동"이다. 취미활동의 핵심적인 특징은 첫째, 생활필수적인 노동과 구분되는 자유시간에 수행된다는 점이다. 둘째, 취미활동에는 어느 정도의 전문성과 기술이 요구되며, 단순한 기분전환이 아니라 자아실현과 정체성 확립의 과정으로 작용한다. 셋째, 취미활동은 개인적인 관심과 열정에 바탕을 두고 있어 개인마다 그 내용과 수준이 다양하다. 넷째, 취미활동은 일정 수준의 품위를 지녀야 하며, 단순한 놀이나 오락과는 구분된다.
취미활동은 개인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대인들은 단순한 즐거움이나 오락보다는 자아실현과 삶의 의미 추구를 위해 취미활동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소득수준 향상, 여가시간 증대, 교육수준 향상 등 사회경제적 여건의 변화로 인해 취미활동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취미활동은 더 이상 일부 지식인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에게로 확산되어 왔다.
2.2. 취미활동 변화에 영향을 미친 요인
취미활동 변화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크게 4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경제발전에 따른 소득 증가이다. 전반적인 경제성장과 더불어 개인의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취미활동에 투입할 수 있는 자금과 여건이 마련되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국민 생활수준이 향상되었고, 이는 여가와 취미활동의 대중화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둘째, 기술발전과 미디어 기술의 진보이다. 1960년대 TV 보급 확대, 1970년대 오디오 기기의 대중화, 1980년대 VTR과 DVD의 보급, 2000년대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의 등장 등 미디어 기술의 발달은 영화감상, 음악감상, 사진 촬영 등 다양한 취미활동의 저변을 확대시켰다. 또한 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