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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포크라테스의 생애와 업적
1.1. 히포크라테스의 신원과 연대
히포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의학자로, 그의 정확한 출생연도와 사망연도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그의 생존 연대는 기원전 460년경부터 기원전 337년경 또는 기원전 355년경으로 추정된다. 히포크라테스는 코스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로부터 의학을 배웠고 소아시아와 그리스 각지를 다니며 견문을 넓혔다. 히포크라테스가 직접 쓴 것으로 전해지는 논문은 약 170편에 달하지만, 그의 생애와 저서의 진위 여부는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히포크라테스에 대한 정보는 주로 네 가지 전기에 담겨있지만, 이들 전기 간에도 서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 의학자로서의 성장과정
히포크라테스는 코스섬의 유명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의 의술은 의과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대대로 물려받는 것이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의 도서관에서 일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원인불명의 화재가 일어나 책임을 떠안고 떠돌이 의사가 되었다.
히포크라테스는 방방곡곡 돌아다니면서 여러 철학자와 의학자를 만났고 새로운 의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의 독특한 치료법으로 나은 사람들이 입소문을 퍼트려 히포크라테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게 되었다. 그는 친근감이 강했고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히포크라테스에 대해 대머리에다가 못생겼지만, 의사이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히포크라테스는 항상 제자들에게 "의사 이전에 착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그를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아픈 사람들에게 직접 진찰하고 관찰하는 모습으로 유명했으며, 이를 통해 윤리의식을 강조하며 의사의 본보기가 되었다.
또한 히포크라테스는 주술적이고 철학적인 의학을 반대하며, 철학과 의학의 분리를 강조했다. 그는 인간의 신체와 운동이 모든 치료에 앞서야 한다는 의학적 가치관을 제시했고, 인간의 자연치유력이 가장 근본적인 치료제라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의학적 접근은 기존의 철학과 주술이 난무하던 시절에 의학을 분리하고 독자적인 학문으로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결과적으로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에 대한 가치관과 접근방식은 당대에도 높이 평가되었으며, 현대의 관점에서도 존경받을 만한 것으로 여겨진다. 히포크라테스는 13세부터 의사가 되어 100살이 넘도록 진료하며 살아갔는데, 이는 그의 의학적 가치관에 기반한 생활방식 덕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3. 주요 저서와 의학 사상
히포크라테스는 약 170편의 논문을 남겼다고 전해지며, 그 중 가장 유명한 저작물로 '공기, 물 및 장소에 관하여', '유행병', '식사론', '예후', '신성병에 관하여', '경구' 등이 있다. 이 문헌들은 당시 그리스의 학문 언어인 이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