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영화에 나타난 여성의 모습
1.1. 너스베티
상냥한 베티는 앞치마 벗을 틈이 없는 웨이트리스 겸 주부이다. 아내의 생일을 기억하기는커녕 동료들이 선사한 꼬마 케이크를 지저분한 입을 쩍 벌려 베어먹어버리는 고릴라 같은 사내랑 산다. 눈 씻고 봐도 사랑할 까닭이 없는 남편 덕분인지 베티는 메디컬 멜로드라마 에 푹 빠진 지 오래다. 자동차 딜러인 남편은 마약 거래의 뒷처리를 칠칠치 못하게 한 탓에 어느 날 밤 부자(父子) 해결사 손에 죽고, 곁방에서 연속극 녹화 테이프를 보다 남편의 피살 광경을 목격한 베티는 순간 머릿속에서 현실을 내쫓고 드라마를 불러들인다. 그리고 과거의 약혼자라고 믿는 드라마 주인공 라벨 박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눈을 반짝이며 "저예요!"를 외치는 베티를 만난 연속극 스타는 그녀를 걸출한 메소드 연기자라고 여기고, 베티를 쫓던 킬러 찰리는 점점 베티의 사진과 일기에 빠져들면서 그녀를 구원의 마돈나로 믿게 된다.
베티의 드라마 탐닉은, 1980년대에 본격화된 소프 오페라에 관한 여성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곁들여질 만한 삽화이다. 를 보는 시간만큼은 베티는 아내로서의 역할을 순간적으로 면제받고 프라이버시에 빗장을 지른다. 소프 오페라 속에서 되풀이되는 연애담은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베티는 그것으로부터 일상을 버틸 수 있는 위안과 부축을 얻고, 어딘가에 존재할 행복의 이미지를 드라마 시청을 통해 매일매일 자신에게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도피라는 단어에는 언제나 '도피주의'라는 파생어가 추레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지만, 베티의 기이한 모험을 여성들의 보편적 경험으로 확장하는 중년 여인의 회상은 등 80년대, 90년대 영미권 여성영화 속에서 이탈리아로 그리스로 러시아로 떠나갔던 많은 여자들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는 소프 오페라의 언어를 도둑질함으로써 대중문화의 판타지가 개인의 통증을 간호할 수 있는 치유력을 가졌다는 현실을 필요악으로서 인정하면서도 그것의 소비가 현실에 대한 순응이 아니라 불만과 결핍의 징후로 나타난다는 점을 전한다.
1.2. 브리짓 존스의 일기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런던의 출판사에 다니는 32살의 미혼여성 브리짓 존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명절 때면 남자를 엮어주려는 어머니와 애인 없냐는 주변의 참견에 스트레스를 받는 브리짓은 새해부터 칼로리와 흡연량, 주량 메모를 포함한 일기를 쓰면서 생활을 개선하자고 결심한다. 성탄파티에서 소개받은 무뚝뚝한 인권변호사 마크 다시와 떨떠름한 첫인상만 남기고 헤어진 브리짓은, 바람둥이 직장 상사 다니엘 클리버와 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나 연인의 아파트에서 벌거벗은 여자와 마주친 날 브리짓의 짧은 사랑은 파국을 맞고, 새 애인을 사귄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아빠를 돌보는 일까지 짊어진다. 방송사 리포터로 이직한 브리짓은 마크의 도움으로 특종을 얻고 파티에 그를 초대해 따뜻한 한때를 보내지만 불쑥 찾아온 다니엘의 구애와 두 남자의 주먹다짐으로 서로를 오해한 채 헤어진다. 다니엘과 마크의 과거사를 알게 된 브리짓은 마침내 마크를 향한 감정을 확신하지만 마크와 다른 여성의 약혼이 발표된다. "일정한 나이를 지난 여자가 제 짝을 만날 가능성은 원자폭탄 투하 뒤 살아남을 확률보다 낮다."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서른두살 먼 런던의 노처녀 브리짓은 말하자면 그 희박한 확률의 '희생자'이다. 근사한 남자친구의 에스코트를 후광으로 두르고 다니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문제는 온 세상이 합세해 몰아세우는 통에 어느새 스스로도 자신을 동정하게 된다는 처량한 사실이다. 술병을 애인 삼아 끼고 여생을 보내다가 어느날 독신자 아파트에서 홀로 죽고 나면 3주 뒤에 기르는 애완견에게 1/3쯤 뜯어먹힌 시체로 발견되겠지"라는 브리짓의 악몽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감난다. 