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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하트마 간디
1.1. 간디의 생애
간디는 1869년 10월 2일 인도 서부 지방의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였으며,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이다. 후에 그는 인도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비판받기도 했지만 힌두교의 조혼풍습에 따라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간디는 19세 때 변호사가 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는 런던의 이너 템플 법학원을 수료하고 인도로 잠시 돌아왔다. 이후 24살에 남아프리카로 가서 인도인들의 차별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나탈 인도 국민회의를 설립하여 선거권 박탈 법안과 인두세에 저항하는 반대투쟁을 전개했다. 또한 남아프리카 인도인들의 고통을 담은 '녹색 팸플릿'을 발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30대 중반에 접어들었을 때, 그는 요하네스버그에서 더반으로 가는 기차에서 러스킨의 [나중 온 이에게도]라는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자신의 삶에 이 책에서 느낀 바를 반영하고자 결심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피닉스에 마을을 짓고 '인디언 오피니언'을 창간했다.
이후 남아프리카 정부의 인종 차별법에 반대하며 비폭력투쟁을 전개했고,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사티아그라하 투쟁'에 승리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46세 때 22년만에 인도로 귀국한 간디는 아쉬람을 건설하고 다양한 운동을 전개했다. 이 시기에 그는 참파란 지방의 인디고 재배 농민들을 돕고, 롤래트 법안에 반대하여 총파업을 지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암리차드 대학살'이 발생하자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이후에도 간디는 희귀한 물레를 직접 구해 스와데시운동을 벌이고,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종교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소금행진, 자서전 집필, 불가촉천민의 차별을 막기 위한 '하리잔' 잡지 창간 등 다양한 활동을 계속해왔다. 그러던 중 1948년 그가 79세가 되던 해, 힌두교 과격주의자 나투람 고드세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말았다.
1.2. 간디의 리더십 스타일
1.2.1. 서번트 리더십
서번트 리더십은 리더가 조직이나 단체 구성원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성장과 복지를 우선으로 여기는 리더십 스타일이다. 간디의 리더십은 전형적인 서번트 리더십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리더가 구성원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성장과 복지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회사나 단체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만족도와 헌신도가 높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리더가 구성원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발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처럼 서번트 리더십은 구성원 개개인의 성장과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리더십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간디는 비폭력과 불복종의 원칙하에 인도의 독립을 추구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구성원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서번트 리더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는 인도 민중들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투쟁했으며, 그들의 고통과 아픔에 깊이 공감하며 그들을 이끌어 나갔다. 또한 간디는 자신의 삶을 구성원들의 복지를 위해 바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서번트 리더십의 핵심 가치라 할 수 있다.
간디의 서번트 리더십은 구성원들의 존엄성과 인권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했다. 그는 인도인들이 영국의 식민통치 하에서 겪는 차별과 고통을 해결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이처럼 간디는 구성원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서번트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1.3. 간디의 대표적인 운동
1.3.1. 소금행진
소금행진은 1930년 영국의 소금법에 저항하여 간디가 주...