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울지마 톤즈 음악"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故 이태석 신부의 생애와 활동
1.1. 이태석 신부의 생애
1.1.1. 가난한 환경 속 자라난 이태석 신부
1.1.2. 사제 선택과 아프리카 선교
1.2. 이태석 신부의 톤즈에서의 활동
1.2.1. 의료 활동과 병원 설립
1.2.2. 교육 활동과 학교 설립
1.2.3. 음악 교육과 브라스밴드 창설
1.3. 이태석 신부의 삶의 영향과 의미
1.3.1.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
1.3.2. 사회복지와 교육에 대한 시사점
2.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故 이태석 신부의 생애와 활동
1.1. 이태석 신부의 생애
1.1.1. 가난한 환경 속 자라난 이태석 신부
이태석 신부는 1962년 9월 19일, 부산시 서구 남부민동에서 4남6녀 중 아홉째로 태어났다. 6.25 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려들면서 형성된 남부민동의 판자촌에서 자랐던 그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밝고 건강하게 자랐다. 특히 성당이 유일한 놀이터이자 배움의 공간이었던 그에게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영향력은 컸으며, 이를 통해 사랑과 나눔, 봉사에 대한 철학적 인성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보다 어려운 친구와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직접 도와주려 노력했던 그의 모습에서, 후에 수단 톤즈에서 보여줄 숭고한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중학생 시절 길에서 만난 거지의 바지를 직접 꿰매준 일화는, 이태석 신부의 타고난 봉사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1.1.2. 사제 선택과 아프리카 선교
이태석 신부는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1년 4월 군의관으로 인턴을 마쳤다. 그러나 진로를 변경하여 1992년 광주가톨릭대학교 철학과에 편입하고 사제의 길을 걸을 것을 선언했다. 그는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서울 대림동 살레시오 청소년센터에서 사목실습을 끝마치고, 이후 로마살레시오회대학에 유학하여 신학을 심층적으로 공부하였다. 2001년 6월, 이태석은 신학부를 수료하고 서울에 와서 사제서품을 받게 되었다. 이후 2001년 10월, 아프리카 선교 파견(살레시오 케냐 나이로비 관구)을 거쳐 2001년 12월, 톤즈에 정식으로 취임하였다. 이처럼 이태석 신부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의사로 시작하여 신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아프리카 선교의 길을 걸었다.
1.2. 이태석 신부의 톤즈에서의 활동
1.2.1. 의료 활동과 병원 설립
이태석 신부의 톤즈에서의 의료 활동과 병원 설립은 다음과 같다.
이태석 신부가 톤즈에 부임하자마자 환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톤즈에는 ...
참고 자료
성은진, 남 수단 청소년들의 변화를 통한 이태석 신부의 음악교육활동의 교육적 의미에 관한 고찰, 경북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3
나재우, 이태석 신부의 삶에 대한 교육적 의미 탐색 : 톤즈에서의 활동을 중심으로, 아주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2
이태석,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생활성서사, 2013
이태석, 당신의 이름은 사랑, 다른우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