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하나님을 아는 지식
1.1. 여호와를 알라 - 하나님에 대한 연구
1.1.1. 다섯 가지 기본원리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하셨으며,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갖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그분이 지으신 세상의 주님이시며 왕이시다. 하나님은 하시는 모든 일에서 완전하심을 나타내 보이시면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이로 인해 인간들과 천사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미한다. 하나님은 구세주로서, 믿는 자들을 죄책과 죄의 권세로부터 구하시기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권적인 사랑을 적극적으로 나타내 보이신다. 그리고 그들을 자녀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합당한 복을 주신다. 하나님은 삼위이시다. 신성 안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세 위격이 있으며, 구원 사역은 이 세 위격이 함께 하시는 역사다. 곧 성부께서 구속하기로 결심하시고, 성자께서는 그 구속을 이루시며, 성령께서는 그것을 적용하신다. 경건이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신뢰와 순종, 믿음과 예배, 기도와 찬양, 복종과 섬김으로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삶은 하나님의 말씀 아래서 드러나고 영위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참된 종교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생각을 품고 있으며, 하나님을 위한 담대함을 드러낸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커다란 만족을 얻는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원한다면 먼저,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인식하고 우리를 깨닫도록 주님께 간구하여야 하며 둘째로, 우리는 구세주를 찾아야 한다. 주 예수를 찾은 사람들만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하나님을 안다고 증거할 수 있다.
1.1.2.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특징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를 위해 불타는 열심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헌신한다. 다니엘서를 살펴보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하나님을 위해 용기 있게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순종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히려 더욱 하나님을 위해 충성스럽게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생각을 품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높이 올려놓고 경배하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하나님을 높이고 경외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담대함을 드러낸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담대히 선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행동한다. 다니엘서에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우상 숭배를 거부하고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담대함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커다란 만족을 얻는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세상의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 참된 행복을 발견한다.
이처럼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생각, 하나님을 위한 담대함,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의 만족 등의 특징을 드러낸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을 깊이 알고 경험한 자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1.2. 아는 것과 아신 바 되는 것
1.2.1. 인생의 목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창조되었는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인생에서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하는가?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매우 낮아지는 것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죄와 죄책과 연약함과 무지함과 어리석음에 대해 말씀하셔서, 당신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절망적이고 무력하다고 판단하며 소리쳐 용서를 구할지 않을 수 없게끔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일 때 하나님은 실제로 마음을 열어 보이시며, 당신과 친구가 되시고, 당신을 동료로, 바르트의 말로 하면 언약의 동반자로 삼아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은혜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리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도록 하셔서 우리와 사귀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사람을 아시는 것은, 자비로운 구원이라는 전체 목적과 관련되어 있다. 그 아심은 아시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개인적 애정, 구속의 행위, 언약적 신실함, 섭리적 보살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앞에서 우리가 암시한 것처럼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어지는 구원이다. 오직 참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욱 깊이 알려지시기를 소망한다. 형상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시킨다. 그림과 형상을 금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그것들이 묘사하는 신적 존재의 인격적 본질과 특성에 대한 진리의 대부분을 숨기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형상들은 우리를 그릇된 길로 인도한다. 그것들은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 상을 기도의 보조물로 사용함으로써, 경건을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고난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보는 위험에 빠지곤 했다. 그리하여 육체적 고통의 영적 가치에 대해 불건전한 생각을 갖게 되었으며, 부활하신 구세주를 알지 못하게 되었다.
성경이 계시보다 철학적 추론에 의거하는 모든 사변적인 신학은 이 점에서 잘못되어 있다. 바울은 이런 유의 신학이 결국 어떻게 되는가를 말한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고전 1:21). 신학의 영역에서 자기 마음의 상상력을 따라가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여전히 무지한 채로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추측과 상상력으로 만든,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형상인 우상을 숭배하는 길이다. 제2계명의 적극적인 측면은 창조주 하나님은 초월하시고 신비로우시며 불가해하시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상상과 철학적 사고 범주 너머에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명령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견해는 다름 아닌 성경으로부터 취하여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 성육신을 어떻게 설명해 주느냐에 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그 아기는 진짜 하나님이었다. 요한은 예수님이 주장하셨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에게 있다고 생각되는 아들 됨은 바로 신성을 말하는 것이며,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또한 그 아기는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다. 그분은 하나님에서 신성의 어떤 요소를 뺀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인성을 취하심으로 인성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드신, 모든 것을 더한 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신인이신 성자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성부에게 순종하신 것은 성육신에 의해 생겨난 새로운 관계가 아니라, 하늘에서 누리는 성자와 성부의 영원한 관계가 시간 속에서 계속되는 것이었다.
성령론은 기독교 교래에서 보석과 같이 소중한데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드물다. 우리는 기독교의 진리를 우리의 논증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눈 먼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전능하신 역사가 없이는 어떤 사람도 기독교의 진리를 입증할 수 없다. 인간의 양심에 복음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의 주권적인 특권이다.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진리를 잘 제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진리를 권능 있게 나타내 보이시는 데 있음을 배워야만 한다. 만약 성령이 계시지 않다면 세상에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과 성품, 진리와 방식, 목적 등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변하지 않는다. 그분의 손길은 여전히 전능하며 그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매우 큰 위안을 준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이해하는 첫 번째 단계는 그분의 무한하고 무제한적인 지식, 임재, 능력을 인식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세상의 크기와 다양성을 생각하며 그것과 하나님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세상의 거대한 전체에 비할 때 우리는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 그러나 이 거대한 세계도 하나님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최선의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확실한 수단을 보는 능력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지혜는 언제나 활동하고 있으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우리도 하나님의 지혜와 관련하여 바울이 경험한 것처럼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을 수 있다. 바울은 괴로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지혜로운 목적을 깨달아 만족할 수 있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행 조건이 있다. 첫째, 하나님을 공경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은 때때로 섭리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시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근본적인 방식은 그분의 기록된 말씀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우주를 다스리시는 절대적인 왕이시며, 자신의 뜻을 표현하시는 말씀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명, 약속, 선포 등의 형태로 주어지는데, 이 말씀들은 절대적이고 반드시 그렇게 된다. 하나님의 계명은 진리이며, 하나님의 약속은 참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한다.
성령의 일상적인 사역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식을 부어주시고 화평과 기쁨과 소망과 사랑을 주시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그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것 가운데 드러나며, 우리의 삶 속 모든 일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 그분의 목적을 촉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행위의 의로 돌아가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값없이 주신 은혜의 의만을 누리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주님으로만 자랑하고 감사해야 할 존재들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지만, 아직 완전한 성화에 이르지 못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점점 성화시켜 가실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주체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주님의 영광의 날까지 인도해 가실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신뢰하며 소망 중에 달려가야 한다.
1.2.2. 하나님을 아는 것의 의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창조되었는가? 그 답은 바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이란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매우 낮아지는 경험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말씀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절망적이고 무력하다고 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