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글과생각
2. 농아광지 vs. 제망자문
정약용의 『농아광지(農兒壙誌)』는 정약용이 아홉 번째 자식인 농장(農)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글이다. 정약용은 자녀들의 이름을 '농'자를 넣어 지었는데, 이는 벼슬에서 비롯되는 고민보다 평화로운 농사일에 전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정약용은 이 글에서 어린 아들의 생전 모습과 죽음에 대한 애처로운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어려서 죽은 아들에 대한 정약용의 슬픔과 그리움이 감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송준길의 『제망자문(祭亡者文)』은 송준길이 자신의 큰아들 송광식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이다. 송준길은 아직 늙지 않은 나이에 아들을 먼저 보내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을 담담하게 토로하고 있다. 특히 아들의 병환과 죽음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통해 아들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송준길은 지극한 정과 슬픔을 담담하게 표현하고자 하지만, 글로 다할 수 없다며 애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 글은 자식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버지의 감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정약용의 『농아광지』는 어린 자식의 죽음에 대한 애처로운 슬픔이 돋보이는 반면, 송준길의 『제망자문』은 장성한 아들의 죽음에 대한 늙은 아버지의 깊은 안타까움이 잘 드러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심정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지만, 아들의 나이와 죽음의 경위에 따라 달리 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1. 농아광지
정약용의 「농아광지」는 정약용의 아홉 번째 자식인 농장에 대한 광지(墓誌)이다. 광지는 묘지(墓誌)나 장지(葬志)와 같은 것으로, 사람이 죽었을 때 무덤에 함께 묻는 글이다. 조선 후기에는 실제로 묘에 묻지 않는, 문학성이 뛰어난 묘지명이 적잖이 지어지기도 했다. 정약용의 9명의 자녀 중 6명이 죽었는데, 정약용은 벼슬을 하여 당쟁(黨爭)이나 부조리한 정치 현실에 골치를 썩느니 차라리 마음 편하게 농사를 지으면서 몸을 보전하라는 뜻에서 아이 이름을 '농(農)'이라 지었다고 했다.
농아광지에서는 "네가 태어났을 때 내 근심이 깊어 너의 이름을 '농'이라 하였지. 얼마 후 집안 형편이 좋아지면 너로 하여금 농사나 짓게 할 뿐이었던 것이니 그것이 죽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었단다. 그런데 나로 하여금 죽게 한다면 장차 기꺼이 황령을 넘고 열수를 건널 것이니, 이는 내가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지. 나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은데도 살아 있고, 너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은데도 죽었으니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로구나."라고 하며 어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