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교부들의 황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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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교부들의 황금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와 사상
1.1. 들어가며
1.2.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
1.3.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
1.3.1. 스콜라 철학
1.3.2. 사상의 전제: 이성과 신앙의 조화
1.3.3. 방법론

2. 카톨릭 교부들의 황금기
2.1. 고대 교부들의 종말론
2.1.1. 이레네우스
2.1.2. 터툴리안
2.1.3. 가이사의 유세비우스
2.1.4. 닛사의 그레고리
2.1.5. 히포의 어거스틴
2.2. 중세교회와 현대 로마 카톨릭의 종말론
2.2.1. 중세 종말론의 역사
2.2.2. 요아킴의 종말론
2.2.3. 토마스 아퀴나스의 종말론
2.2.4. 트렌트 공의회(1545~1563)의 종말론
2.2.5. 제2바티칸 공의회(1963~1965)의 종말론

3. 종교개혁 시대의 종말론
3.1. 14~15세기 체코슬로바키아 종교개혁자들의 종말론
3.2. 루터의 종말론과 과격파의 종말론
3.3. 츠빙글리, 부처, 칼뱅의 종말론

4. 정통주의 개혁교회의 종말론
4.1. 개혁 정통주의에 있어서 종말론의 위치
4.2. 개인의 종말론적 구원
4.3. 우주의 종말론적 구원
4.4.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5. 근세 시대의 종말론
5.1. 근세 영국과 미국 개신교의 종말론
5.1.1. 영국의 프리탄이즘 종말론
5.1.2. 오웬의 종말론
5.1.3. 17세기 북미 대륙 뉴잉글랜드의 종말론
5.1.4. 18세기 계몽주의의 종말론
5.1.5. 조나단 에드워즈의 종말론
5.1.6. 19세기의 미국의 종말론
5.2. 근세 독일어권 개신교의 종말론
5.2.1. 경건주의: 슈페너, 프랑케, 벵엘
5.2.2. 계몽주의: 라이프니츠, 레싱, 칸트
5.2.3. 관념철학: 피히테, 헤겔
5.2.4. 자유주의 신학: 리츨
5.2.5. 철저한 종말론: 바이쓰, 슈바이처
5.2.6. 프란츠 오버벡의 종말론
5.3. 독일 비텐베르트 지역의 세 신학자의 종말론
5.3.1. 요한 토비아스 백
5.3.2. 요한 크리스토프 불룸하르트
5.3.3.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6. 20세기 개혁교회의 종말론
6.1. 예언자적 사회주의: 쿠터, 라가츠
6.2. 칼 바르트의 종말론
6.3. 에밀 브룬너의 종말론
6.4. 베르까우어의 종말론
6.5. 오토 베버의 종말론
6.6. 리처드 니버와 라인홀드 니버의 종말론: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6.7. 로흐만의 종말론
6.8. 몰트만의 종말론

7. 에큐메니칼 운동이 지향하는 종말론
7.1. 교회의 일치와 인류 공동체의 갱신(1990)
7.2. 세계교회가 고백해야할 하나의 신앙고백(1991)

8.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와 사상
1.1. 들어가며

13세기는 중세 기독교의 황금시대로 불린다. 이 시기에 교황의 권력이 확대되면서 생활 곳곳에 교회의 영향력이 늘어났고, 새로운 수도회들이 교육에 헌신하면서 신앙의 시대를 열어갔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유입되면서 이성 중시의 철학적 전통이 확대되었고, 계시와 이성, 종교권위와 세속권위, 플라톤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상 간의 간극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추구하며 사상적 체계를 정립하였다.


