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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진시대 제자백가와 사회 문제
1.1.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과 각 사상가들의 역할
춘추전국시대는 가장 혼란했던 시기로, 당시 활동했던 사상가들을 제자백가라고 한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기에 현대적 관점에서 어느 한 학파가 위대하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들의 사상은 서로 논쟁하며 발전해 나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백가쟁명"의 목적은 당시 혼란한 상황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구하고자 한 것이었다.
유가, 도가, 묵가, 법가 등 다양한 사상가들은 서로 다른 진단과 처방을 내놓았다. 유가는 인심의 문제를, 법가는 제도의 문제를, 묵가는 인심과 제도 모두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중에서도 법가의 사상이 가장 현실적이고 유용했는데, 이는 다른 사상이 이상적이기만 했던 반면 법가는 실리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혼란은 예악의 붕괴에서 비롯되었다. 예(질서)와 악(화합)이 무너져 사회질서가 붕괴되고 인간관계가 어그러지면서 천하대란에 빠지게 된 것이다. 국가 간 침략과 대부 간 약탈, 개인 간 해침 등 갖가지 모순이 만연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묵자는 당시 사회의 불평등과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공평하고 정의로운 새로운 질서와 사회 건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계급 간 차별과 불공평한 분배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과 능력에 따른 분배, 기회의 균등을 제안하였다. 또한 서로를 미워하고 차별하는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겸애"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묵자의 이상적인 주장은 당시 통치자와 일반 백성 모두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겸애를 실천하기가 어려웠고, 통치자는 자신의 권력을 내어놓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묵자의 사상은 당시 혼란한 세상을 구제하고자 했던 의미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1.2. 유가, 도가, 묵가, 법가의 사회 문제 진단과 해결책
유가, 도가, 묵가, 법가는 각자의 관점에서 당시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유가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이 예(질서)와 악(화합)의 붕괴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유가는 극기복례를 통해 옛 주나라의 질서와 사회규범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공자의 중심사상인 "인"을 실천함으로써 덕치(德治)를 이루고자 하였다. 유가에 따르면 인심의 타락과 사회질서의 부재가 당시 사회 문제의 근본 원인이었다"
도가는 세상을 구하려는 공자, 묵자와 달리 소극적인 "무위자연" 사상을 주장하였다. 노자는 천하의 혼란이 부산스럽게 구세를 외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노자는 통치자가 무위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스스로 다스려질 것이라 믿었다. 노자는 사물의 변화와 발전이 대립과 전화로 이루어진다고 보았으며, 이를 통해 인간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양식이라고 주장하였다"
묵가는 당시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성에 주목하였다. 묵가는 종법제도와 신분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묵자는 분배의 불공평성과 사회구조의 불평등이 당시 사회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하였다. 묵자는 노동에 따른 공평한 분배와 기회의 균등을 주장하며, 서로를 사랑하는 "겸애"를 통해 새로운 질서와 사회를 만들고자 하였다. 하지만 묵자의 사상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웠다"
법가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고 보았다. 한비자는 인간의 마음속 이해타산적 심리를 잘 이용하여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법가는 엄격한 법률과 제도를 통해 백성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이라고 보았다. 진시황 등이 법가 사상을 바탕으로 중국을 통일하였으나, 이는 백성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한 채 군주 권력만을 강화한 것이었다"
1.3. 예악의 붕괴와 천하대란의 원인
예악의 붕괴와 천하대란의 원인은 주나라의 종법제도로 인한 천자와 제후, 대부 간의 유의관계 파괴에서 기인한다. 주나라 건국 당시 문왕과 무왕으로 이어진 왕조는 천자, 제후, 대부로 이어지는 삼등급 사회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제후들의 독립성이 강해지면서 군신유의가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대부 역시 제후들을 억압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주왕의 폭정으로 인해 문왕이 주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천명을 내세워 정당화되었다. 즉, 하늘이 문왕에게 왕권을 내렸다는 논리로 천명을 내세운 것이다. 이로써 천자와 제후, 신하와 임금의 관계가 파괴되면서 사회질서가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예악이 붕괴된 이유는 천자의 지배력 약화와 제후들의 힘 강화, 대부들의 폐단으로 인해 군신유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삼강오륜이 흔들리면서 "천하대란"이라 불릴 정도의 극심한 혼란과 전쟁이 초래되었다.
당시 제자백가들은 이러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각자의 방식으로 해법을 제시하였다. 유가는 극기복례를 통해 옛 질서로 회귀하고자 했고, 묵가는 공평성과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도가는 무위자연과 소박한 삶을 주장하였다. 법가는 강력한 통치력과 제도 개혁에 주목하였다. 하지만 결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