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청동기시대 경제생활의 변화상과 군장의 등장이 갖는 사회적 의미
1.1. 청동기시대 경제생활의 변화상
청동기 시대에는 신석기 시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사냥, 어로, 채집 활동이 이루어졌지만, 경제의 중심은 농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에는 보리, 밀, 콩, 기장, 조, 수수 등 다양한 곡물이 재배되었으며, 청동기 도구를 활용하여 효율적인 농경 활동이 가능해졌다. 특히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확대되었는데, 관개 시설을 갖춘 논농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벼농사가 주식이 되지는 못하였고, 여전히 잡곡이 주요 식량원이었다. 이 시기 사람들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로 반구대와 장기리 알터바위에 바위그림을 새겼다. 이처럼 청동기 시대에는 농경 기술의 발달로 인해 경제 생활의 중심이 농업으로 옮겨갔으며, 이에 따라 사회구조의 변화가 나타났다.
1.2. 군장의 등장이 갖는 사회적 의미
청동기 시대에는 농업이 발전하면서 정착 생활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농경지와 거주지의 확장을 위해 부족 간의 경쟁과 충돌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방어시설을 갖춘 대규모 취락이 등장하였고, 이를 이끄는 지도자인 '군장'이 출현하였다.
군장은 부족 내부의 통솔, 제사의 주관 등 다양한 권력을 행사하며 부족들 간의 통합과 협력을 주도하였다. 이를 통해 보다 복잡한 사회 구조를 갖춘 정치 조직이 형성되었다. 군장의 사망 시에는 거대한 무덤인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조성되었는데, 이는 군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한편 농업 생산량의 증가로 인해 부족 내에서도 가족 간의 경제적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청동기를 제작하는 장인, 물품을 교환하는 상인, 무력을 행사하는 전사 등의 새로운 직업군이 등장하면서 사회적 분화가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경제적 격차로 인해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구분되는 계층사회가 형성되었다.
결국 청동기 시대의 경제적 변화는 사회의 계층화를 초래하였고, 이를 배경으로 군장이라는 지배층이 등장하여 보다 조직화된 정치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군장의 등장은 농업 발달에 따른 사회 구조의 변화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2. 6~7세기 삼국 관계와 대외항쟁
2.1. 삼국 간의 치열한 항쟁
신라는 진흥왕 때 한강 유역을 정복하여 국력이 강화되었지만, 고구려와 백제의 견제를 받게 되었다. 고구려와 백제는 동맹을 맺고 신라를 협공하여 신라가 존폐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신라는 외교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