1.2.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탈리아 나폴리 근교 로카세카 성에서 아퀴노 지방 영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5살에 성 베네딕토 수도회 소속 몬테 카시노 수도원으로 보내져 9년간 교육받았고, 이후 나폴리대학에서 공부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도미니코 수도회에 가입했는데, 당시 상류층에서는 초기상태였던 이 수도회를 무시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이에 격하게 반대하였고, 심지어는 그를 15개월이나 로카세카 성에 감금하기도 하였다.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1245년에 다시 도미니코 수도회로 돌아가 3년간 파리에서 수학하였고, 이후 쾰른의 수도원에서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로부터 4년간 지도를 받았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1250년에서 1251년 사이에 사제로 서품되고, 알베르투스의 추천으로 파리 대학에서 피터 롬바르드의 『명제집』을 강의하였다. 1256년 봄 파리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아 신학교수로 취임하였고, 1259년 말 파리대학을 떠나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대이교도대전』을 마무리하고 『신학대전』 저작에 착수하였다. 1268년 다시 신학교수로 파리에 체류하며 저술활동을 하다가, 1272년 이탈리아로 소환되었다. 1273년 성 니콜라오스 축일 미사 이후, 그는 저작활동을 완전히 멈추었다. 그는 비서 레지날드에게 "내가 본 것에 비하면 내가 쓴 것들은 모두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1274년 3월 7일, 교황의 명을 받고 리용 공의회로 향하던 중 병을 얻어 포사노바의 시토 수도원에서 사망하였다. 요한22세에 의하여 시성되었고, 교회의 박사로, 모든 가톨릭학파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다.


1.3.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
1.3.1. 스콜라 철학

중세 신학이 교부철학(4-9c)을 시작으로 전개되었으나, 십자군 전쟁(11-13c)을 거치면서 교황의 권위가 실추되고 왕권이 강화됨에 따라 기존 교부철학의 이론 수정이 요구되어 스콜라철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스콜라철학의 전성기였던 중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도입하여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추구하였으나, 여전히 교회의 상대적 우위를 주장하였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보편 논쟁에 대하여 실재론을 주장하였는데, 보편의 실체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도입하여 인간의 이성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스콜라 철학의 주지주의적 경향 속에서도, 신의 존재와 속성, 창조와 섭리 등을 이성을 통해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신앙과 이성은 각자의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성에 기초한 신앙의 정당성을 논증하고자 하였다.


1.3.2. 사상의 전제: 이성과 신앙의 조화

사상의 전제 : 이성과 신앙의 조화

중세의 학문적 추진력은 어거스틴 전통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사이의 긴장관계에서 비롯되었다. 어거스틴 전통은 중세교회의 확고한 철학적 기초가 되면서 이성에 대한 신앙의 완전한 우위를 표방한 가톨릭사상을 낳았고, 급진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인간사유의 영역에서는 철학적 진리를 절대적 진리로 간주하여 이성의 우위를 표방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속했던 도미니코회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채용하여 신앙과 이성은 각자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있음을 표방한 조정적인 신학체계를 내놓았다. 그는 신앙의 정당성을 이성에 기초해서 논증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신의 존재와 속성, 창조와 섭리, 여러 가지 윤리적 통찰까지도 계시의 도움 없이 이성을 통해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의 첫 부분에서 '세계는 그 논리적 필연성에 의해서 우리로 하여금 최고존재를 상정하도록 이끌어간다'고 하는 우주론적 증명을 전개하였다. 또한 도덕의 근거로서 인간이성에 의해 파악된 가치의 질서를 자연법으로 부러면서, 이성의 성취물인 국가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실정법 역시 자연법에 근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신앙은 삼위일체와 같은 초자연적인 진리, 더 고차원적인 특정한 계시진리들을 수긍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인식영역과 방법이 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성)과 성서에서 배워야 할 것(신앙)이 명확히 구별된다는 것이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의 전제이다.

그에게 자연과 은총, 철학과 신학은 결코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며, 철학은 이성에 터해 아래로부터 출발하고, 신학은 신앙에 터해 위로부터 출발한다. 이로써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은 실질적·경험적이고, 합리적 분석과 탐구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