니코틴과 알코올과 칼로리 섭취량을 강박적으로 체크하는 브리짓의 일기는 그녀를 가위눌리게 하는 불안의 단면이다. 서른살 넘은 독신여성과 게이남성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유대가 형성된다. 이들은 모두 부모를 실망시키고 사회로부터 괴물 취급을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원작의 정리(定理)처럼, 브리짓은 결혼한 친구들의 쌍쌍 저녁파티에 초대받는 일을 고문으로 여기고, 모든 런던 시민이 자기 체중을 주시한다는 노이로제에 시달리며, 밤이면 "사랑에 빠지겠어"를 목놓아 따라부른다. 독신 직장여성들의 '애환'을 다룬 포스트 페미니스트 문화상품으로는 TV쇼 "섹스 앤 더 시티"와 "친구들"이 이미 잭팟을 터뜨렸으나 미국산 자매품들과 달리 영국산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수더분하다. 속내야 어쨌건 화려한 커리어를 남녀 관계에 대한 교훈을 얻는 일종의 학습장으로 이용하는 두 TV시리즈의 여피 헤로인들과 달리, 브리짓은 퇴근시간만 고대하는 실수투성이 월급쟁이이다. 실연 이후 방송사라는 폼나는 직장으로 옮기기도 하지만, 그 역시 그녀의 숨은 지성이 발견돼서라기보다 면접담당 간부가 "상사와 연애하다" 그만뒀다는 브리짓의 고백에 솔깃했기 때문이다. 한편, 흑맥주와 피자로 몸를 만들었다는 르네 젤위거가 호연한 브리짓은 "섹스 앤 더 시티"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에 등장한 정상 체중의 여성이다. 지방으로 울퉁불퉁한 허벅지를 내려다보며 데이트에 야한 란제리를 입을까 보정용 속옷을 입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을 보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2. 위선과 정직성
영화 속에서 위선과 정직성은 중요한 주제로 다뤄진다. 너스베티와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는 이러한 주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먼저, 너스베티에서 베티는 겉과 속이 다른 인물로 그려진다. 겉으로는 순종적이고 순진한 모습을 보이지만, 내면에는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는 욕구가 숨겨져 있다. 그녀는 남편의 폭력적이고 무심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메디컬 멜로드라마에 푹 빠진" 모습을 보이며, 현실을 외면한 채 판타지 속에 도피하려 한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감추고 위선적으로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존 프락터는 정직성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간통 사실을 털어놓음으로써 아비게일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이를 통해 아내의 무죄를 증명하고자 한다. 프락터는 "내 이름만은 남겨 놓으시오!"라고 외치며, 자신의 명예와 정직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진실성과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도 이러한 주제가 잘 드러난다. 브리짓은 겉으로는 성공적인 직장 여성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여전히 결혼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숨기고 겉으로는 당당하고 독립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다. 반면 마크 다아시는 정직성을 지키며 브리짓의 거짓말을 지적한다. 그는 브리짓이 자신의 진심을 숨기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녀에게 진실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두 작품 모두 위선과 정직성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태도를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베티와 브리짓이 보여주는 위선적인 면모는 그들 내면의 갈등과 욕구를 반영하며, 프락터와 다아시의 정직성은 진실성과 명예를 중요시하는 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