1.3.3. 방법론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의 방법론은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실재론의 입장을 취한다. 보편에 대한 논쟁에서 실재론은 보편, 즉 어떠한 존재를 규정지을 수 있는 공통적인 속성의 실체는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나 보편의 존재는 이성적 존재의 눈에만 보이므로, 보편을 볼 수 있는 자가 보여주려 하여도 이성이 완성되지 않았다면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실체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둘째, 목적론적 세계관을 갖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신앙(교회)의 이성에 대한 절대적 우위를 주장한 반면,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도입하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국가 및 통치 군주의 권위의 일정부분을 인정함으로써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신앙의 상대적 우위를 주장하였다. 따라서 절대적 진리는 신앙에 의해 오거나, 혹은 이성에 의해 찾아갈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이성에 나름의 역할을 부여하였지만, 후자의 경우 이성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그 지식이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셋째, 주지주의 입장을 취한다. 그는 신의 속성을 이성으로 파악하여 삼위일체의 이론을 가능케 하였다. 반면 인간의 속성은 이성과 함께 원죄가 존재한다고 보아, 이를 통해 인간의 불완전성을 규정하였다. 이 시기의 이성은 원리를 보고 그 원리를 찾아내고 따져서 다른 곳에 적용하는 것으로, 이성적 존재인 신이 이성으로 만든 우주 또한, 어떠한 원리에 따라 이성적 판단을 통해 옳은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신 보다 우월한, 신 이전의 원리가 존재하고, 우주의 창조자는 신이 아닌 어떠한 원리가 되며, 이러한 점에서 명목론자의 비판을 받는다. 사실상 그의 이론은 주의주의에 더 가까우나, 교회가 인간보다 우위에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지주의 이론의 도입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처럼 토마스 아퀴나스는 실재론, 목적론적 세계관, 주지주의라는 세 가지 방법론을 통해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하면서도, 여전히 교회의 상대적 우위를 주장하였다. 이는 당시 문화와 사회 상황 속에서 교회의 권위를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카톨릭 교부들의 황금기
2.1. 고대 교부들의 종말론
2.1.1. 이레네우스

이레네우스는 2세기 후반 팽배했던 영과 육의 이원론적 사상을 가진 영지주의의 신학에 반박하여 그의 종말론을 전개했다. 그의 종말론은 기독론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는데, 그의 기독론은 성육신하신 로고스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완전한 계시로 이해했다. 이레네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성령에 의한 아버지 하나님과의 연합, 그리고 성육신에서 보인 인간과 하나님의 연합은 교회의 설교와 성례를 통해서 실현되고 종말론적 영생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특히 이레네우스는 '총괄갱신 교리'를 펼쳤는데, 이 총괄갱신에서 죄와 죽음과 사단의 권세가 온전히 격파된 것은 아니고 요한계시록 등이 보여주는 마지막 때에 일어날 그것에 대한 승리를 남겨두고 있다고 보았다. 이레네우스는 창조세계의 회복을 포함한 부활한 의인들의 세계 즉 천년왕국에 대해서도 말했는데, 이 부활한 의인들이 누릴 샬롬의 나라는 모든 식물과 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공동체와 우주 전체가 회복되어 억압과 착취가 없는 평화의 나라라고 했다. 그는 창조세계의 실체와 실존은 없어지지 않고 다만 그 속에 있는 죄성과 부정성이 없어지는 것이며 성도들의 가치에 따라서 도성과 낙원과 하늘이라는 계층적 도시로 보내진다고 말했다. 이레네우스의 '총괄갱신 교리와 종말'에 따르면, 전인의 구원과 전 인류 및 전 창조세계의 구원이 실현된다.


2.1.2. 터툴리안

터툴리안의 종말론

터툴리안은 이레네우스와 비슷하게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레네우스가 천년왕국론에서 창조세계의 회복을 강조한 것과 달리, 터툴리안은 천년 왕국의 영적 상태만을 강조하였다. 이를 통해 터툴리안은 기독교를 좀 더 영성화하고 윤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레네우스가 총괄갱신 교리를 통한 만인 구원과 만유구원론의 경향을 보인 것에 반해, 터툴리안은 하나님의 나라와 지옥의 대립관계를 절대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즉, 그는 하나님의 나라와 악한 자들의 지옥이 완전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터툴리안의 종말론은 이레네우스와 구별되는 특징을 보인다. 그는 창조세계의 회복보다는 영적인 측면에 더 무게를 두었고, 만인 구원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지옥의 철저한 구분을 강조하였다. 이를 통해 터툴리안은 기독교의 윤리성과 초월성을 강조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2.1.3. 가이사의 유세비우스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박해 금지 법령으로 인해 중세 시대에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이로 인해 종말론 또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콘스탄틴 황제 시대의 유세비우스는 황제의 기독교 공인을 계기로 하여 역사의 절정이 도래했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콘스탄틴 황제를 '메시야'로 보고 로마 제국을 하나님 나라의 현실화라고 이해하였다. 유세비우스는 기독교가 황제에 의해 공인되면서 더 이상 자신들이 종말론적으로 배제된 소수 집단이 아니라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기독교가 세계 제국의 국교가 되었으니 더 이상 미래에 도래할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그로 인해 그의 종말론은 교회와 세계, 교회와 국가를 일치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즉, 유세비우스는 기존의 종말론적 시각에서 벗어나 황제의 기독교 공인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지상에 실현되었다고 파악하게 되었다.

유세비우스는 이제 역사의 절정이 도래했다고 믿었고, 콘스탄틴 황제가 이끄는 로마 제국이 곧 하나님 나라의 구현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처럼 교회와 세계, 교회와 국가를 일치시키는 관점에서 종말론을 이해하였다. 이는 기존의 묵시적이고 초월적인 종말론에서 벗어나, 현재 지상의 실재로 하나님 나라를 파악하는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이었다. 이로써 유세비우스는 중세 종말론의 궤도를 크게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2.1.4. 닛사의 그레고리

닛사의 그레고리(335년 ~ 394년)는 4세기 후반 고대 교회의 대표적인 종말론자 중 한 명이다. 그는 구원론과 종말론을 밀접하게 연관시켜 이해하였다.

그레고리는 종말론적 사건의 근거를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사건에서 찾았다. 그는 종말론을 '기독론적 종말론'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 종말론의 핵심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인간과 하나님의 완전한 연합을 이루었고, 이를 통해 인간의 구원과 우주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레고리는 인간의 종말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의 종말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은 피조물을 무로부터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유로부터 재창조하신다. 이는 곧 인간의 부활이 단순한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라 '유로부터의 재창조'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우주 전체의 부활을 암시한다.

그레고리는 인간과 우주의 처음과 끝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의 부활에서 '전인의 부활'을 말하는데, 이는 곧 인간 본성의 원형이 재구성되어 회복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그는 죄와 죽음과 사단에 대한 우주적 극복을 주장하면서, 인간의 우주적 회복을 강조하였다.

요약하면, 닛사의 그레고리는 성육신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기독론적 종말론을 펼쳤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구원과 더불어 우주 전체의 회복을 종말론의 핵심으로 보았다. 그의 종말론은 인간 개인의 구원뿐 아니라 피조물 전체의 구원을 지향하는 포괄적인 비전을 담고 있다.


2.1.5. 히포의 어거스틴

어거스틴은 중세 기독교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신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하나님의 도성'에서 자신의 종말론을 전개하였다.

어거스틴의 종말론의 핵심은 '두 도성' 사상이다. 그는 완벽한 삼위일체 하나님, 아담과 하와, 그리고 천사라는 삼위일체성을 가지고 이 두 도성을 설명한다. 즉 하나님의 도성과 땅의 도성을 대립시키면서 종말론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성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충만한 상태이지만, 땅의 도성은 이에 대한 결핍으로써 존재한다. 어거스틴은 죄로 인하여 도입된 죽음을 땅의 도성의 특징으로 간주하고, 이는 하나님과의 분리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또한 어거스틴은 알곡과 쭉정이가 함께 섞여 있는 교회의 모습을 이 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로 보면서, 마지막 심판 때에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그는 '지금 현재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나라요 하늘나라'라고 주장한다.

어거스틴의 이분법적인 '두 도성' 사상은 멸망해 가는 로마 제국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도성"의 영원함을 보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교회의 사회...


참고 자료

이상섭, 법은 인간적 행위의 외적원리일 뿐인가-토마스 아퀴나스의 법(lex) 이론에 대한 하나의 고찰 2014.
J. 와이스헤이플, 이재룡 역, 토마스 아퀴나스 수사 – 생애, 작품, 사상 2011.
박규환, 토마스 아퀴나스 (1225-1274)의 생애와 사상. 새가정, 46-49 2008.
박종대,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과 현실, 128-142 1992.
박용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 신학지남, 64(2), 166-184 1997.
송영현, 법사상론 1주차 자료. 법사상론, 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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